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증도 우울증과 공황장애, 공식 환자가 되다

나의 우울증 이야기, 네 번째

by 그냥나

정신건강의학과 특성상 예약이 필요하다는 걸 몰랐다. 그냥 살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 하나로 일어나자마자 뛰쳐나갔다. 가장 가까운 병원에 가서 '저 초진인데요..'라고 말하며 접수를 했다. 대기하는 사람들을 보니 어르신들이 꽤 계셨다. 그 속에서 섞이지 못한 이방인처럼, 마치 혼자 다른 차원에 온 사람처럼 의자에 앉아 기다렸다. 그 앉아있는 순간에도 호흡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모를 만큼 엄청나게 긴장했었다.


○○○님, 진료실 들어가실게요.

예약도 없이 방문했지만 그래도 꽤 빠르게 진료를 볼 수 있었다. 나의 첫 선생님은 여자선생님이셨다. 들어가자마자 울음이 터졌다. 지금 생각하면 지지리궁상인 것 같기도.. 아무튼 계속 흐르는 눈물을 닦으면서 당시 상황에 대해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지금 안 오면 진짜 죽을 것 같아서 왔어요. 취업을 해야 하는데, 취업이 잘 안 돼요. 그래서 압박감이 너무 심하고 잠을 못 자요. 잘 때도 마음이 불안해서 잠들기 직전까지 불안함과 불쾌함을 느끼고, 일어나는 것도 원해서 일어나는 게 아니라 오한이 일면서 식은땀을 흘리면서 일어나게 돼요. 저한테는 소속이 없는 게 엄청 큰 문제인 것 같고요. 그리고 먹는 것도 거의 못 먹고 있고요. 솔직히 하고 싶은 일이 뭔지도 모르겠어요. 제가 하려는 일은 너무 TO도 없고…”


첫 정신건강의학과에서는 MMPI나 TCI, 문장완성검사 같은 큰 검사가 이루어지지 않고 바로 진료를 진행했기 때문인지, 히스토리를 이야기하기보다는 당장 눈앞의 문제였던 '취업'과 관련된 이야기를 나눴다. 나 또한 지금 겪는 문제의 원인이 그것이라 생각했고, 이에 관련해서만 이야기를 했다. 경제적 독립을 이뤄서 빠르게 취업을 하는 게 필요한데, 먹고살 돈이 조금 있기는 하지만 돈이 점점 떨어져서 더 불안하다고..


담당 선생님은 공감을 기반으로 도움을 주시고, 약을 처방해 주셨지만 불안감을 해소해 주시지는 못했다. (여기에는 내가 너무 압축적으로 원인을 이야기한 탓도 있다고 본다. 조금 더 상세히 말했다면 달라졌을까?) 그저 지금을 쉬는 시간으로 생각하고, 오히려 여유 있게 생각하면 긍정적으로 이 시간을 보낼 수 있지 않겠냐며 조언해 주셨다. 약도 처방해 주셨지만, 너무 약한 탓에 효과를 전혀 보지 못했다. 기억 상으로는 신경안정제 한 알과 인데놀 한 알이었던 것 같다. (아, 이때 정신건강의학과는 병원 내부에서 약을 제조하기도 한다는 걸 처음 알게 됐다. 정신질환은 여전히 부끄러운 건가.. 물론 전혀 그런 게 아님을 알지만 기분이 이상해진다)


* * *


그렇게 한 달 반 정도 지났을까? 차도가 없는 내게 믿음직한 세 분의 어른께서 병원을 추천해 주셨다. 병원을 바꾸는 것 자체에 거부감을 느끼고 있었던 내게 계속해서 새로운 병원을 추천해 주신 것이다. 원장님까지 구체적으로 추천을 받았던 터라, 남자 원장님으로 초진 예약을 잡았다. 대체 뭐가 다르길래 추천하시는지 몰랐지만, 여차하면 원래 병원이나 다른 병원에 가면 된다는 생각이었다.


초진 예약을 잡고 도착한 새로운 정신건강의학과. 불안한 마음을 꼭 붙잡고 진료실로 들어갔다. “보자, 어떻게 오셨어요?” 원장님의 말씀에 먹던 약을 꺼냈다. “주변 추천으로 왔는데요. 제가 어디서부터 말씀드려야 할지..”


어디서부터 이야기할까 고민하던 중 일단 생애주기 전체에 대한 이야기는 잠시 멈추고, 졸업 이후 느낀 불안감과 인턴 이후 다니게 된 회사에서의 자살 충동 및 수동 공격성, 그리고 현재 느끼는 과한 불안과 공포에 대해 조금씩 설명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눈물은 필수. 몸을 덜덜 떨면서 이야기를 풀어냈다.


‘그 직장이 제가 너무 가고 싶었던 산업군인데, 생각보다 너무 다르고, 저한테 대하시는 상사의 태도도 너무 힘들어서 그만뒀어요. 근데 그때 하필 몸도 안 좋아졌고요. 출근하는 지하철이랑 버스에서 사고가 났으면 좋겠다고 느끼고, 마지막 주에는 급발진으로 저만 죽었으면 하는 거예요. 그 정도로 자꾸 제가 저 스스로한테 이상한 생각이 드니까 이건 아닌 것 같아서 왔어요. 또 5월에 공채가 열렸던 다른 회사에 붙겠지, 하는 마음으로 그나마 멘탈을 잡고 있었는데 떨어지니까 당장 어떻게 먹고살아야 할지 모르겠어요.’


횡설수설 이루어지는 말에 원장님은 "아니, 회사가 이상하면 그 사람들을 욕해야지! 죽긴 왜 죽어!"라며 호통 아닌 호통과 함께 나를 위로해 주셨다. 그때 내가 가지고 있던 긴장이 탁! 하고 풀리며 라포가 형성되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러곤 '마침 오늘이 안 바쁜 날인 걸 어떻게 알고 왔냐'며 '오늘 검사 다 하고 결과도 보고 갑시다'라고 하신 후 나를 진료실 밖으로 내보내셨다.


당시 기준으로 약 1년 반 전에도 학교에서 풀배터리 검사를 진행했던 터라 병원에서 진행한 검사들이 낯설지는 않았다. 문장완성 검사나 MMPI 검사 등을 진행헀고, 태블릿으로 근 2주 간의 상태를 체크했다. 그리고 HRV 검사, 즉 심박 변이도 검사를 통해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의 상태와 스트레스, 피로 등을 확인했다. 물론 나는 굳은 채로 요상한 파란 화면에 그려지는 그래프만 보고 있었다.


제법 긴 시간 동안의 검사가 끝나고 결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러 진료실로 다시 들어갔다. 그런데 원장님께서 나와 컴퓨터 모니터를 몇 번이나 번갈아 보시더니, 심각한 표정으로 '몸이 너무 안 좋아, 몸이 너무 안 좋아요.'라고 말씀하셨다. 그것도 심지어 적어도 3년 전부터 관련된 증상이 있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신기하게도 정말 3~4년 전부터 힘든 여정이 시작됐다. 더군다나 광장공포증을 경험한 건 2년 전쯤이었으니. 내 상태가 간단한 검사 하나로 바로 드러났다는 게 정말 신기했다.


* * *


한편으로는 아프다는 사실을 객관적으로 인정받은 것 같아 안심했다. 아, 내가 지금 아픈 게 '가짜 아픔'이 아니라 '진짜 아픔'이구나. 누적적으로 쌓여온 심리적 스트레스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몸으로 나타난 것이구나. 병을 진단받고 기뻐하는 사람이 또 있을까? 나는 그동안 내가 아팠던 사실을 공식적으로 인정받았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이 병원에 오길 잘헀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난 3년 이상이나 아픈 상태였다. 보통 초기 우울증 환자들은 교감신경이 위로 솟고, 부교감신경이 아래로 내려간다고 한다. 근데 나는 박스플롯에서 교감신경이 아예 바닥을 기고 있었고, 부교감신경은 위를 뚫고 있었다. 보통 교감신경을 자동차의 액셀로, 부교감신경을 자동차의 브레이크로 비교하곤 하는데 나는 너무 지친 상태로 계속 브레이크를 밟고 있는 상태였던 것이다. 만성 스트레스 상태로 모든 것에 있어 지치고 무기력함을 느끼는 게 당연한 환자였던 것이다.


결과지를 놓고 설명을 같이 들으니, 내가 왜 지쳐있는지 그리고 무기력한 게 당연한 상태인지 알 수 있었다. 쉼이 필요한데, 액셀이 말을 듣질 않는데 앞으로 나아가려 하니 나라는 자동차를 어떻게든 밀어보고 끌어보고 그랬던 것이다. 특히 오르막에서는 브레이크를 밟은 상태론 차가 올라가지도 않는데,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내려가지 않으려 발버둥쳤으니 차 밑에 깔리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그렇게 본격적으로 약물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지난 병원에서는 고작 두 알을 아침과 저녁에 먹었다면, 여기서는 상당히 많은 양의 약을 통해 치료를 시작했다. 우스갯소리로 친구들에게 아침이랑 저녁은 시리얼마냥 약을 먹어서 이미 배가 부르다고 할 정도였다. 가끔 이런 소릴 하면 놀라는 친구들이 있었는데, 진짜 순도 100%의 자학 개그였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 * *


다행히 나는 약물에 대한 거부반응이 크게 없었다. 어떤 약을 먹어도 약간의 두통 정도만 있고 며칠 뒤에는 그것마저 사라졌다. 이것도 돌아보니 행운이었다. 누군가는 약이 맞질 않아 몇 번이고 약을 바꾸기도 하는데, 내 몸이 무던한 건지-혹은 그냥 내가 아픈 걸 인식을 못하는지는 몰라도 아무튼 적당하게 잘 적응했다. 물론 여전히 식은땀을 흘리며 새벽에 깨기도 했고, 취업에 대한 조급함으로 불안이 갑자기 확 찾아오기도 했다.


당시 불안을 잠시나마 가라앉혀주는 것 중 하나가 '호주 워킹홀리데이'였는데, 상세한 이야기를 다루기에는 글이 조잡해질 것 같아 조심스럽지만, 여러 블로그들을 보며 다양한 선택을 한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조금씩 안정을 찾고자 했던 것 같다. 결국 '호주 워킹홀리데이'는 비자 신청도 못하고 끝났지만, 당시 나의 여름 속 불안을 지켜준 워홀러들에게 잠시 감사 인사를 드린다.


그래도 구직은 해야만 했다. 먹고살아야 하니까. 불안할 땐 워홀러들의 이야기를 읽고, 조금 괜찮아지면 구직 사이트에 들어가 지원할 수 있는 공고를 찾고. 심지어 공유오피스 청소일까지도 알아봤다. 새벽에 공유오피스 청소를 하고 오후에 대형학원에 출근해서 사무직으로 일하는 것을 계획으로 세워 불안함이라곤 하나도 느끼지 못하도록 미래를 설계해 봤었다. 그러다 덜컥 대학교 계약직으로 1년을 일하게 되었다.


취업. 그토록 바라던 경제활동이자 소득활동.

기뻤지만 병적인 불안감은 쉽게 가라앉지 못했다. 휴대폰으로 워킹 홀리데이를 계속 검색하고, 맡은 일을 잘 해내지 못해 혼날까 봐 떨기도 많이 떨었다. 아, 내 마음속 불안은 경제적 안정이나 소득 때문이 아니었구나. 당시에는 새로운 일에 적응하고, 돈을 번다는 사실에 행복을 느꼈다. 근데 취업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불안이 이어졌던 것을, 이제 와 돌아보니 '나 자신의 변화'가 절실히 필요한 때였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걸 해낸 지금 이 순간 큰 감사를 느낀다.


중증도 우울증과 불안장애, 강박장애, 수면장애 등 온갖 정신질환을 안고서 근무했던 1년.

그 1년을 다음 화에서 다뤄보겠다.





일주일 전부터 잠을 잘 못 자다가 그래도 통잠을 좀 잘 수 있게 됐는데요. 오늘은 통잠을 얻은 대신 악몽을 내어준 날이었어요. 그 악몽은 바로 전 직장 팀장님이 등장하는 꿈이었는데요. 잘 모르겠어요. 누군가에겐 좋은 사람일지라도, 또 저에게도 좋은 순간이 있었지만, 긍정적인 인물로 떠오르질 않는 걸 보면 제게 그분은 여전히 트라우마적인 존재로 남아계신가 보네요. 다음 편에서 글을 쓰며 완전히 털어내 보려고요.

이전 03화이런 사람도 있어요, 그러니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