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환자의 기록, 조각 하나

외전: 우울증 진단 초기, 나의 기록

by 그냥나

아래 글은 우울증 진단을 받은 초기, 불안이 가장 높았던 시절 남기고자 했던 기록이다. 병을 관리하고 나의 감정을 풀고자 적어둔 글을 많은 이들에게도 공개한다.


7월 18일의 기록, 조금 힘들었다.

집근처 정신건강의학과에 다닌 지 3주 정도 됐다. 초반에는 불안과 우울이 감당이 안 돼서, 상담 때마다 울었는데.. 지난 진료 때는 개인적인 일로 기분이 좋아 헤실헤실거렸다. 내가 보낸 일주일 전체가 그렇게 행복한 건 아니었는데, 실은 그 하루이틀 빼고는 너무 힘들었고. 목요일은 약을 먹을 시간도 아닌데 불안해지기도 했다. 괜히 그날의 기분에 휘둘려 제대로 증상을 이야기하지 못한 느낌. 그래서 매일 기록하고, 병원 방문 전 일주일을 돌아보려고 글을 쓴다.


푹 자질 못해서 새벽 세 시면 꼭 깨는데, 오늘은 이상하게 악몽을 꾸며 일어났다. 근데 뭔가 숫자를 받아 적은 것들이 있어서 눈 뜨자마자 비몽사몽 숫자들을 카톡에 적어놨따. 숫자가 눈에 보인 건 아니고, 그냥 보인 것들 몇 개와 이것저것 조합한 건데.. 심심풀이 겸 로또를 사볼까 싶다.


불쾌한 꿈이 너무 오랜만이라 "왜" 꾼 건지 이해가 안 간다. 어제 직장에서 첫 보고를 하고 칭찬을 듣기도 했는데, 그래서 전반적으로 스트레스가 없는 밤이라고 생각했는데.. 수면제를 처방받아야 하나? 꿈 때문에 새벽이 갑갑하다. '때문에'보다 '덕분에'라는 말을 쓰라던데, 꿈 덕분에 갑갑하다(?).


잠을 제대로 못 자서 그런지 혹은 요즘 피곤해서인지 출근하려고 일어나는 것이 너무 짜증났다. 사실 원래 출근은 그런 거긴 하다(ㅋㅋ) 슬슬 내부 시스템을 익히고 업무를 진행해야 하는데, 그런 것들에 대한 부담이 큰 것 같다. 그럴 때마다 '일단 대충 해, 하고 피드백 받아'라고 스스로 이야기하지만 부담을 내려 놓기가 힘들다. 워낙 잘해야 한다고 스스로 세뇌하며 오랜 시간 살아서 그런가.


그래도 좋아하는 향수를 뿌리고, 좋아하는 옷을 입고 출근해서 조금 낫다. (고 생각하려고 한다.)


인수인계 일정이 틀어져서 스트레스를 받는다. 답답하고 불안하다. 약으로 머리에 아무 생각이 안 들게 만들고 싶다. 근데 의사선생님이 '결국 불안은 내면의 문제'라고 했으니까, 약을 먹어도 내가 바뀌는 게 중요하겠지. 그런데 한 번 다운되면 다시 올라오기가 귀찮다. 이게 다 아직 한 끼도 못 먹어서 그래.


내가 잘할 수 있을까, 아 그냥 떠나고 싶다, 근데 돈을 이미 펑펑 써서 떠나진 못하는데 답답하다. 약을 지금 먹어야겠다. 좋아하는 것 한 가지를 하기 위해 싫어하는 것 아흔아홉가지를 해야한다던데, 됐고 다 때려치고 싶다. 집에 가는 길에 워킹홀리데이나 검색하며 현실 도피 중이다.


마음이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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