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우울증 이야기, 첫 번째
2024년 5월, 분명 잠에서 깼는데 죽을 것 같았다.
눈을 뜨는 순간 목이 타들어 가는 느낌과 함께 이 공간에 있으면 숨을 쉬지 못할 것만 같았다. 분명 5년을 살아온 자취방이었는데, 주위에 물이라고는 한 방울도 없었는데, 마치 발끝으로 수영장 가장 깊은 곳을 겨우 딛고 있는 것 같았다. 너무 놀란 나머지 방안을 바라보며 숨을 하나, 둘, 겨우 내쉬었다. 여전히 그날의 1인칭 시점은 내 기억에 오롯이 남아있다.
'당장 이 곳을 벗어나야지.'
가장 편안하다고 생각했던 집이 가장 불안한 공간이 되어버린 순간, 어디로든 도망치고 싶었다. 마침 오랫동안 봉사활동을 했던 기관에 찾아뵈어도 되냐고 가볍게 연락을 하던 중이었다. 그날 바로 다시 한 번 연락을 드려 오늘 방문하겠다고 말씀드렸다. 다행히 기관의 세 분은 나를 환영해주셨고, 나의 이야기를 들으며 따뜻하게 위로해주셨다. 부담갖지 말라고 '오고 싶을 때 언제든지 오라'는 말도 함께. 아, 그래도 내가 혼자는 아니구나, 라는 걸 느낀 순간이었다.
* * *
지방에서 상경한 나는 오랫동안 '혼자'에 익숙해져 있었다. 물론 사람들과 소통하지 않았다는 뜻은 전혀 아니다. 되려 학생회, 봉사활동, 대외활동을 하며 비교적 많은 이들과 인연을 맺었다. 다만, 누군가에게 의지하지는 못했다. 의지하지 않았다고 표현을 해야 하나? 아마 반반일 것 같다. 아무튼, 그래서, 나는 늘 '혼자'였다. 뭐든 혼자 '알아서' 해내야 했던 나였다. 대학생까지는 어쩌면 대학이라는 틀이 그래도 나를 지켜줬기에 그저 '갓생러'라는 이름으로 나를 포장할 수 있었다. (정확히는 주위에서 포장한 기대가 섞인 호칭이었지만)
대학을 졸업한 후 '진짜 혼자'가 된 나는 소속이 없음을 견디지 못했다. 내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고민할 시간도 없었던 것 같은데, 대뜸 사회에 던져진다고? 나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데? 갓 스물넷, 만으로는 스물둘이었던 그때의 나는 일단 돈이라도 벌자는 마음에 학원 일을 시작했다. 미래와 취업에 대한 불안감을 껴안은 채 일단은 먹고 살 길부터 찾은 것이었다.
다행히 학원 일은 좋은 강사님 덕분에 나름 만족할 수 있었다. 하지만 빨리 정착할 자리를 찾아야 한다는 강박은 계속됐다.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의 수능이 끝난 후, 마침 사회복지 분야에서 가장 이름있는 기관에 인턴으로 근무하게 되었다. 체험형이었지만 직무 관련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는 것에 크게 안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쁘다'보다는 '그래, 이거라도 해야지'라는 합리화적인 생각을 했었다.
그렇다. 나는 인턴을 할 때도 불안감과 조급함에 휩싸여 있었다. 누군가는 붙고 싶어했을 이 자리를 감사하게 생각하기는커녕 '돈 벌 수단', '자소서 한 줄' 정도로만 생각했다. 그러니 행복할 수가 없었다. 그냥 최대한 조용히 있다가 퇴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 * *
인턴이 끝난 2024년 2월, 여전히 조급했다.
하지만 그 조급함 덕분에 서류를 여러 개 넣은 결과, 그렇게 희망하던 산업군에 진입하게 됐다. 채용형 인턴으로 한 법인에 입사하게 되었는데, 늘상 꿈꾸던 산업이었기에 기쁘고 또 기뻤다. 나만 괜찮다고 하면 정규직 전환은 무조건 된다는 상사 분들의 말씀에 희망은 더 커졌다. 회사 특성 상 정년보장은 물론, 나름 괜찮은 월급과 낮은 업무 강도, 메인 업무는 생각하던 것과 조금 달랐지만 그래도 이 산업군에 들어온 그 자체가 좋았으니 설레이는 마음으로 출근을 했다.
하지만 기대가 컸던 걸까. 아니면 이 회사가 문제였던 걸까. 그것도 아니라면 현실을 몰랐던, 현실과 타협하지 못한 내가 문제였던 걸까. 첫날부터 든 생각은 '퇴사하고 싶다'였다. '인턴할 때, 4대 보험 가입했어요?'라고 묻는 실무자, 출근 이틀차에 나를 툭툭 치며 '이것 좀 치워'하는 이사, 전임자 공백 때 단 한 번도 청소하지 않았던 먼지 쌓인 의자 등.. 많은 흔적들이 체계가 없는 곳이라는 걸 느끼게 했다. 그리고 '그 자리가 원래 여자 자리에요'라는 말까지 들은 날, 아- 나는 어쩌면 이 사람들의 뒷바라지를 하러 왔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큰 혼란에 잠겼다.
그 후로 직원 간 급여 상승 속도의 차이, 정리되지 않은 자료들 등 과거 자료들을 보면서 마음이 확실히 뜨기 시작했다. 매일 가족들에게 여기서 일하기 싫은 이유를 나열하면서 떠나고 싶다는 마음을 풀어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출근하다가 지하철에서 사고 나면 좋겠다.', '버스 사고나서 늦게 출근하고 싶다.', '큰 병에 걸려서 3개월 이후에 정규직 전환 안 되면 좋겠다' 같은 생각들이 두둥실 떠다녔다.
'큰 병에 걸렸으면 좋겠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그만두는 거지.'
혹자가 생각하는 대로, 말하는 대로 이뤄진다고 했던가. 생리불순과 부정출혈로 찾은 산부인과에서 큰 물혹이 있다는 검사 결과를 받게 됐다. (참고로 회사에서는 어떤 성취감과 감정도 느끼지 못해 병원이라도 가서 몸이라도 챙겨야겠다고 생각했었다.) 일단 생리를 시작하기 위한 약을 처방받았고, 생리를 시작하게 됐는데- 그 이후에 출혈이 멈추지 않기 시작했다. 출근 시간이 약 1시간 정도 되었는데, 그 동안 오버나이트를 모두 적실 정도로 하혈을 했으니, 쓰러지지 않은 게 다행일 정도였다.
그런 와중에도 어지럽거나 다른 증상이 나타나지 않아 회식에 참석했다. 나를 명분으로 만들어진 회식이었기에 당연히 빠질 수가 없기도 했었다. 그때 또 다시 생각 하나가 둥실 떠올랐다. 지하주차장에서 주차할 공간을 찾고 있었는데, 조수석에 앉아있던 내가 '그냥 이대로 급발진해서, 딱 나만 죽거나 다치면 좋겠다'고. 미친듯이 회사와 그 조직을 벗어나고 싶었던 것이었다.
바보 같았던 나는 꾸역꾸역 회식에 앉아서 하하호호 가면을 쓰고 웃었다. 그나마 술을 조금씩 마시는 게 나름의 반항(?)이었다. 그리고 그날, 비가 내리고 바람이 세게 불던 3월 말, 혼자서 잠실대교를 건너기 시작했다. 캄캄한 밤. 왼쪽에는 라이트가 켜진 많은 차들이, 오른쪽에는 언제 몸을 던져도 이상하지 않을 한강이 있었다. 비를 맞으면서 처량하게 걸어가고 있는데도 아무도 말을 걸어주지 않았다. 어쩌면 당연했다. 거긴 아무도 지나다니지 않았고, 차에서 내려 굳이 나에게 관심을 줄 필요도 없었을 테니.
그렇게 벌벌 떨며 한 걸음 한 걸음 잠실대교를 걸으니 깨닫게 됐다. '아, 결국 내 일은 내가 해야 하는 거구나.' 아무리 힘들어도 누군가 나 대신 퇴사를 말해줄 순 없다. 아무리 힘들어도 이 힘듦을 온전히 끌어안고 해소하는 것도 내가 해야 하는 것임을 베일듯한 바람 속에서 알게 됐다.
그리고 다음날, 퇴사를 선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