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죽어 버리면, 주변 사람들은 어떡하죠?

나의 우울증 이야기, 일곱 번째

by 그냥나

제가 죽어버리면, 가족들은 당연히 힘들겠죠. 특히 동생이 스트레스받으면서 힘들게 일하고 있는데, 그나마 제가 도움이 되는 것 같거든요. 근데 그런 존재가 죽으면 너무 힘들어할 것 같아요. 그리고 엄마는 당연히 더 무너지겠죠.. 집에 안 간 지 5~6년이나 됐는데, 그 딸이 갑자기 죽었다고 연락 오면 엄청 힘들지 않을까요. 이제야 좀 살만해졌는데.


큰오빠는 예전에 정신과를 잠깐 다닌 적이 있긴 해도 단단한 사람이라 엄청 걱정되진 않지만, 제가 정신적으로 아픈 걸 가장 잘 아는 사람 중 한 명이라 죄책감을 느낄까 걱정이에요. 작은오빠가 사실 제일 걱정되긴 해요. 진짜 제일 힘든 시기를 오래 겪었거든요. 사춘기 때 아빠가 돌아가시면서, 그리고 힘든 시기가 겹치면서 거의 10년 가까이 대학병원 정신과를 다닐 정도로 힘들어했어요. 오빠도 지금은 신앙을 갖고 그나마 '사회화'가 됐달까요. 좀 잘 살고 있는데 제가 죽으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와서 우리 가족이 다 무너질까 봐 걱정이에요.


제 친구들도요. 아직 취업 준비 중인 친구도 있고, 수험생인 친구도 있거든요. 그 애들한테 미안해서 어떡해요. 애들 다 열심히 살고 있는데 제가 괜히 누 끼치게 될 것 같아요. 그냥 잘 살다가 제가 죽으면서 인생의 어떤 나쁜 에피소드가 생기게 되는 거잖아요.. 그 애들이 걸어갈 길에 민폐 끼치고 싶지 않아요.


근데 진짜 제일 힘든 건, 제가 선택할 수 있는 게 죽음뿐인데 이걸 선택하는 과정에서마저도 제가 가족이나 친구같이 다른 사람을 생각한다는 것 자체예요. 저는 돌아보면 한평생 다른 사람들 눈치를 보면서 살았던 것 같은데, 제가 마지막으로 선택할 수 있는 '죽음' 앞에서도 다른 사람들한테 미칠 영향을 고려하고 있는 거잖아요. 이게 너무 제 스스로가 한심하고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진짜 죽고 싶은데, 다른 사람들 생각하면 죽을 용기가 안 나고.. 지금 어떻게 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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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작정, 와르르, 쏟아낸 나의 말. 상담사 선생님께서는 묵묵히 들어주시고 '힘드셨겠어요.'라며 차분히 위로해 주셨다. 나를 모르는 누군가에게 이렇게 말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참 속이 시원했다. 사람들이 오가는 길에서 눈물 뚝뚝 흘리며 전화하는 꼴이 지금 보면 참 이상했겠다 싶지만, 이제와 생각하니 그 전화가 나에게 주어진 탄탄한 새 동아줄이었다.


선생님께서는 상담이 필요할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아 그래요?'라며 마치 남일처럼 대답을 하게 되긴 했지만, 그 상담이 정말 내게 필요하다는 건 나도 너무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전화를 끊고, 내가 살고 있는 자치구의 정신건강복지센터에 연락을 취해 제대로 된 도움을 요청했다.


그런데 정말 운이 좋았던 것인지, 정신건강 위기상담전화로 연결되었던 상담사님과 같은 분이 연결됐다. '아까 전화 주신 분이시죠?' 상담이 모두 끝난 후일에 듣기론, 돌아가면서 전화를 받는 시스템이라던데.. 어떻게 이런 우연이 있었는지. 나는 내 이야기를 한 번 더 할 필요도 없이 '네, 상담받고 싶어서요.'라고 답하며 바로 다음날 아침 가장 이른 시각에 상담을 받기로 약속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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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상담실에 들어선 날은 사실 기억도 잘 나지 않을 정도로 많이 울고 또 울었다. 왜 죽고 싶은지, 실제로 그 행동을 했는지 등 전공에서 배운 상담기법들이 나에게 적용되고 있다는 걸 느끼며 내가 위험한 상태에 놓여있다는 걸 스스로 느꼈다.


그리고 감정카드를 통해 지금의 내 상태를 살펴봤다. 선생님께서는 수많은 종류의 감정 카드를 늘어뜨리며 이 중에서 지금 자신을 나타내는 감정들을 선택해 보라고 하셨다. 내 눈에 들어온 단어들은 [좌절], [공허함], [외로움], [무기력] 등 어두운 감정들뿐이었다. (당연하다. 자살을 눈앞에 두고 겨우 발을 뺀 이에게 순식간에 행복한 감정들을 기대하긴 어려우니)


그저 마음속에 있을 때는 복잡하게 뭉쳐만 있던 감정들이었는데, 글자로 직면하게 되니 마음이 묘해졌다. 내가 이 정도로 안 좋은 감정들만 품고 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보다 객관적으로 내가 가진 감정을 바라보게 됐달까. 아무튼 첫 상담은 이런 식으로 진행이 됐고, 외로움을 크게 타며 어려움을 겪던 내게 상담사님과 정신건강복지센터는 나의 또 다른 든든한 지원자가 되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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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후에도 방문. 그 사이 나는 상담을 통한 회복과 주변 지인들과의 소통, 독서, 글쓰기 등을 통해 많이 안정되고 있었다. 그때 선택하게 된 감정카드를 보면 확연히 변한 걸 스스로도 느낄 수 있었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부정적인 감정 카드가 단 하나도 없었다.


지난주의 감정카드를 다시 배치해서 오늘과 비교하는데, 일주일 사이에 이렇게 좋아져도 되나 싶을 정도였다. 상담을 통해 나를 모두 보여주고, 무엇보다 자살 충동을 느끼게 된 감정의 흐름을 정리한 것들이 도움이 된 것 같았다. 그러니까 좀 웃기긴 하지만, '제 히스토리를 다 알고 있는 사람은 정신과 선생님밖에 없는데, 저한테 너무 관심이 없게 말씀하시는 것 같아서 속상했어요'라는 게 어이없는 투정이었다는 걸 깨달으니 마음이 정리가 되었달까..


몇 달 되지 않은 과거인데도, 참 어리광쟁이었다. 하하. 사실 굉장히 민망한 부분이기도 한데, 우울증이나 불안함을 달고 사는 사람들이면 알지 않나? 내 옆에 누가 좀 있어주었으면 하는 그 마음. 상대의 작은 행동을 보고 혼자서 오해한다거나 크게 실망하는 그런 것들. 이것도 다 아파서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이런 부분들을 캐치하니 '혼자 서는 법'이 중요하다는 걸 되려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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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은 그렇게 5회 정도 진행이 되었다. 사실 2번 정도는 취업 준비와 멘탈 이슈 때문에 빠지기도 했어서 회기가 5회밖에 안 되는 게 아쉽긴 하다. 보통 7~8회, 혹은 10회기도 하니까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상담이 내게 가져다준 것은 너무나 크다.


그중 가장 큰 것은 '나'다. 상담을 마무리하면서도 선생님께서는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내가 어려움을 겪지 않을까, 걱정하셨다. 그런데 생각보다 나는 더 단단해져서 타인의 시선을 이제 온전히 차단할 수 있는 방법도 나름 깨달았고, 내 행동에 대해 상대가 반응하는 것들이 무엇이든 (내가 원하는 바가 아니더라도) 이해할 수 있어졌다.


과거 회사에서 나름 이의를 제기하면서 고쳤으면 했던 말과, 긍정적이지 않았던 리액션들도 '아, 그래. 그럴 수 있지. 나는 내가 할 말 잘했으니 된 거야.'라고 넘길 수 있게 된 것이다. 선생님은 이걸 '미움받을 용기'라고 칭하셨다. 조금 더 상담을 하면 훨씬 더 좋아질 거라 하셨지만, 아직은 괜찮으니 긍정적인 마음으로 내가 나를 잘 돌보며 시간을 보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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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번 시기를 계기로 나를 완전개방하는 사람이 되었다. (원래 무언가를 숨기는 편도 아니기는 했다. 힘들 때 주위에 손 내밀기를 꼭 하는 편이긴 했다.) 사회적으로 무언가를 숨기기도 해야 하는 걸 안다. 그러니 페르소나라는 단어가 생겨났고, 각기 다른 체계에서 각기 다른 가면을 쓰고 행동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인 것도 안다. 그런데, 나는 나를 개방함으로써 적어도 내 주위 사람들에게는 '괜찮아'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


현장에서 근무하진 않지만, 결국 정체성이나 가치관이 '사회복지사'이자 '사람들이 더 행복한 삶을 살았으면 하는 소망' 때문인지. 지인들에게는, 크게 친하지 않더라도 내가 가졌던 어려움과 고통을 오픈한다. 이런 나도 살았으니 너도 희망을 좀 가져보라는 뜻에서 말이다.


좋아하는 지인이 이런 내게 말을 건넸다. '너는 너 스스로를 당당하게 보여줘서 그런지, 나도 너 앞에서는 보여줘도 되나 싶은 것까지 보여주게 돼.' 아주 좋은 시그널이라고 생각했다! 그래. 내 모든 걸 보여주고 늘 진심을 다하면, 결국 그에 맞는 사람들이 남으니까. 이런 내 진짜 모습과 진심이 싫으면 알아서 떠나겠지, 하고 어깨를 들썩였더니 그 지인은 '독해졌다! 멋진데?'를 외쳤다.


독해진 건가? 그건 모르겠지만, 성숙해진 건 맞는 것 같다. 긁기만 해도 상처가 올라오던 여린 피부가 더 단단해지고 쉽게 상처가 나지 않게 됐다. 그리고 무엇보다 세찬 비바람이 불더라도 우산을 쓰면 된다는 것과 우산을 써도 젖고 있을 땐 우비를 쓰면 된다는 것, 그래도 안 되면 건물 안에서 잠시 비바람을 피하면 된다는 걸 알게 됐다.


우산마저도 없다면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혹시 우산 좀 빌려주실 수 있나요? 저쪽 편의점까지만 같이 써도 될까요? 정도의 질문을 할 수 있을 만큼 컸다는 건 나 스스로도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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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년, 아니 어쩌면 지난 5~6년, 길게 보면 나의 유년기에서부터 시작된 고통까지 이제는 나를 성장시켜 준 소중한 기억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됐다. 그리고 그런 시기를 견뎌낸 날 사랑하고 지켜줄 수 있게 됐다.


어제 정신건강의학과를 방문했다.


'예전처럼 따로 기록해 올 만큼 특별한 사항도 없고, 잠도 잘 자요. 한 번 자면 7시간 정도는 통으로 잘 자고요. 아! 근데 확실히 아직 잠들려면 약이 필요한 것 같긴 하더라고요. 어제 약 안 먹고 자려다가 2시간 만에 깨서요. 이직을 하면서 환경변화가 걱정되기도 했는데, 생각보다 잘 적응하고 있고 소통하는 분들도 친절해요. 개인적으로는 지금 상태가 굉장히 좋다고 생각해요. / 식사는 어때요? / 먹는 거요? 딱히 예전처럼 입에 대기 어렵다거나 아니면 폭식한다거나 이런 게 아니라, 그냥 차려 먹는 게 귀찮아서 미루긴 해요. 차려 먹으면 설거지도 해야 하고.. 그런데 예전처럼 우울하거나 힘들어서 입에 못 대거나 그런 건 전혀 없어요.'


실제로 나는 생활 면에서도 참 좋아졌다. 잠을 잘 자게 됐고, 잠을 자기 전이나 일어날 때 즈음 괜히 불안에 떨며 일어나지 않는다. 밥은 귀찮지만 않으면 잘해 먹는다. 이건 진짜 순수 100%의 귀찮음 때문인 걸 안다. 그리고 세상을 좀 더 쿨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됐다. 그래, 뭐. 그럴 수 있지. 별일 생기면 그때 가서 생각하자. 문제 생기면 다른 사람들이 먼저 말해 주지 않을까? 따위의..


아무튼간에 가장 하고 싶은 말은, 드디어 두 번째로 약을 줄였다는 것이다! 증량 증량 증량을 거치다 감량 후 유지 3개월 그리고 드디어 다시 한번 더 감량! 약이 줄어들 때마다 얼마나 나 스스로가 기특한지 모른다. 그래도 여전히 아침-저녁으로 꼭 챙겨 먹어야 하고, 의존성이 있는 약도 하나 있다곤 하지만 내가 이 약들 자체에 의존하지 않고 있으니 문제없다.


언젠가 정신건강의학과 선생님께 물었던 적이 있다. '이거 근데 낫긴 하는 거죠?' 치료에 차도가 보이지도 않고, 내 삶이 나아지지도 않아 보이던 그때. 고개를 끄덕거리던 선생님. 사실 그땐 믿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은 언젠가 단약 할 날이 올 것이며, 반드시 나아질 것이라는 믿음과 혹 또 다른 어려움이 덮쳐도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나 자신에게 가득하다.


이렇게 글로 회고하는 나 자신도 기특하게 느껴지는 하루다.

아, 오늘은 이 벅찬 기쁨을 모두가 누렸으면..!



오늘은 그래도 긴 분량으로 찾아왔습니다! 거의 최근의 이야기까지 압축적으로 담아냈는데요. 사실 그래서 전개가 후다닥 빠르게 흘러가기도 해요. 연재를 거의 끝마칠 것 같기도 합니다. 그래도 글은 브런치에 꾸준히 올릴 예정이에요. 주제는 아무래도 더 행복한 '나'를 위한 삶의 방법일 것 같지만, 좀 더 자유롭게 글을 쓸 것 같기도 합니다. 일요일 점심, 회복하기 참 좋은 시간대네요. 오늘의 평안과 행복을 마저 푹 누리시길 기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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