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우울증 이야기 여덟 번째
최근 다시 한 번 약을 줄였다. 정신건강이 회복되고 있다는 명확하고 객관적인 증거 같아 약을 줄일 때면 스스로가 참 기특하고 대견하다. 물론 여전히 약의 개수가 평범한 사람보다는 많지만, 그래도 지금은 7~8개 정도의 약만 먹으면 되니 부담도 적다.
출근길, 아니 퇴근길이었나. 제대로 기억은 안 나지만 '나'라는 존재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오랜 기간 우울증과 불안장애, 강박장애 등을 가지고 살면서 진짜 '나'는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 그러니까 드라마에서 나올 법한 "나다운 게 뭔데?" 따위의 생각을 하게 됐다.
스무살 때의 나는 긍정적이고 밝은 사람이었다. 아마도 미화가 됐지만 말이다. 사람들을 만나는 걸 좋아했고, 일도 열심히 하고 나름 모든 일에 열정적으로 임했었다. 그 이전도 그랬다. 좋은 대학이라는 목표를 향해 달려나갔고 때론 게으르고 스스로를 자책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내가 원하는 길로 착착 나아갈 수 있었다.
그런데 중증도 우울증과 공황장애 진단을 받으며, 삶을 대하는 태도와 가치관 자체가 달라진 지금. 그게 진짜 나의 모습이었는지, 그럼 내가 그때로 돌아가고 싶은 건지, 하는 온갖 궁금증이 피어올랐다. 나 스스로 느끼기엔 스물한살부터 다소 정신적으로 어려움을 겪었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그때의 '나'는 진짜가 아니었던 것 같다는 생각. 그런데 그렇다고 하기엔 또 그 삶을 살아온 것도 나인데, 이렇게 가볍게 몇 년을 지워버려도 괜찮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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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이거 나아질 수 있겠죠?"
재작년의 내가 병원을 옮기고 했던 질문 중 하나다. 천천히 오래보자는 선생님의 말씀에 '그래, 괜찮아'라는 생각과 함께 언제까지 이 병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지 답답함도 꽤 컸다. 나아질 수 없을 것 같았고, 심하면 심해질지 몰라도 나아진 내 모습을 상상하기 어려웠다.
지금 생각해보면 오래 보자는 선생님의 말씀이 옳았고, 분명히 심리적인 측면이나 사회적인 측면에서 나 자신이 많이 나아졌음을 느낀다. 그런데 그렇게 나아진 '나'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ㅡ'~해야 한다'라는 것도 웃기지만ㅡ또 나 스스로 '나'라는 존재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혹은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 생각하게 됐다. 그러다 보니 "진짜 나다운 게 뭔데?"라는 질문까지 도달하게 된 것이고.
일단 지금의 나는 문제가 생겨도 일단 잠깐 놀라되 수습할 수 있다면 괜찮다, 하고 스스로 케어할 수 있다. 무기력함으로 인해 어려웠던 집안일도 어느 정도 컨트롤 가능하다. (태생적으로 언제 치워야지, 하는 미루기는 어쩔 수 없지만 ㅎㅎ) 다른 사람들과의 소통에서 과하게 눈치보지도 않는다. 물론 제일 높은 상사의 말에는 약간 눈치 본다. 이건 사회생활이라 어쩔 수 없다!
또 스스로 이 병을 공개하고 타인과 소통하고 공유할 수 있다. 너도 괜찮아질 수 있다고, 지금 너의 상태는 이런 것 같으니 너를 믿어보라고, 친구들에게 정신질환의 경험과 사회복지사로서의 마인드를 결합해 조언해줄 수 있다. (이것도 상대가 원할 때만.)
분명 정신건강의 악화로 인해 무뎌졌던 많은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오고 있거나, 혹은 더 나은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 그런데 이게 과거의 '괜찮았던 나'로 회귀하는 것인지, 새로운 '나'가 되어 또 다른 '나'로 살아갈 준비를 하고 있는 건지 모호하다. 결국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은 또 다시 질문이 되어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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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그러면 나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라고 정의할 수 있지?'
생각해보면 마냥 과거의 나로 돌아가는 것이 최선이 아닌데. 분명 성숙해져 새로운 나를 발견할 수도 있는데. 그런 '나'를 스스로 정의하기가 참 어렵다. 내가 타인에게 '이 아이는 무던하지만 불의를 참지 못하는 친구', '이 아이는 자기 꿈을 위해 열심히 나아가고 있는 친구' 등 몇 가지 특성으로 이름을 붙일 수 있는 것처럼 나 스스로에게도 어떤 이름을 붙이고 싶어진다.
그런데 참 웃기게도 지금의 나를 정의할 수 있는 방법을 찾지도 못할 뿐더러 꼭 정의를 해야하는가, 하는 깊은 질문도 피어오른다. 내가 모든 정신질환을 치료하고 건강해진다는 게 꼭 과거의 나로 돌아간다는 뜻은 아니니, 어떤 내가 되어도 될 것 같으면서도 진짜 '나'는 누구인지 계속 궁금해진다.
내가 지향하는 나는.. 혼자서도 오롯이 설 수 있으며, 내가 나를 최우선으로 보호할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 그리고 생활력을 갖추고 스스로 잘 살아가면서도 타인을 위해 베풀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 사랑하는 것을 더욱 열심히 사랑할 줄 알고, 과정이든 결과든 후회가 없이 스스로 '최선을 다했다'라고 이야기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 타인을 위해 엄청난 무리와 희생을 하지 않고, 적정선을 잘 찾아 이겨내는 것. 그리고 이 외에 품고 있을 나도 모르는 나의 이상향.
하지만 무엇보다 내가 지향하는 '나'가 아니더라도 '나'를 스스로 아껴주고 사랑하는 것이 아마 가장 큰 목적이자 내가 되고 싶은 모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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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철학적인 질문에 빠지게 되면 혹여라도 낮아진 불안이나 우울이 솟아오를까봐 지레 겁을 먹기도 한다. 반면에 이제 이런 생각도 긍정적으로 할 수 있게 된 것이 기쁘기도 하다. 미래의 내 모습이 행복할 것이라는 믿음, 그리고 엄청난 부나 명성이 아니어도 내 인생을 나 스스로 행복하게 만들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언제쯤 내가 '나'를 있는 그대로, 또 바라는 대로 정의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마치 약을 서서히 줄여나가고 있는 것처럼, 약물을 줄이면서 겪는 두통처럼 아주 느리고 때론 아플 수 있겠지. 그래도 두렵지 않은 이유는, 나는 이미 너무나 큰 절망과 고통의 시간에서 수많은 성장통을 겪어왔기에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글을 쓸 때 가졌던 첫 다짐도 그렇다. 나 같은 사람도, 나 같은 애도 이렇게 살다가 좀 나아져서 스스로에게 너그러워지는 법을 알게 되었다. 그러니 이 글을 읽는 사람들, 더 정확하게는 힘들고 지쳐 스스로를 사랑하기보다 자책하기 바쁜 사람들에게 '괜찮다', '분명 더 나아질 것이다'라고 이야기해주고 싶다.
나 스스로를 돌아보고, 내가 겪는 어려움을 글로나마 해소하고자 시작했던 브런치. 지금은 (적어도 오늘은) 그 시작보다 정말 나아진 상태로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이겨내고자 했던, 그리고 나를 사랑하기 위해 노력했던 시간들이 글로 너무나 짧게 압축된 것 같아 아쉽기도 하다. 혹여나 '이 사람은 되게 빨리 회복했네'라고 또 다시 자신을 탓할 사람이 있을까 싶어 우려되기도 한다.
적어도 나는 5년을 나를 학대하며 살았던 것 같다. 그렇게 쌓인 고통이 공황의 형태로 드러나지 않았더라면 아마 지금도 나는 나를 채찍질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모순적이지만 운이 좋게도 공황장애가 나타나줘서 그때부터 나를 케어할 수 있었다.
정신건강의학과에 다녔던 가족에게 몇 개월 정도 진료를 받았나, 물어본 적이 있다. 3~4개월이라고 했다. 나는 벌써 1년 반이 다 되어 가는 시점이었다. 그때도 나는 아직 멀었구나, 생각했지만 시간은 어쨌든 흐르고 삶은 작게라도 나아져 2026년 2월의 내가 되었다. 그러니 비슷한 어려움을 겪는 이들에게 괜찮다고 토닥여주고 싶다. 이 글을 읽은 오늘 하루라도 부디 '나'라는 존재를 위해 그 시간을 보낼 수 있길 기도한다.
언젠가 '나다운 게 뭔지' 대답할 수 있길 바라며 오늘은 여기서 글을 줄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