설탕에 켜켜이 묻은 시간들

-베로니크의 수업시대-

by junetree

저는 시간강사이기에 몇 곳의 학교에서 학생들을 만나서 그들과 배움을 나눕니다. 학생들과 함께 공부를 하는 것은 무척이나 기쁘고 행복합니다. 그 시간들은 정말 소중합니다. 특히 저는 교양과목들을 맡기에 수강생들은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이 대부분입니다. 청소년에서 청년으로의 전환기에 있는 그들에게 과제로글을 쓴 것을 보게 되는데, 늘 아름답고 벅찬 글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들의 글에서 저는 봄에서 여름으로 건너가는 5월쯤의 거리에서 느낄 수 있는 팽창하고 터질 것 같은 공기와 감정을 느끼곤 합니다.

요즘 ‘모닝 루틴’이나 ‘미라클 모닝’이라는 말을 많이들 사용하는데, 저 역시도 새벽에 ‘미라클한 경험’을 합니다. 새벽 네 시 삼십 분 쯤이면 일어나서 학생들의 글을 만납니다. 그 새벽에 그들의 글을 읽고 정말 많이 웃기도 하고 즐거워하기도 하고 아파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녹화 강의를 하는 동안 저는 학생들을 대면하지 못하고 오로지 글로만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글을 보며 존재를 상상해보는 일 들을 하곤 했습니다. 종강 무렵이면 토론 수업이 있어서 실시간 화상 수업으로 그들을 만납니다. 글 속의 그들과 실제의 그들을 연관해보는 일은 설레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학생은 글과 일치했습니다. 글의 진실함을 만나고 깨닫게 되는 시간들이었습니다.




학생들의 글은 솔직하고 진실했습니다. 그들은 개인적인 기쁨이나 슬픔 그리고 아픔들을 글 속에 풀어놓기도 했습니다. 그들의 글을 비록 제가 읽기는 하지만 그들이 글을 보낸 이가 제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송신자나 수신자가 실제로는 모두 그들이었을 것입니다. 그들이 글을 보낼 때 저는 그냥 흰 도화지로서의 역할을 하는 것이 가장 좋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들이 스스로 힘든 일을 발설함으로써 스스로를 치유하고 성장해 나간다는 사실을 저는 압니다. 조금은 어색할 수 있는 경험일 수도 있겠지만 그들의 고백이 스스로의 마음의 키를 키우고 몸집을 불릴 수 있는 원동력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그들은 그런 이야기를 누군가인 저에게 비록 과제 속의 글로 풀어냈지만,(아니 그랬기에 훨씬 더 솔직하게 쓸 수 있었겠죠) ‘발설’이후에는 훨씬 더 좋은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물론 그것이 직접적으로 연관된 것은 아니겠지만 그런 과정들을 통해서 성장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발설’하고 내일 금방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또다시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고 하는 과정을 거쳐서 끝내는 성장하는 것이겠죠. 칼 융은 이것을 ‘나선형 성장’이라고 했습니다.


나선형 움직임은 삶의 완성이라는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나선형 움직임을 통해서 전체 바탕을 두루 거치게 되면, 아마 사람이 자신을 완성시키지 못하는 것이 오히려 더 어려운 일일 것이다.


-칼 구스타프 융, 꿈해석, 정명진 역, 부글부글, 2019.-


우리 수업에서도 저는 나선형 성장을 지향했습니다. 그리고 생각하고 읽고 쓰고 서로 말하는 과정을 통해서 저와 학생들은 분명히 성장했습니다.





수업이 비는 시간이면 학교 앞 카페에서 레몬유자차를 마십니다. 책을 읽고 차를 마시거나 트레비를 마시면서 창이 넓은 그곳에서 보내는 시간이 편안하고 안락합니다. 이 층 창가에서 밖을 내려다보며 이 날들이 오래 지속되기를 그러하기를, 바랍니다. 이 차를 다 마시고 나서 저는 늘 '봄날'을 만나러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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