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우울증 이야기, 여섯 번째
쉬었음 청년.
일을 하지 않고 그저 쉬는 청년들에게 붙는 흔한 수식어다. 요즘은 저 용어 자체의 문제를 인식해서 달리 용어를 쓰자고는 하지만, 뭐 일단 내가 퇴사하던 시점 그리고 그 이후까지도 '쉬었음 청년'이라는 단어가 이리저리 쓰였으므로 한 번 데려와봤다.
나는 강제로 '쉬었음 청년'이 되어야 했다. 퇴사를 하고 정신건강의학과 선생님께 들은 가장 첫 번째 말은 '적어도 3개월은 쉬세요'였다. 아, 그래. 실업급여도 나오니 급하게 다음 일자리를 구할 필요도 없고, 망쳐버린 정신건강을 회복시켜 보자는 마음으로 처음엔 잘 쉬었던 것 같다. 한 일주일 정도?
그런데 이상하게 참 불안했다.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데, 이렇게 가만히 있으면 또 뒤처지는 게 아닐까. 다른 사람들은 지금도 경력을 쌓고 일을 하고 있을 텐데. 혹은 영어 공부라도 하면서 스펙이라도 쌓고 있을 텐데. 그래서 사실 퇴사 후 첫 주 말고는 되려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이 커졌다.
그렇게 3주 정도 애매한 강박과 애매한 쉼을 오가며 살다가 다시 병원에 방문했다. '선생님, 근데 사실 뭐라도 해야 할 것 같고 잘 모르겠어요.' 도통 어떻게 쉬어야 할지, 정확히는 내가 지금 쉬어도 될지 고민하고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자 선생님께서는 단호하고 강하게 말씀하셨다. '쉬는 것도 무조건 필요하다'라고. '뇌와 몸은 적어도 3개월 이상 푹 쉬어줘야 쉬었다고 인식한다'라고. 그러니 제발 좀 쉬라며 내게 쉼을 강하게 권고하셨다.
그때만 해도 타인에게 큰 의지를 하고 있던 나였기에, 선생님의 그 한 마디가 큰 힘이 되었다. 아, 나 쉬어도 되는 사람이구나! 나는 쉬어야 낫는 사람이구나, 하고 스스로 잘 쉬어보자고 다짐할 수 있었다. 선생님의 말씀 한 마디 덕분에 내게 주어진 시간을 '쉬는 시간'으로 받아들였다.
대신 하루 종일 아무것도 안 하는 삶은 계획형(J)인 내게 도저히 힘들어서, 아주 쉬운 단계의 영어 공부와 독서하기를 매일 실천했다. 그렇게 조금씩 루틴을 지키면서, 하루에 내가 목표한 아주 작은 양을 수행하면서, 대신 나를 다그치지는 않는 게 목표였다.
* * *
결과적으로 3개월을 꽉 채워 쉬진 못했다. 나는 천성이 쉼보다는 움직이는 걸 좋아했으니 내 손은 마우스로, 내 눈은 노트북 화면으로 향했다. 각종 채용공고를 검색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내가 들어갈 수 있는 곳, 특히 지금은 경제적으로 어느 정도 소득이 있으니 급하게 계약직을 구하지 말고 '정규직'으로 입사할 수 있는 곳을 찾는 것을 목표로 했다.
그러다 한 공공기관 채용공고를 확인했고 이를 위해 서류를 쓰고 필기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사실 정말 본격적으로,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진심으로(?) 채용에 임한 것은 거의 1년 반만이어서 예전처럼 떨어졌을 때 공황이 다시 오면 어떡하나 걱정했다. 그리고 서류 쓰는 것부터 덜덜 떨게 되면 어떡하지, 걱정했고 사람이 우울증을 앓으면 인지기능 저하가 온다는데… 어쩌고 저쩌고 별 생각을 다했다.
그런데 참 감사하게도 이런 과정에서 과거의 나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서류 쓰는 것도 힘들었고, 필기 공부하는 것도 힘들었지만 오히려 그 과정에서 건강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느낌을 크게 받았다. 과거의 나는 생존수단을 구해야만 한다는 금전적 강박에 의해 이것저것 힘들어했다면, 이번 채용 준비는 재밌고 신나는 과정 중 하나라고 느낀 것이다. 힘들지만 그래도 내가 지난번처럼 떨지 않네? 이 사실 하나로 과거의 나보다 지금의 내가 성장하고 있다는 걸 느끼면서 온 맘 다해 최선을 다할 수 있었다.
특히 필기 공부를 할 때는 너무 오랜만에 공부를 하다 보니 새롭게 느껴지는 내용도 많았는데, 그래도 결국 해내는 내 자신을 보며 기특하기도 했다. 결시 때문인지, 어쨌든 열심히 해서 그런지 다행히도 필기를 통과한 나는 그 이후로 '필기까지는 내가 하면 되는구나'라는 걸 배웠다. 그리고 이젠 떨지 않고, 뭐든 당당하게 자신있게 임할 수 있겠다는 것도. 아마 이 시점에 이런 나의 삶과 감정을 공유하며 약을 감량했던 것 같은데, 뿌듯 그 자체였다!
* * *
아쉽게도 면접에서는 떨어졌지만 그 과정에서 내가 최선을 다했다는 걸 알았기에 과거의 나처럼 스스로를 책망하지 않았다. 이 정도면 진짜 잘한 거라고. 높은 경쟁률도 뚫고 필기도 스스로 해내고 심지어 면접도 꽤 나쁘지 않았으니까! (늘 면접에서 말을 저는데, 당시 면접에서는 정말 편하게 말을 하고 나왔다.)
다만 이후 이어진 진로고민이 문제였을까? 나는 면접 결과가 나온 지 3일 후부터 급격한 무기력감을 느끼게 됐다. 아마 꾸준히 해오던 공부거리가 사라지고, 뭘 해야 할지 답이 나오지 않은 상태였기에 더욱 그 무기력감을 크게 느꼈을 것이다. 또 당시 정신건강의학과 선생님에게 느낀 약간의 서운함(?)도 한 몫했던 것 같고..
그래서 당시 살면서 가장 적극적인, 그러면서도 주위 사람들이 걱정되어 죽지 못하는 내 자신이 혐오스러운 감정에 휩싸여, 자살 충동을 극심하게 겪게 됐다. 기분 전환하러 밖으로 나온 것이 아무 소용이 없을 정도로, 되려 이제 지쳐서 아무것도 하기 싫다는 생각에 가득 찰 정도로.
도저히 혼자서는 집으로 들어가기도 싫고, 그렇다고 가만히 있기엔 죽고 싶은 마음이 어떻게 날뛸지 모르겠어서 휴대폰 화면을 켜고 숫자를 눌렀다.
정신건강위기상담전화
1577 0199
얼마가지 않아 연결된 전화에 대뜸 내뱉었다.
'저 자살 충동을 느끼고 있는데요.. 그냥 말씀드리면 되나요..?'
오늘은 짧지만, 긍정적으로 변했던 순간들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순간에 다시 바닥에 처박히는 느낌을 받았던, 아주 힘들었던 시기를 적어보았습니다. 최근 다시 일을 시작하게 되어 하루에 조금씩 쓰던 글도 잘 못 쓰고 있고, 피곤함에 절여진 채로 자는 게 제 일상이 되었는데요. 아직 정말 첫 주라 그런 것 같고, 어느 정도 적응하면 회사도 제 일상도 다 잘 지키면서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 지금은 잘하고 싶은 마음에 아직 일상에 일이 침투한달까요? 그래도 제 올해 목표가 일단은 뭐라도 해보자, 이기 때문에 뭐든 열심히 해보려고요! 오늘도 글 읽어주셔서 감사드려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