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사람도 있어요, 그러니 괜찮아요.

나의 우울증 이야기, 세 번째: 자기고백과 자기노출

by 그냥나

일상 이야기를 쓰다 잠시 지겨워져 내가 사는 방식을 공유해보려 한다.


자기고백과 자기노출.

자기고백은 나의 이야기를 고백하는 것이고, 자기노출은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다. 대충 비슷한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다. 오늘은 나의 일상 이야기를 벗어나 잠시 '자기고백과 자기노출'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나는 힘들다는 이야기를 타인에게 굉장히 많이 늘어놓는 편이다. 가족 중에서는 오빠와 동생, 고등학교 동창 7~8명, 가장 친한 대학 동기 2명, 인스타그램 친한 친구로 설정해 둔 이들(물론 스토리로만 공유되는 이야기에 한함), 총학생회를 하며 친해진 언니와 오빠, 인턴 동기,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선생님. 그리고 자살충동이 심하게 일었을 때에는 정신건강 위기 상담전화인 [1577-0199]와 자치구정신건강복지센터의 상담사님까지. 아, 생각해 보니 개인적으로 친밀하다고 여겨지는 교수님들께도 메일을 보내 징징거리곤 했다.


아마 이 외에도 많은 사람들에게 힘들다는 이야기를 했을 것이고, 죽고 싶다는 이야기를 돌려 말했던 것 같다. 내게는 이게 생존 방식이었다. 사회복지실천론에서 배운 내용 중 하나가 '현재 상태에서 내가 활용할 수 있는 자원을 파악하는 것'인데, 그렇다 보니 주위 사람들에게 힘들다는 신호를 보내고 도움을 요청하며 어푸어푸 우울과 불안이라는 물속에서 빠져나오려 노력했다.


* * *


나는 내가 놓인 상황과 감정, 떠오른 생각들을 마구잡이로 이야기하며 여기저기 곳곳에 도움을 요청했다. 가끔 '○○이가 그런 생각도 해?', '○○이가 슬프다는 건 처음 듣네.'라며 내가 부정적인 생각을 전혀 하지 않을 사람으로 보는 경우도 있어, 가끔 당황스럽기도 하지만.. 아무튼 난 내 주위의 수많은 사람들을 자원화(수단화하는 것 같아서 조금 미안하지만, 나는 내 주위의 사람들을 목적으로 대하고 있다.)하여 이야기를 늘어놓고 위안을 찾았다.


타인에게 의지하고, 타인의 인정을 받아야 하는 기질적 특성을 갖고 있어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아무튼 내게 자기고백과 자기노출은, 적어도 지금까지는, 내게 최고의 회복 수단 중 하나다.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상대에게 나의 이야기를 하면서 무겁게 지고 있던 짐을 내려둔다. 그리고 '말' 혹은 '글'이라는 수단을 통해 문제를 꺼내놓고 보다 객관적으로 상황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 넘치던 감정이 아주 조금은 나아지는 데 도움을 준다. 그 속에 담긴 '나 좀 위로해 줘', '나 좀 지켜줘'라는 메시지는 자연스레 상대에게 전달이 된다.


11월에 경험한 심각한 자살 충동. 그리고 이 외에도 느꼈던 수면 장애로 인한 역기능적 사고, 최종합격의 문턱에서 느낀 좌절감, 약을 먹을 때마다 언제쯤 다 나을 수 있나ㅡ아니 낫긴 하는 건가 싶은 생각들, 타인과의 비교에서 오는 압박과 잔혹한 자기평가의 시간들, 스스로 생채기를 내는 모든 시간들. 이런 모든 것들을 잠시 내려놓고, 또 꺼내놓고, 다른 이들에게 이야기하며 '나 이만큼 아팠어'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것. 사회적 치부로 여겨지는 것을 내뱉을 수 있는 용기이자 살고 싶다는, 그리고 살려달라는 신호.


자기고백과 자기노출이 없었다면 아마 나는 주위에 어떤 신호도 보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냥 하루하루 어두워져 가다 시름시름 세월이 흐르는 대로 지쳐갔을 것이다. 그러다 무언가를 포기했을지도 모르고. 그러나 이 상황을 인정하고 사람들에게 고백함으로써 살아가게 됐고, 위로받으며, 조금씩 일어서게 됐으니 나는 생존 방식을 터득한 것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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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이런 자기노출을 타인을 위로하는 데 종종 쓴다. 특히 자살충동이 심했던 경험을 이야기한다. 정말 죽고 싶었는데 그때마저도 다른 사람들을 생각하는 나 스스로가 너무 한심했었다고, 근데 그게 알고 보니 잘 살고 싶었다는 신호였다고. 또 같이 취업 준비를 경험하는 또래에게는 취업 준비 속에서 느낀 압박감과 힘들었던 경험을 이야기하며 공감대를 형성한다. 지금 이대로도 충분히 잘하고 있다는 나의 진심이 온전히 가닿지 않을지라도, 상대의 마음에 아주 작은 영향이라도 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쓰는 이유도 똑같다. 이름만 대면 다 아는 인서울 대학교에 진학해, 간판학과 중 하나에 입학하고, 학생회장까지 할 정도로 활발하게 잘만 지내던 애가 순식간에 꺾이고-휘둘리고-죽어갈 줄 누가 알았겠나. 나도 지금까지 살아온 것처럼, 내 미래가 탄탄하게 나아갈 줄만 알았다. 누군가는 내가 슬퍼하는 모습을 아예 본 적도 없다고 이야기한 것처럼, 밝게 잘 살아온 내가 중증도 우울증과 공황장애로 고생할 줄 알았겠냐고요.


그래서 '아, 이런 사람도 우울증에 걸릴 수 있구나' 혹은 '이 사람도 이렇게 (우울증에 절여져) 살았는데 나는 상황이 더 괜찮으니 앞으로 살만 하지 않을까' 정도의 위로를 독자들이 얻어갔으면 좋겠다. <그저 열심히 살았을 뿐인데>에서는 2024년부터 앓아온 정신질환은 물론, 그 기저에 깔린 과거의 이야기도 담길 예정이기 때문에 아마 끝을 달려갈 즈음에는 정말로 "저렇게 사는 사람도 지금은 많이 나아졌다고 하니, 나도 희망이 있겠는 걸?"이라고 생각할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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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고백과 자기노출의 적절한 활용을 통해 나를 위로하기도, 타인을 위로하기도 하며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요즘. 우울증과 불안 등도 마치 계단식으로 나아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11월에 올라온 자살 충동을 상담으로 풀어주고, 규칙적으로 약을 복용했더니 근래 2주는 상태가 확 좋아졌다는 걸 느낀다. 자기고백과 자기노출을 통해 주위의 자원을 활용하는 것도 한몫했으리라. 하지만 꾸준한 약 복용과 상담의 효과도 매우 컸을 것이다. 그러니 병원 혹은 상담도 잊지 말자.


아, 자기고백과 자기노출이 망설여지는 이들은 일기처럼 다이어리나 블로그에 혼자서만 볼 수 있도록 자신의 감정과 이야기를 정리해 보는 것도 추천한다. 그러다 보면 아주 조금씩 진정되고 있는 자신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다시 한번 이야기하지만, 나 같은 사람도 아직 살아있다. 그리고 어떻게든 사회에서 1인분을 해보려고 뭐라도 하고 있다. 나도 이렇게 사는데, 이 글을 읽는 당신은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이 글을 다 읽은 자신을 오늘도 꼭 안아주고 하루를 마무리하길 바란다.


어느새 겨울의 한가운데 놓이게 됐다. 서로 포옹을 나눌 수는 없어도, 적어도 스스로에게는 포옹을 베풀 수 있길 바란다.





아마 혼자였으면 이겨내지 못했을 힘든 순간들이 벌써 2년 가까이 되어가고 있네요. 물론 셈하지 않았을 뿐, 심적으로 지치기 시작했던 2020년부터 센다면 6년이 다가오고 있는 거겠죠. 그런데 생각해 보면 저는 참 나약해서 이런저런 위기가 많았어요. 다만 그럴 때마다 주위의 소중한 사람들 덕분에 다시 살게 됐답니다. 새롭게 얻은 삶이 많다는 걸 다시 느끼고, 그만큼 저도 누군가에게 새로운 삶을 선물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느끼게 되네요. 오늘의 이야기가 단 한 분께라도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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