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가 불러낸 나의 꿈

글을 쓰며 살기로 했다

by 사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회사에 입사했다. 예상은 했지만 사회는 각오했던 것보다 훨씬 더 차갑고 냉정했다. 내가 성장하기를 기다려주는 곳이 아니었고 노력은 곧바로 성과로 증명되어야만 인정받을 수 있었다. 업무다운 업무를 맡아본 적은 거의 없었다. 매일 책상 앞에 앉아서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고 무용지물처럼 느껴지는 자신에게 점점 실망했다.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를 그만두고 도망치듯 재수를 선택했다. 1년의 준비 끝에 어느 지방대학에 입학했고 원하던 학교는 아니었지만 학생으로 다시 돌아간 것만으로도 기쁨이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두려움과 무력감은 다시 찾아왔다. ‘학생’이라는 신분은 잠시 나를 감싸줬지만 그 뒤로는 정체된 나 자신만이 남아있었다. 아직 세상에 나설 용기가 없는 나를 기다려주지 않고 하염없이 흘러가는 시간 속에 나는 스물다섯이 되었다.

한창 진로에 대한 불안과 비교의식 속에 살던 겨울방학에, 스스로를 미워하는 마음은 나를 무겁게 짓눌렀고 자기 혐오감은 걷잡을 수 없이 쌓여 어느새 나를 가득 메웠다. 그러다 덜컥 사는 게 힘들게 느껴졌다. 결국 나는 휴학을 선택했고 또다시 현실에서 도망쳤다. 그 속에서 유일하게 붙잡을 수 있었던 건 일기 쓰기였다. 매일은 아니어도 한 번 쓰는 날엔 정성껏 문장을 다듬었다. 그러던 중 예전에 가입만 해두고 잊고 있었던 ‘브런치 스토리’가 떠올랐다. 나는 다시 작가 신청을 해보기로 했고 결과는 합격이었다. 그렇게 나는 휴학을 기점으로 '브런치북'에 글을 연재하기 시작했다. 글을 쓰기 위해 일어나고, 글을 쓰다 보니 카페에 가게 되었다. 유일하게 마감이 있는 활동이라 그것이 나를 움직이게 했다. 그렇게 멈춰버린 듯했던 시간이 조금씩 다시 흘러가기 시작했다.


상담심리사라는 꿈을 품기 전, 나는 한때 시인이 되고 싶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시 쓰는 걸 좋아했고 무엇하나 특출난 것 없는 내게 유일하게 상장을 안겨주곤 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학년이 올라가면서 글을 잘 쓰는 사람이 세상에 아주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 후부터는 내가 쓴 시가 보잘것없고 유치하게 느껴졌다. 그러다 점점 시 쓰는 일이 줄어들었고 시인이란 꿈을 접게 됐다. 이후엔 혼자서 일기만 쓰다 말았는데 브런치스토리는 잊고 있던 그 욕망을 다시 불러왔다. 휴학기간 동안은 마음껏 글을 썼다. 예전처럼 일상의 순간에서 단어를 찾고, 표현을 고르고, 문장을 다듬었다. 직접 찍은 사진을 표지로 삼고, 휴학의 기록을 채운 나만의 <휴학일기>라는 책 한 권이 만들어졌다. 혼자만 읽고 쓰던 글이 어딘가에 공개된다고 생각하니 떨리기도, 설레기도 했던 것 같다. 내가 쓴 글을 읽으시고 댓글이나 공감표시로 다녀간 흔적을 남겨주시는 익숙한 닉네임들이 보이면 진심으로 기뻤다. 그동안 별것 아니라며 버려두었던 ‘글쓰기’라는 재능이 사실은 내게 가장 소중한 힘이었다는 걸 다시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내게 있어 브런치에서 연재한 <휴학일기>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거라 여겼던 내가 처음부터 끝까지 완성한 결과물이었고 무엇보다도, 그동안 ‘학생’이라는 신분 뒤에 숨어만 있던 내가 사회의 일원으로서 스스로의 역할을 해냈다는 점에서 값진 의미가 있었다.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는 두려움이 늘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는데 ‘브런치북’ 연재를 통해 내가 사회 속에서도 나만의 자리를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을 체감할 수 있었던 것이다.


브런치 스토리는 잊고 있던 나의 꿈을 다시 불러내었고, 글을 통해 나 자신을 회복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어릴 적 가능성이 없다고 스스로 버려두었던 ‘작가’라는 꿈을 다시 손에 쥘 수 있었으며, 그 힘이 이어져 내게는 또 하나의 소중한 꿈인 ‘상담심리사’라는 길에 도전할 용기를 주었다. 만약 또다시 삶에 지치고 모든 것이 무겁게 느껴질 때면 언제든 다시 브런치 스토리에 돌아와 좋아하는 글을 써내려 갈 것이다. 나를 일으켜 세워주었던 그 자리에서, 나는 언제든 ‘글을 쓰는 사람’으로 되돌아올 것이다.


나의 오랜 꿈이었던 ‘작가’로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