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우울증 이야기, 두 번째
"이번 주까지만 나오고 퇴사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급하게 출근 요청을 해서요."
화요일 아침, 국장님께 퇴사를 말씀드렸다. 어쩌면 티가 날 거짓말이었지만 내가 댈 수 있는 핑계는 저것뿐이었다. 저 말을 내뱉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을 거쳤던가. 출근하고서도 몸을 덜덜 떨며 언제 자연스럽게 말씀드리지? 어떤 핑계가 가장 티가 안 날까? 고민하고 또 고민하다 내뱉은 말이었다.
"아, 그래? 아쉽네. 역시 인재는 다른 곳에서도 알아보나 봐."
국장님의 대답이었다. 젠틀하게 느끼는 이들이 있을까 우려된다. 나는 그 한 마디 자체가 부담스럽고 또 부담스러웠다. 그냥 이미 마음에 크게 뜬 터라 아무도 말을 걸지 않았으면 좋겠고, 일주일이 무사히 지나가기만을 바랐다. 다행히 이사님에게 직접 퇴사를 말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셔서 그나마 나았다.
와중에 하혈은 계속됐다. 멈추지 않는 피와 과한 스트레스 때문에 화장실에서 힘 없이 늘어져 있었다. 아, 참고로 회사는 건물에 입주해 있는 형태였는데 화장실을 오고 가는 여성분들께 너무 여쭤보고 싶었다. 신입이 원래 이렇게 힘든 게 맞냐고. 물론 한 번도 내뱉지 못하고 화장실에서 가능한 오랜 시간을 보내는 게 유일한 도피처였지만.
* * *
수요일 아침, 국장님과 대리님의 오전 출장이 잡혀있었다. 그때 잠깐 산부인과 의원에 전화해서 하혈 상태를 말했다. '약 먹고 생리 시작하긴 했는데.. 피가 안 멈춰서요. 출근이 한 시간 정도인데, 오버나이트가 다 젖을 정도로 피가 나요.' 이 말에 전화를 받은 간호사 선생님께서 일단 가능한 한 빨리 내원을 하라고 말씀하셨다. 이사님만 남아계신 곳에서 이사님의 허락을 받고, 대리님께는 하혈이 심해 산부인과에 잠시 사무실을 비우겠다는 연락을 남겼다.
의원에 가 접수를 하니, 바로 의사선생님을 뵐 수 있었다. 선생님은 내 증상을 듣더니, 이곳에서 초음파를 하면 돈만 더 들뿐, 바로 2차 병원에 가기를 권했다. 다행히 의원 건물 뒤쪽에 큰 병원이 있었기에 진료의뢰서를 받고 2차 병원으로 향했다.
예약을 하지 않아 2시간을 내리 기다렸을까. 겨우 진료를 볼 수 있었다. 나는 의원에서와 같이 증상을 설명했고, 의사 선생님께서도 진료의뢰서와 같이 증상을 듣더니 바로 초음파를 보자고 하셨다. 어두운 방에 들어가, 초음파를 보게 되었는데 피가 너무 많이 나서 바닥에 떨어질 정도였다. 의원에서는 꾹 참고 봤던 초음파였는데 2차 병원까지 오니 그제서야 내 몸이 크게 문제라는 걸 느낀 건지. '아, 내가 진짜 왜 여기에 있지. 왜 이렇게 나한테 힘든 일들이 몰아치지?'라는 생각에 초음파를 보면서도 눈물을 뚝뚝 흘렸다.
이후에 오늘 당장 수술을 해야 한다는 소견을 듣고 바로 입원을 하게 됐다. 울면서 회사에서 짐을 챙기고 와 옷을 갈아입었다. 피가 너무 나서 소변검사는 하지 않았다. 피를 뽑고, 심전도 검사를 하고, 수술 전 필요한 검사를 하는데 눈물이 제멋대로 나서 스스로가 참 바보 같았다. 수술 동의서를 쓸 때도 눈물을 펑펑 쏟아서 의사 선생님과 코디 선생님 모두 당황하셨고. 하하. 지금 생각하면 조금 부끄럽기도 하지만, 그만큼 내가 힘들었다는 방증인 것 같아 과거의 나를 토닥여 주고 싶다.
집에도 갑작스레 연락하기가 애매했고, 동생도 대전에 있긴 했지만 바로 서울로 올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보호자로 친구 연락처를 입력했다. 병실을 배정받고 누워서 '○○아, 갑작스럽겠지만 내가 수술을 하게 돼서 보호자 연락처로 네 번호를 적어놨거든? 근데 이거 당일 퇴원도 되는 간단한 수술이라니까 아마 연락은 안 갈 거야!'라며 문자를 남겼다. 가만히 인턴을 하던 친구에게 이런 말도 안 되는 부탁을, 아니 부탁도 아니었고 일방적 보호자 등록을 해버린 것이었다. 그때부터 내 삶이 외롭다는 걸 크게 느끼게 된 것 같다. (사실 처음엔 고등학교 동창 친구들을 떠올렸는데, 친한 친구들은 공부를 하거나 교환학생으로 아예 한국에 없었던 터라 저 아이에게 부담을 줘버렸었다.)
아무튼 가족 중 가장 친한 동생한테도 수술이 끝나기 전까지 아프다는 것과 수술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그냥 혼자 '이것도 경험이다' 생각하며 노트에 'ㅋㅋㅋ아 갑자기 수술? 어이없다 개웃김' 이런 식으로 그때의 감정을 휘갈겼다. 그렇게 수술 대기까지 두 시간 정도를 게임도 하고 조금 졸기도 하면서 보냈고, 시간이 다 되어 수술실로 이동했다.
원체 긴장을 많이 하는 체질인데, 스트레스가 과한 상태에 수술까지 갑작스레 하게 되니 정말 미칠 것 같았다! 그런데 전신마취를 위한 약물이 들어오니 '조금 뻐근할 수 있어요'라는 말과 함께 수술이 끝났었다. 지금까지도 그렇게 푹 잔 적은 없는 것 같다.
다만, 문제가 하나 있었다.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드물게 비염이 올라오곤 하는데, 그것 때문인지 양쪽 코가 다 막혀버린 것이었다. 그래서 손가락 끝으로 '코'라는 글자를 어떻게든 써보려고 했다. 그리고 몸을 흔들며 숨을 쉴 수 없다는 걸 표현하려고 했다. '왜 그러세요?!' 놀란 간호사 분들의 말에 대답하려고 해도 입이 열리지 않으니 죽을 것 같았다. 다행히 산소호흡기를 다시 채워주시곤 '숨 쉬세요.'라고 부드럽게 대응해 주셔서 겨우 살았다.
'코가 막혀서 그랬어요.'
겨우 안정된 내가 말을 할 수 있게 되고, 자리에서 일어서 이동할 때쯤에야 저 말을 내뱉었다. '죄송해요. 코가 막혀서 그랬어요. 숨이 안 쉬어졌어요.'의 반복이었다. 회복실에서 잠시 대기할 때는 산소포화도가 떨어질 정도로 상당히 상태가 좋지 않았다. 간호사 선생님께서 옆으로 오셔서 '숨 크게 들이쉬고 내쉬어볼게요. 이렇게 계속 숨 쉬고 계셔야 해요.'라고 말씀해 주실 정도였다.
무사히 당일 퇴원은 했는데 당일 퇴원이 '가능'한 거지, '힘들지 않은 건' 아니었다. 진짜 집 가는 길도 고통 그 자체였다. 목이 너무 타는데, 마실 수 있는 게 없었다. 당시 계속 금식을 하다가 들어갔으니 배도 고팠다. 가방에 있던 이클립스 복숭아 맛을 꺼내 겨우 입과 배를 달랬다. 이미 내 상태는 제발 집에만 도착하자, 였다. 또 집에 도착해 보니, 전신마취인 탓인지 연구개 뒤쪽이 다 상처가 나있어서 목까지 아팠다. 전신마취가 그냥 수면마취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더 본격적인 마취였다는 걸 그때 느꼈다. (물론 이후 진행한 수면마취도 내게 썩 좋은 경험을 안겨주진 않았다. 추후 글에서 쓸 수 있기를.)
몸이 좋지 못해 그다음 날은 병가를 쓰게 됐고, 금요일을 마지막으로 그곳을 떠나게 되었다. 여기까지가 아주 길게 느껴진 내 (첫?) 직장에서의 이야기들이다. 너무 MZ스럽게 느껴지나? 그냥 '고생했다' 한 마디만 해줘라. 그때의 그 아이는 최선을 다해 버텼다.
* * *
퇴사 후에도 회사 근처에는 가야 했다. 이유는 단순하지만, 회사 근처 병원에서 수술했기 때문이다. 처음 딱 들어가서 자리에 앉았을 때, 선생님께서는 '네~ 뭐 별 거 없고요.. 아, 아니다.'라며 차트를 다시 보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자궁에 문제가 있다며, 이것저것 이야기해주셨다. 원래는 자궁적출이 원칙인데, 아직 어리니까 약물로 치료해 보자고.
자궁내막증식증.
자궁내막암.
내 병은 굳이 긍정적으로 보자면 자궁내막증식증으로 볼 수 있고, 부정적으로 보자면 자궁내막암으로 볼 수 있다. 세포가 비정형적으로 증식한다는 점에서는 그냥 암이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보험을 들어놨다는 것? 보험 덕에 수술비도 어느 정도 커버할 수 있었고, 치료비도 늘 청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수술할 때 병변을 대부분 긁어냈다고 하셔서 아주 조금이나마 걱정을 덜 수 있었다. 물론 그때 저 병명들을 찾아보며, 며칠을 침대 위에서만 눈물을 흘리며 지냈지만.
그렇게 죽고 싶고, 아프고 싶고, 병에 걸리고 싶었는데 진짜 내 마음은 '살고 싶다'였는지 그때부터 몸에 안 좋은 것들을 하나둘씩 줄여갔다. 의사 선생님의 권유가 없었는데도. 붉은 육류를 먹지 말라는 말에 소와 돼지고기를 입에 대기 껄끄러워졌고, 석류나 카페인 같이 에스트로겐을 자극할 만한 것들을 거의 끊었었다. 그 때문에 당시 2개월 정도는 섭식장애가 와서 힘들기도 했다. 10kg 이상이 훅 빠졌었다.
우울감은 그렇게 점점 커져가고 불안함이 나를 집어삼켜갔다. 그렇게 몸이 덜덜 떨리면서 잠에도 들지 못하는 상태가 됐고, 분명 보일러를 틀고 두꺼운 이불을 덮고 잤는데도 식은땀을 흘리며 오한과 함께 깨기 시작했다. 신체화가 제대로 시작됐다. 아, 몸이든 정신이든 건강한 곳 지금 하나도 없구나. 멈추지 않는 눈물 속에서 왜 이렇게 모든 게 망해버린 건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꼬여버린 건지..
내겐 지금의 나를 구할 약이 필요했다.
'제발 다른 사람들처럼 잠 좀 잘 자게 해주시고, 벌벌 떨면서 자고 싶지 않아요. 이불을 덮었는데도 왜 이렇게 추운지 모르겠어요. 잠에 들지도 못하겠고, 그렇다고 제정신으로 일어나지도 못하겠어요. 도와주세요.'
간절한 마음으로, 살고 싶어서, 가장 가까운 정신건강의학과에 처음으로 발을 디뎠다.
죽고 싶었는데, 결국 살고 싶다는 게 제 마음이었어요. '잘' 사는 것, 말이에요. 온갖 부정적인 생각 끝에서 많은 것이 나아졌냐고 묻는다면 쉽게 답하긴 어렵지만, 여전히 살고 있습니다. 이런 저도 살고 있으니,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이 세상에서 살 자격이 충분합니다. 오늘은 당신을 위로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