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는 사람'이 ‘작가’가 되기까지

-일상의 나눔-

by junetree


브런치의 내 소개에도 써놓았지만 나는 어린 시절부터 작가가 되고 싶었다. 어린 시절 어머니로부터 지금 생각해보면 부당하다고 생각되는 이야기를 많이 들은 나는 오랫동안 잘하는 것이 없다고 생각했었다. 그런 내가 가끔 백일장과 같은 글짓기 대회 등에서는 상을 타기도 했다. 그러나 비록 어린 시절이었지만 나는 글쓰기의 즐거움을 단지 상을 타는 것에만 연관해서 생각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당시 글을 쓰는 것이 처음에는 힘이 들었지만, 쓰다 보면 너무나도 많은 이야기들이 술술 나왔다. 그래서 나 자신조차도 참 이상하다고 생각되곤 했다. 무엇인가 내 안에서 힘들고 어려운 감정이 사라지는 것 같은 경험을 했던 것도 같다.

당시에 책을 읽는 것도 좋아했다. 내가 살던 수원의 시립도서관은 팔달산에 있었는데, 그 도서관의 어린이 도서관에 매일 가서 책을 읽었다. 당시에는 어린이 도서관에 장서 수가 많지 않았다. 어느 날은 어린이 도서관에 있는 책을 거의 다 읽어버려서 당황했던 기억도 있다. 또한 교실의 학급문고에 꽂혀있던 옛 이야기 책이 너무 재미있어서, 다른 친구들이 읽을까봐 제일 먼저 등교해서 책상 서랍에 넣어두고 쉬는 시간마다 읽기도 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쓰는 사람이 되기를 원했다. 그렇게 작가란 ‘단순하게 글을 쓰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대학을 졸업하기 전에 한 항공사의 객실승무원이 되어 3개월 정도의 교육을 받게 되었다. 준비하고 입사한 경우가 아니어서 그랬을 수도 있지만, 교육 기간동안에 많은 것을 준비했던 동기들에 비해서 테스트 성적이 좋지는 않았다. 교육 기간동안 힘든 날들이 지속되어서 그랬을까? 테스트 성적이 좋지 않았던 내가 동기들 앞에서 나는 이 직업을 오래 하고 싶지도 않고, 나중에 작가가 되고 싶다는 말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순진했던 시절이다. 그로부터 오랜 시간을 흘려보낸 나는, 그리고 많은 이들을 만나고, 또 많은 사건들을 지나와 버린 나는, 당연히 이제는 그리 친하지 않은 사람 앞에서 날것의 욕망을 드러내지는 않는다. 그것이 당연한 것이고 어찌보면 그들에 대한 예의 일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한다. 그 이야기를 한 다음날 아침, 교육이 진행되는 강의실에 갔는데 전날 내가 무심코 작가가 되고 싶다고 이야기를 했던 동기가 나를 보자 다른 이들에게 큰 소리로 말했다.



“얘들아! 작가 언니 오셨다.”




이것은 당연히 몹시 무안하고 무언가 부끄럽고 쑥스럽고 모욕적인 상황이다. 그리고 나도 당연히 그러한 감정을 느꼈다. 그러나 나는 또 대개의 그런 상황에서 많은 소심한 이들이 그러는 것처럼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내가 큰 잘못을 한 것 같은 마음도, 그러나 조금은 억울한 마음도 생겼다. 그리고 오랫동안 작가가 되고 싶다는 마음을 숨기고, 아니 어쩌면 의도적으로 잃어버리고 살았다.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후 나는 문학평론가 김인환 교수의 글에서 인상적인 문장을 발견하게 된다.





작가는 누구에게서나 상처를 찾아낼 수 있는 사람이다. 그는 원효나 퇴계, 아리스토텔레스나 하이데거의 책을 읽으면서도 거기서 그들의 상처를 읽어낼 수 있어야 한다.


-김인환, ‘의미의 위기’중에서-




그래! 작가는 ‘누구에게서나 상처를 찾아낼 수 있는 사람’이구나. 그렇구나. 이 깨달음은 나를 자유롭게 해주었다. 사실 ‘작가’에게 중요한 것이 단지 글 자체를 잘 쓰는 것보다는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라고 생각한 지 꽤 되었을 때 읽은 문장이라서 더 의미가 있었다. 이것은 단순한 어쩌면 글솜씨보다 더 어려운 일일 수 있겠다. 그러나 나 역시 살아가면서 누군가의 어두움에 관심이 꽤 많은 사람이었다. 어두움은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기도 했기에, 누군가에게서 그것을 보면 잘 알고 있는 것을 만났다는 생각에 왠지 반갑기까지 했다.


그렇다면 오래전 항공사 강의실에서 동기가 이야기했던, 그녀가 생각했던 작가란 과연 무엇이었을까? 직접 물어보지 않고 이야기하는 것 역시도 폭력일 수 있겠지만 아마도 김인환 교수가 이야기하는 ‘누구에게서나 상처를 찾아낼 수 있는 사람’은 아닐 것이라고 확신한다. 아마도 동기는 책 날개에 화려한 프로필과 함께 멋진 사진이 나온 사람, 서점에서 출간사인회를 하는 사람, 매체에 나와서 책에 대해 이야기하는 소위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의 이미지를 떠올렸던 것은 아닐까? 그런 이미지라면 나와는 역시 지금도 거리가 멀기에 그녀가 그렇게 이야기 했던 것이 다소 이해가 가기는 한다.


‘작가’라는 명칭에서 그렇게 성공의 모습을 보는 이도 있고, 또 존재를 탐구하는 일에 대한 어려움을 떠올리는 이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어쩌면 작가가 되려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생각해보아야 할 일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나는 여전히 글을 쓰지만 작가가 될 수 있을 지는 모르겠다. 또한 좋은 작가가 될 수 있을 지는 더더욱 모르겠다. 이 고민이 작가가 될 수있는 첫걸음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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