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 아니 환장의 조직

나의 우울증 이야기, 다섯 번째

by 그냥나

타인.

내 인생에서 '타인'은 빼놓을 수 없는 존재다. 아니, 인간이라면 당연히 타인과 살아가야 하는 사회 속에 존재하니 모든 사람의 인생에서 '타인'은 빼놓을 수 없다. 그런 인간들 중에서도 난 유독 내 인생을 희생하며 약자들, 타인들의 삶을 더 낫게 만들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진 탓에 사회복지사가 되었다. 물론 현장 경험은 없지만, 자격증은 있다. 현장 사회복지사가 보기엔 사회복지사가 아니려나?


아무튼간에, 사회복지학을 공부하고 사회복지사가 되어서도 현장에는 나가지 않았지만 타인을 위한 삶을 살겠다는 마음은 여전했다. 그렇게 선택한 일은 ESG였다. 이름이 좀 멋지지 않나? 물론 이름 때문에 선택한 건 아니었고, 안정적인 재정을 바탕으로 사회공헌을 수행하고 확장시켜나가고 싶어 해당 분야로 직무를 정하게 됐다. 다만, 환경 전공이 아니었던 문과생이었기에 관련 경력을 쌓거나 입사하기에는 조금 부족한 부분이 있었다.


그래서 선택한 곳이 바로 꿀직장, 신의 직장이라는 '대학교'. 그리고 ESG라는 조건도 충족시킨, 대학의 ESG 유관 부서였다. 환상과 환상이 더해진 직장 그 자체였고 앞으로의 커리어도 여러 방면으로 뻗어나갈 수 있는 곳이라 생각했다. E(환경), S(사회), G(거버넌스) 중 Social 파트만을 전공한 나로서는 ESG라는 경력 한줄 자체만이라도 갖는 게 필요했다. 거기다 적당한 직주거리까지 충족시킨 이곳이 딱 좋았다. 그렇게 세 번이나 지원한 끝에 (1년 계약직이었지만) 입사를 하게 됐다.


* * *


해당 부서에서 맡게 된 업무는 크게 두 가지였다. ESG 평가 대응과 사회공헌 세부 사업 진행. 그래, 이렇게 두 가지였다. 두 가지였어야만 했다. 물론 회사생활을 하다 보면 자연스레 서무일을 한다거나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일이 있는 것을 안다. 또 때로는 업무 범위보다 조금 벗어나더라도 담당해야 함을 안다. 업무가 유동적으로 진행됐던 부서 특성상 더더욱! 그래서 시키는 대로 일을 했고, 프로젝트성 일도 제법 많이 담당했다. 그런 탓에 후임자가 동료에게 '이걸 어떻게 혼자 하신 거래요?'라며 이야기했다고. 그런데 저도 알고 있었어요. 이게 도를 지나쳤다는 걸. 내 마음속에는 '이게 맞나?'라는 문장이 하나둘셋넷다섯여섯일곱여덟… 계속해서 떠올랐다.


일단 첫 번째 문제, 리더가 제 업무를 몰라요.

"내가 평가는 잘 몰라서, 잘 되고 있어?"

이 말은 아직도 오디오가 생생하게 재생되는 것만 같다. 입사 3개월 차였던 내게, 그런 질문을 하는 게 맞을까? 적어도 해당 업무에 대해 알아보고, 구체적인 진행사항을 묻거나.. 체크할 부분을 정해와야 하는 게 아닌가? 차라리 마이크로매니징이 낫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 의문은 당시에도 당황스러웠지만, 퇴사 이후 조직관리 이론을 다시 공부하면서 헛웃음이 나는 에피소드가 됐다. 리더는 팀원의 업무를 인지하고 분장해야 하고, 적어도 그 플로우를 파악해야 하는 책임자의 위치다. 그 돈을 받으면서도 꼴랑 1년 계약직인 나한테 모든 걸 맡긴다는 뉘앙스의 물음을 뱉다니. 다시 생각해도 저런 리더는 되지 말아야겠다.


두 번째 의문, 체계가 없어도 너무 없는데 이게 된다고?

사실 이게 직접적인 퇴사 원인이다. 첫 번째 문제와 연결되기도 하고. 체계가 없는 조직.. 그래, 백 번을 양보해서 그럴 수 있다고 치자. 그런데 주기적으로 개최하는 행사인데도 담당 역할이 제대로 정해지지 않아 실무자끼리 다시 논의하고 새롭게 분장을 짜는 게 과연 맞는 일인가? 이것도 어떻게 보면, 리더가 실무를 제대로 수행해본 적 없는 탓에 혹은 능력이 부족한 탓에, 실무자들이 알아서 부족한 부분을 메워왔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업무 분장표를 보여주고 싶을 정도다.


인턴으로 근무했던 기관은 단 하루의 행사, 혹은 한두 시간의 행사더라도 아주 상세하게 그 역할을 나눴다. 그 덕에 티타임 준비부터 행사 마무리까지 항상 큰 실수 없이 흘러갔었다. 그런데 이 부서는 대충 표로 할 일만 나누고 옆에 이름을 적는 게 끝이었다. 데드라인? 그런 건 없었다. 행사 당일까지 준비만 되면 되는 것이었다. 미리 준비하려고 하면 너무 이르지 않냐고 말하고, 늦어지면 또 늦어지는 대로 왜 미리 하지 않았냐는 질책을 듣는 이상한 곳이었다. (심지어 퇴사를 할 때도, 퇴사가 3일 남았을 시점에 책상 정리를 마쳤다가 왜 벌써 정리를 하냐고 했다. 그럼 언제 해요? 마지막날 그 많은 짐을 다 들고 가요?)


문제를 찾다 보니 파헤칠수록 계속 뭔가가 나온다. 아직도 한이 맺힌 게 많나 보다. 한글에서 '표 나누기'를 할 줄 모르는 건지 전혀 관계없는 일 두 가지를 묶어놓고 사람을 두 명 넣어서 실무자끼리 알아서 일을 나누도록 하게 만들기도 했다. 이건 진짜 표를 못 나누는 사람일 것 같기도 한 게, PPT에서 동그라미 하나 제대로 배치를 못해서 출근하자마자 불려 갔었어서.. 아, 취준생에게는 한-컴-토를 필수라고 주장하더니, 왜 관리자들은 기초도 하지 못 하나요.


생각할수록 답답하다. 그래, 내부 행사들은 어떻게든 커버할 수 있었다. 그런데 외부 대학 참여 등 부서가 감당할 수준이 안 되는 행사를 개최했을 때에는, 담당 실무자도 일을 던져버린 것처럼 일을 하지 않고 학생 조교님들이 가장 체계적이고 열심히 일을 했었다. 당연히 리더들은 '그냥 이렇게 하죠?' 따위의 말만..(^^) 대략적인 구상이나 내용을 공유해줘야 하는데, 그런 것 없이 업무 분장이 이루어지고, 그 업무분장은 일의 순서나 계획에 맞춰진 것이 아닌 생각나는 대로 적힌 1. ___ 2. ____ 3. ____ 따위의 줄글로 적혀있었다.


가장 한심했던 건 협조 부서의 업무 분장표 공유 요청에 '그냥 환영만 해주면 돼요^^'라는 식으로 돌려보낸 것이었다. 내부적으로도 정리가 안 되었으니, 타 부서에게 공유할 자료가 있겠는가? 본인이 봐도 말이 안 되는 업무분장 자료이니ㅡ심지어는 어느 시점부터는 카카오톡으로만 추가로 업무를 부여해 문서상으로 기록·공유되지 않은 것도 있었다ㅡ공개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실무자들의 걱정 어린 말들은 계속해서 듣지도 않은 채, 본인들끼리만 준비하다가 행사 직전에서야 일이 커진 걸 깨닫고 업무를 다시 나누고.. 답답함의 끝을 달린 부서였다. 그래서 당시 회의 때 '주말을 빼면 당장 내일 행사인데, 정리되었다는 느낌이 하나도 없다'라고 대놓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신입 '주제에' 강하게 말하긴 했지만, 제발 본인들의 역량이 부족함을 인정하고 지금이라도 똑바로 준비하기를 바랐다. (돌아온 반응은 사람 때문에 스트레스받지 않게 하자는 그런 뉘앙스의 말, 내가 이의를 제기한 것 자체가 이 행사에 가장 큰 지장인 것마냥 진짜로 그 이야기가 하고 싶냐는 역질문)


참고로 당시 나는 퇴사 예정이었으므로 행사에 참여하지 않기로 했으나, 리더A의 요청으로 각종 이미지와 이것저것 잡동사니를 만들고 있었다. 그런데 리더A가 그 내용을 리더B와 공유하지 않아, 회의가 끝나고 '○○선생님은 그럼 지금 하는 것까지만 하고 행사에 참여하지 않기로 해요.'라는 이야기를 리더B에게 들었어야 했다.


거기서 '저 원래 여기 참여 아예 안 하는 거였어요.'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놈의 '요즘 MZ' 이야기는 듣기 싫어서 그냥 말을 안 했다. 또 리더B가 일대일 면담을 하자고 했으나, 노동자로서 어떤 쓸데없는 소리를 들을까 싶어 그러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적어도 노조 관계자라도 불러서 이야기를 듣는 게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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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외에도 부서에 정이 떨어진 사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아무래도 체계가 없었던 게 확실한 퇴사 이유가 되어줬다. 환장! 환장! 환장!의 이유말이다. 정신건강이 차차 나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저 리더들이 꿈에 나오면, 온몸이 스트레스를 받은 상태로 일어나게 된다. 기분이 매우 더러워진다. 다른 사람들은 이런 불합리한 조직 속에서 잘 지내는데, 나만 이상한 사람이 된 것 같았던 당시 상황은 나의 정신질환을 더욱 악화시켰다. 물론 이제는 거기서 다 털어놓고 나온 덕에 그냥 '조직은 조직, 나는 나'인 상태로 살아가는 게 삶에 이롭다는 걸 느꼈지만. (또 능력 없이 라인 잘 타고 정치질만 잘해도 오래갈 수 있다는 걸 알게 되기도 했고-)


지금 와서 돌아보면 그 조직은 20대 여성 사회초년생을 뽑아 가스라이팅하는 곳이라는 걸 깨닫는다. 하하. 서울시 생활임금에도 미치지 않는 급여와 일을 안 하는 사람이 오히려 오래 다니는 곳. 일보다 본인의 부동산 투자를 더 많이 생각하는 리더가 있는 곳. 그래서 눈치를 보게 만드는 곳. 본인의 사업도 아닌데, 본인의 학생도 아닌데 학생들에게 막말에 가까운 언어를 뱉는 곳.


끝없이 이어지는 타 대학과의 비교와 총장 지시에 따른 급격한 방향 전환, 예산은 없는데 사업을 물어오는 사람들, 예산 가지고 실랑이 벌이다가 결국 애매한 시기에 허가해서 다 다시 시작해야 했던 일들 등등.. 돌이켜 보면 첫 직장으로 여길 다닌 게 어쩌면 축복이겠다. 이것보단 덜 하겠지, 그리고 이런 식으로는 행동하지 말아야겠다, 라는 생각들을 참으로 많이 하게 되었으니까.


그래도 몇몇 좋은 동료들을 만나 여전히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또 나의 퇴사를 위해 차까지 몰고 나가 점심을 사준 팀도 있고, 퇴사 메일에서 정말 큰 위로를 해주신 분도 계시다. 그래, '진짜' 좋은 사람들도 봤으니 그걸로 충분하다. (아니, 사실 안 충분해.. 싫어하는 사람들이 사라지면 좋겠어 내 기억에서..)


업무 과정에서 학생들도 참 많이 만났다. 일부 학생들과 업무를 수행하며 트러블이 있기도 했지만, 그건 이제 신경도 안 쓰인다. 아무리 애써도 문제 있는 애들은 문제가 있는 터라 알아서 잘 망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관심도 안 간다. 반대로 사랑하는 아이들은 지금껏 열심히 해온 대로 행복하고 발전적인 일들이 가득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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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의 이야기를 세세하게 풀고 싶은데 아무래도 강렬헀던 감정이 남았을 때만 기억이 난다. 요약해서 표현한 것들을 다 풀어내려면 아마 일주일, 아니 열흘은 넘게 글만 써야 할 것 같다. 근데 이런 나쁜 기억들은 짊어지고 가 봤자 나만 손해라는 걸 안다. 정말 힘들 때 학생들을 보고 묵은 체증이 내려간 듯 편안해졌던 그때의 기분과, '선생님 덕분에 감사했다'는 이야기를 남겨준 학생들, 방학인데도 퇴사한다고 행정실에 찾아와 준 학생 등 좋은 것들만 기억하면 된다. 내가 진심을 다한 만큼, 진심으로 다시 나를 대해준 사람들만!


전편에서 언급한 회사에 이어 이곳도 환상? 아니 환장!의 공간이라는 걸 느꼈고, 안정됐다 싶을 때 찾아온 공황 증세까지 즐길 수 있었다. 거의 두 달에 한 번 꼴로 눈물을 흘렸을 정도이니 쉽지 않은 곳이었다. 혹자는 그 조직에서는 그렇게 얍삽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니 불쌍하게 여겨주자고 했고, 모교 교수님께서는 이런 나를 보며 너무 열심히 하려는 마음 때문이라고 하셨다. (Positive)


맞다. 나는 뭐든 열심히 그리고 가능한 최선의 환경을 만든 상태에서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었다. 그 환경을 만드는 과정이 비록 힘들지라도 더 나은 결과를 위해서라면 과정에서 조금 더 희생하는 것이 그저 재밌고 좋았었다. 그런데 비상식적인 임금과 노동량, 리더의 하하호호 웃기만 하는 무쓸모 리더십, 관계도 없는 사람에 의해 학생들의 행사가 너무나 가볍게 치부되는 상황, 노조를 언급하는 순간 꼭 진행되는 면담과 가스라이팅 등 그런 과정들을 겪으면서 열정을 잃어갔다. 우울증은 더 심해져 갔고, 약은 증량의 증량의 증량을 불러왔다.


1년이라는 계약기간이 끝나자마자 소위 말하는 '탈주'를 하면서도 부서를 사랑하긴 한 탓에, 아주 꼼꼼하게 인수인계서를 쓰고 마지막까지 담당 업무를 수행하고 나왔다.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 해도 똑같이 '끝까지' 일을 하고 나오긴 하겠지만, 한편으로는 그때의 나에게 '뭘 그렇게 열심히 하냐'라고 '다들 대충 하는데, 네 사업도 아닌데 그냥 신경 쓰지 마'라고 이야기해주고 싶다.


에휴. 오랜만에 돌아본 회사 생활. 참 좋았고 또 그보다 배로 지쳤다. 다신 돌아가고 싶지 않은 곳. 다시 만나기 싫은 리더와 실무자가 공존하는 곳. 새로운 시작을 맞이할 회사에서는 '적당한' 관계 형성과 '적당한' 업무 수행, 뭐든지 다 '적당히'하며 나를 지키는 것을 가장 우선으로 해야겠다.





최근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받던 상담을 종결했습니다. 다른 이유는 아니고 이제 다시 일을 하게 되어, 평일에는 상담을 받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이에요. 그래도 글은 계속해서 쓰면서 열심히 과거를 다시 정리하고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아마 다음 글은 퇴사 이후 겪은 감정들과 '쉼'에 대한 이야기가 주가 될 것 같아요. 생각보다 제가 근무한 업계가 좁다 보니 특정되기 쉬운 터라 뭉뚱그리는 과정에서 글이 많이 축약되고 있는데요. 그래도 가능한 상세하게 썼으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다음 편에는 저의 감정들에 대해 더 자세히 다뤄볼게요. 오늘도 글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고, 살아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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