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우리가 갖고 있던 사회적인 편견들에 대하여
나름 열심히 살아온 나는 어느덧 40대 후반 한국의 중년이 됐지만 시시각각 너무도 빠르게 변해온 대한민국이라 그런지 2030세대는 물론 6070세대도 그렇고 어느 한쪽에도 어울릴 수 없는 마치 샌드위치처럼 낀 세대의 느낌을 받곤 했는데 언제부턴가는 심지어 '세대차이'가 아닌 '세대패닉'을 절실하는 듯 했다.
팬데믹과 함께 시작된 시골로의 귀촌과 재택근무를 하면서 정신을 차리고 유일하게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은 세대를 이어주는 '징검다리'였다. 6070세대 보다 조금 더 젊은 내가 그들을 대신해서 2030후배들의 제안을 버럭하지 않고 경청하여 참신한 아이디어로 삼는 것이고..2030세대 보다 조금 더 나이 먹은 내가 그들을 대신해서 6070선배들의 조언에 딱딱 따지지 않고 지혜로 삼아 성장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요즘 인터넷에 올라오는 글들을 보면 젊은 세대들, 소위 말하는 MZ세대가 자주 쓰는 말이 있는데
#정신승리 #금융치료 #돈쭐내다 #경제적자유 따위의 말이 바로 그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그런 말들의 의미를 다소 부정적으로 생각해왔었는데..
예를들면 이렇다.
정신승리는 논쟁하는 상대방을 비꼴때, 금융치료와 돈쭐은 물질 만능주의적인 행태, 경제적자유는 공동체를 EXIT 탈출하려는 그릇된 인식이라고 생각한터라 '요즘 애들은 왜 이렇게 발랑 까지고 개인주의적이고 자본주의적이고 이기주의적일까?' '왜 우리 혹은 사회나 공동체라는 의식이 없을까?'하는 안타까움의 혀를 차곤 했었다.
그런데 나의 이런 생각들은 최근에 읽고 있는 한 권의 책으로 조금씩 바뀌게 됐는데 그 책은 과거 유명한 영어 강사였던 문단열님의 "인생은 투트랙"이라는 책이다. 그 책 얘기를 잠깐 하자면 큰 주제는 결국 '이성과 감성의-투트랙'이었다. 즉 감성이 힘들면 이성에 집중해야 하고 이성이 힘들땐 감성에 기댈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며 둘이 따로 놀지 말고 같이 놀아야 한다는 뜻이리라. 과거에는 '뜨거운 가슴과 차갑고 냉철한 머리'와 같은 말들을 했었는데 비슷한 의미지만 '투트랙'이라는 단어가 보태져서 뉘앙스는 좀 다르게 느껴진다.
책 내용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내용은 이랬다. 어느날 문단열님이 병원 의사로부터 암진단 소식을 듣게 됐고 그만 머리속이 하얘져서 아무런 생각도 안들고 몸도 움직일 수 없었는데 옆에서 울먹이고 있던 아내분이 수납처에 가서 이렇게 얘기했다고 한다.
'저..혹시 현금영수증은..되나요?'
두분은 이 일화를 떠올리며 종종 웃는다고 하던데 그만큼 감성이 아무리 힘들어도 이성적으로 해야할 일은 애써 해야 한다는 뜻이리라.
그래서 '암은 암이고 영수증은 영수증이다'라는 표현은 아무리 감성이 힘들어 주저앉아 울고 싶어도 이성은 몸을 일으켜 현실적으로 챙겨야 할 것을 챙겨야 한다는 뜻이리라. 어느 인터뷰 영상에서는 그런걸 한마디로 이렇게 표현하셨는데 너무 힘들어서 울고 싶더라도 주저앉지 말고 '가면서 울어야 한다'라고.
너무 공감이 되고 또 가슴속 깊이 울림이 있는 이야기였다.
그때부터였다. 희미하게 혼재돼 있던 나의 이성과 감성에 대한 단상들이 마치 거꾸로 돌아가는 필름처럼 내 머리속에 다시 펼쳐졌고 하나하나 곱씹어 보게 했다.
예를들면 '정신승리'를 능력이나 논리가 부족한 상대방을 루저취급 하듯 무례하게 깎아내리는 표현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어떻게 보면 요즘 시대엔 차라리 그 정신승리라도 할 수 있는 소양을 갖춰야 하지 않을까.
만약 누군가 '서울에 아파트를 보면 숨이 탁 막혀 어떻게 그렇게 다들 살지?'라고 한다면,
'그래서 네가 아직 거지인거야' 라며 싸지르는 인터넷 댓글들에 똑같은 사람처럼 대들어 싸울게 아니라 '나는 시골에서 마당 넓은 단칸방에 살아도 행복하다'라는 정신승리가 아니라면 도저히 이성적으로만 생각해서는 감히(?) 넘볼 수 없는 부의 격차에 따른 상대적 패배감 혹은 박탈감, 울분, 답답함 따위에서 누가 무엇이 어떻게 하면 나를 해소해 줄 수 있을까?하는 질문에 답하기 어려웠다.
실제로 시골 마당에서 그가 좋아하는 맥주 한모금과 기타를 치며 마음껏 소리 칠 수 있다면 그래서 정말 행복하다면 정신승리라고 하기보다는 '정신만족'은 아닐까.(그래야 하지 않을까. 물론 맥주를 마시며 기타를 치고 난 뒤엔 내일 새벽같이 나가야 하는 돈벌이 때문에 얼른 씻고 자야할지도 모르겠지만)
아무리 남들이 거지다 바보다 루저다 실패자다 손가락질 해도 그들과 싸워(?) 이길 수 있는 방법, 그래서 내가 평안할 수 있고 온전히 내 삶을 살 수 있는 방법은 역설적이게도 요즘 얘기하는 그 '정신승리'만한게 없어 보인다.
'금융치료' 또는 '돈쭐내다'라는 말도 참 물질만능적이고 세속적이게만 봤던게 사실이었다.
하지만 곱 씹어보니 꼭 그렇지 많은 않은 것 같다. 만약 사람들에게 부당하거나 어려운 일이 닥쳤을때 돈으로 그에 대한 보답, 보상, 도움을 줄 수 없는 사회라면 살기에 너무 팍팍하고 막막할 것이다. 또는 갑자기 극도의 위기나 큰 병마가 닥쳤었을 때라면 '정신승리'만으론 오래 버틸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정신은 상황에 따라 오락가락하기 쉽기 때문이다. 그럴땐 돈이 사람을 확실하게 돕고 살릴 수 있다.
예를들어서 삶이 너무 지치고 힘들어서 그래서 모든걸 포기하고 죽고 싶다가도 만약 당장 로또 100억에 담청된다고 가정해 보자. 또는 누군가가 엄청난 돈으로 나를 돕고 싶어서 돈쭐 내준다고 생각해 보자. 어떤가? 그래도 삶을 포기할텐가? 로또 당첨금이나 돈쭐이 죽어가던 나를 거뜬히 치료해 살릴 수 있다는 얘기다.
혹은 누군가가 아무런 이유없이 나를 명예 훼손이나 모욕을 했다면 같이 욕하며 싸울게 아니라 그에 응당한 금융치료(벌금)를 통해서 인성이 고장난 그 사람을 치료해 줘야 하는 것이다.
인간은 막강한 법치와 자본 앞에서 이성을 되찾기 마련이 아닐까. 이젠 미친개에게는 몽둥이가 약이 아니라 법치와 금융치료가 약인 세상이 됐다. 만약 나는 그깟 돈도 다 필요 없다라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돈을 가져본 적 없는 사람이거나 아니면 요양원에 누워 오늘내일 하는 사람이 아닐런지.
그러니 돈돈돈 하는 사람들을 무조건 돈에 환장한 사람이거나 지독한 스크루지영감 보듯 대하지는 말자. 나 역시 마음 한구석에는 호시탐탐 금융치료나 돈쭐을 원하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리고 이왕이면 남을 금융치료 해주거나 돈쭐 내줄 수 있는 사람이 돼야 하지 않겠는가?
'경제적 자유'라는 표현은 참 정이 안가는 말이긴 하다.
아니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적으로 성공했다고 혼자 쏙 EXIT 탈출해서 자유롭게 사는게 과연 옳은 삶의 방향일까? 자본주의나 우리 사회가 탈출하고 싶을 만큼 그렇게 위험하다고 생각한다는 말인가?라는게 나의 평소 생각이었고 내가 생각하는 자본주의의 옳은 방향은 경제적으로 성공해서 주위, 사회와 더불어 성장하는 모델이며 소위 말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와 같은 강자가 약자에 대해 책임을 질 줄 아는 사회적인 역할론이 중요한 골자인데 그런 모델에 정확히 역으로 가는 모델이 요즘 MZ세대가 꿈꾸는 탈출러의 '경제적 자유'라고 생각을 해왔었다.
'요즘 젊은 세대들은 참 개인주의야, 참 이기적이야. 혼자만 잘 살려고 한단 말이지' 항상 이렇게 생각했었던 터라 아직도 나는 그런 말을 볼때면 왠지 모를 화가 나있다. 하하.
그런데 만약 그들이 그렇게 꿈꾸는 경제적 성공을 이루고 원하던 자유를 얻었다고 가정해 보자. 그렇다면 그들은 이제부터 도대체 무엇을 할 것인가?
아마도 본인이 좋아하거나 잘하는 일만 하면서 살 것 같지 않은가? 굳이 이득을 위해 사람들과 교류하지 않아도 되니까 일부러 불필요한 관계, 인맥을 유지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본인의 가족, 오래된 친구와 같이 가장 가깝고 소중한 사람들을 위해 대부분의 시간을 보낼 것 같다. 예를들면 가고 싶었던 유명한 둘레길을 함께 걷는다거나 근사한 외식을 함께 한다거나 여행을 한다거나..아마도 이런 평범하지만 마음만 있었지 실천하기 어려웠던 소중한 일상을 보내는 일들을 할 것 같다. 실제 '파이어족'과 같이 단기간 부를 쌓고 은퇴한 젊은 세대들은 개인 생활에 집중하고 소중히 하는 경향을 보이던데 결국 개인 생활은 나로 출발해서 종착지는 가족일 것이다. 그리 길지 않은 100년의 인생사를 살며 그것에 반론을 제기할 사람은 없어 보인다.
또한 요즘 젊은 세대들은 과거 부모님 세대들처럼 '나라가 잘 살아야지 우리도 산다' '정부와 사회에 반하고 역모를 꽤하는 사람들은 탱크로 밀어버려야 한다' '삼청교육대가 다시 부활해야 범죄,비리,부폐가 없어진다'와 같은 사회적이거나 국가,전체주의적인 발상을 하지 않는다. 대부분 그냥 남들에겐 별로 관심이 없다. 국가라는 시스템이 자본주의라는 또 민주주의라는 시스템이 완벽하지 않다는 걸 눈치라도 차린 것일까?
오로지 나와 내 소중한 사람들. 그게 인생의 전부인냥 사는게 요즘 세대들인 것 같다.
하기사 고위층 가족들은 모두 해외로 내빼는 판국이니 누가 국가론을 논하고 누가 사회를 우선시 한다는 말인가? 다들 말로는 국가와 국민을 내세우지만 다 자기 밥그릇 챙기기 바쁘다는걸 요즘 세대들은 정확히 꽤 뚫어 보는 듯 하다. 그게 인간의 본성인 것을. 어떠한 경우라도 나에게 득이 되지 않으면 남에게 희생하지 않는 것. 일부 선진국에서야 훨씬 전부터 그랬었겠지, 냉정하지만 요즘엔 가족 간에도 마찬가지로 보인다.
다만 본인한테 득이 없어도 가족을 위해 무조건 희생을 하셨던 우리 아부지,어무이 세대들은 제외해야겠지만.
'니들이 가족 맛을 알아?' '예 잘 모릅니다. 그냥 부모님 건강 먼저 챙기셨으면 좋겠습니다' '다 키워 놨더니 한다는 소리가' '저도 이제 내일 모레면 서른(마흔? 쉬은?)입니다. 알아서 할께요' '그럼 결혼해서 가정을 꾸려야지 좀'...결국 서로 그렇게 답답함의 무한 반복인가..!?
요즘 젊은 세대들은 아니 요즘 사람들도 '너무 개인주의야, 너무 자본주의적이고 너무 이기주의야'라는 부정적인 편견을 갖었던 나였지만 남들이나 공동체, 사회 보다는 내가 우선이고 나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즘 사람들이 이제는 너무나 당연해 보인다.
그러고 보니 마지막에 언급한 '경제적 자유'라는 표현엔 두가지가 모두 들어 있어 보인다.
바로 초반에 얘기했던 '투트랙'의 '이성과 감성'이다.
모든 현대인들은 이성적으로 경제 목표를 이루고 감성적으로 자유도 누리고 싶어하는 것 같은데..
하. 그러고 보니 요즘 스마트한 MZ세대는 '투트랙'을 '경제적 자유'라는 표현으로 엣지있게 부르짖었던 것 같은데 나만 눈치 없이 탱크 세대처럼 그런 말들을 세상 밖으로 다 밀어버리는 상상을 했던 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