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솔이 Aug 10. 2022

덕구가 보고 싶은 날

10년이 지났다

나는 아직도 우리 덕구가 떠나던 날을 분명하게 기억한다. 희한하게 다른 강아지들이 떠났던 때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데 우리 덕구가 무지개다리를 건넌 날만큼은 너무 선명하다.



덕구는 그때 7살이었다. 골든 리트리버인데 엄청 커다래서, 46킬로까지 나갔었다. 내 어깨에 덕구가 앞발을 대고 벌떡 일어나면 나보다도 컸다. 나는 덕구 앞에 가서 내 어깨를 툭툭 쳐서 일어나라고 했다. 덕구가 내게 발을 올리고 일어나면 나는 덕구를 마주 안아줄 수 있었다.


똑똑한 우리 덕구는 단 한 번도 사람을 문 적이 없고 단 한 번도 사람을 향해서 짖어본 적도 없다. 생각해 보면 짓는 일 자체가 많지 않고 늘 웃고 있는 개였다. 누구든 와서 자기를 만져주면 마냥 기뻐하던 커다란 개.


덕구가 며칠 짖었던 때가 있긴 했다. 잠시 동안 우리 집에 왔던 진도개 진돌이가 트럭을 타고 더 좋은 집에 입양 갔을 때었다. 그 이후에 며칠 정도 덕구는 집 앞에 트럭이 지나갈 때마다 짖었다. 덕구가 왜 짖는지 너무 잘 알아서 가족들은 덕구에게 괜찮다고 해 주기만 했다. 며칠 짖어도 진돌이가 돌아오지 않자, 덕구는 다시 조용해졌다.


그렇게 착했던 우리 덕구는 양파를 먹고 혈액이 부족해져서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덕구가 잘 걷지 못해서 동물병원에 데리고 간 날. 지금 생각해 보면 의사 선생님이 우리 가족에게 덕구가 너무 힘들지 않게 편안하게 갈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보자고 하신 것 같다. 근데 내가 말을 잘 못 알아들었다. 수액을 맞추면 되지 않느냐는 내 되물음에 의사 선생님이 한 번 더 그래도 어려울 거라고 했는데, 나는 그때에도 이상하게 못 알아 들었다. 그래도 한 번 맞춰 보자는 나를 바라보던 엄마와 의사 선생님의 표정이 생각난다. 내가 해 보자고 하니까, 엄마도 그러자고 했다.


우리 덕구는 그래서인지 며칠을 더 살다가 떠났다. 덕구가 팔에 주삿바늘을 꼽고 방 안에 엎드려 있을 때, 나는 그 옆에 앉아서 덕구를 만져주면서 우리 덕구가 다시 살아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수액은 다 떨어지면 바로바로 새 걸로 갈아 주었다. 덕구는 그 와중에도 엉덩이를 최대한 뒤로 빼고 배변을 했다. 나는 덕구한테 괜찮다고, 다 낫고 씻으면 된다고 그랬다.




마지막으로 병원에 간 날, 덕구는 서 있기도 하고 몇 발 걷기도 했다.




덕구가 우리 곁을 떠나던 날 나는 설계 수업이 있었고 어쩔 수 없이 아침에 학교를 가야만 했다.

학교에 가기 전 덕구가 밤을 보낸 방에 들어가서 덕구야- 하고 불렀더니, 그 전날만 해도 기운이 없어하던 덕구가 끙끙거리면서 나에게 오려고 했다.


나는 이미 학교를 가기 위해서 옷을 다 차려입은 상태였지만 도저히 덕구를 안 안아 줄 수가 없었기 때문에 다가가서 덕구를 안아줬다. 덕구는 이제 몸의 말단에 피가 제대로 돌지 않아서인지 바깥에 살짝 빠져나온 혀끝이 까맣게 돼 있었다. 덕구가 자기 힘으로 물을 먹을 수 없었기 때문에 내가 물을 먹여주었다. 덕구는 물을 툭툭 치며 먹는 시늉만 하고는 고갯짓을 하며 내 얼굴 쪽으로 코를 가져다 댔다.


이상하게 그 순간, 나는 덕구가 이제 곧 무지개다리를 건널 거라는 것을 생각이 들었다. 눈물이 나기 시작했지만 덕구 앞에서 울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덕구를 껴안고, 누나는 덕구랑 같이 있는 동안 행복했는데 우리 덕구는 누나랑 같이 있어서 행복했을까? 하고 물었다. 그랬으면 좋겠다고, 더 행복하게 못 해줘서 미안하다고 하자, 덕구는 가만히 커다란 머리를 내 목에 기댔다. 덕구가 냄새를 맡을 수 있게 덕구 머리를 들고 코에 내 코를 가져다 댔다. 덕구가 또 살짝 고갯짓을 했다. 아마 힘이 있었다면, 핥았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덕구는 꼬리도 제대로 치지 못했다.




늘 웃는 얼굴이던 우리 덕구. 아가였을 때에도 유난히 컸다.




학교에 가서 가장 먼저 크리틱을 받고 안절부절못하는 동안 엄마에게서 연락이 왔다.

덕구가 무지개다리를 건넜고 대형견이기 때문에 따로 트럭을 불렀다고 했다. 내가 거의 울면서 교수님에게 집에 가야 한다고 우리 집의 개가 무지개다리를 건넜다고 하자, 교수님도 깜짝 놀라서 얼른 돌아가라고 하셨다.


그렇지만 나는 결국 우리 덕구가 트럭을 타고 가는 것을 보지 못했다.

내가 왔을 때는 이미 온 가족이 한바탕 울고 난 뒤였고 나는 옷도 못 갈아입고 굉장히 오랫동안 울었다.

엄마 말에 따르면, 덕구는 내가 학교에 가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지구 여행을 끝낸 것 같다고 했다. 덕구가 마지막으로 만난 가족은 덕분에 나였다. 별로 위로가 되지 않았다. 학교를 좀 늦게 가더라도 좀 더 같이 있을걸, 하는 후회만 들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사진이다. 어린 동생과 덕구. 옥상에서.



덕구는 힘이 세고 커다란 개였기 때문에, 나는 덕구가 두 살이 넘어간 이후로는 나 혼자 산책을 해준 적이 없다. 나는 그게 아직도 너무 미안하다. 중간에 고양이 네네가 생겨서 네네에게만 많은 애정을 쏟아준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하필이면 우리 집이 가장 어려울 때 우리 곁에 와서 다른 개들처럼 많이 뭔가 못해준 것도 너무 미안하다.




2006년도 3월 한강, 5개월 된 덕구




사람들은 골든 리트리버가 천사 개라고 말하지만 나는 골든 리트리버는 절대 천사 개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골든 리트리버와 한 번 헤어지고 나면 두 번 다시 강아지를 키울 용기가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다른 개를 만날 수 없게 만드는 개가 골든 리트리버다.


사람이 아무도 없는 둑길을 모둠발로 달리는 망아지처럼 커다란 개. 좋아하는 걸 마구 씹는 입 안에 내가 손을 집어넣으면 그대로 얼어서 낑낑거리기만 하는 개. 너무 신나서 내게 달려와 안기는 바람에 딱 한 번 날 넘어뜨린 뒤로는, 단 한 번도 자기 몸을 나한테 내던지지 않는 개. 커다랗고 뜨겁고 희한하게 모래 냄새가 나는, 세상에서 제일 잘생긴 우리 덕구.


내가 보름 가까이 시시 때때로 울어서 나와 가장 친하던 대학 동기가 나에게 말했었다.

"걔가 죽은 것으로 일주일이 넘도록 그렇게 울었으면 넌 네가 할 수 있는 만큼 충분히 애도한 거야."


그렇지만 나는 우리 덕구가 무지개다리를 건넌 지 10년이 지난 지금도 가끔 덕구 생각이 나면 울음이 난다.


한 번만 더 우리 덕구를 안아보고 싶고 덕구와 산책하고 싶다.

딱 두 시간만 아무도 없는데서 단 둘이서만 산책하면 얼마나 좋을까.


덕구가 떠나고 10년 동안 나는 단 한 번도 개를 다시 키울 생각을 한 적이 없다. 세상에 덕구 같은 개는 다시는 없을 테니까.



어질리티 기구 옆에서. 아가 덕구.



며칠 전 꿈에 덕구가 나와서 우리 덕구 사진을 열심히 찾아냈다. 분명히 꽤 많이 찍은 것 같은데 벌써 10년도 더 전의 일이라 남아있는 사진이 별로 없다.


사진보다 선명하게 남은 것은 마지막의 기억이다. 마지막으로 우리 덕구를 안았을 때 덕구에게서 나던 냄새와 46킬로가 나가던 커다란 개라고는 믿을 수 없도록 볼품없이 말랐던 몸, 덕구가 며칠 동안 앓던 방에 들어갔을 때 아침에 내가 본 것과 다름없이 창문틀에 걸려 있었던 수액 파우치 같은 것들...


나는 늘 내가 고양이를 더 좋아하는 고양이 인간이라고 말하곤 하지만, 사실 나는 개와 고양이 인간이다.

아니, 덕구와 고양이 인간이다.




한참 못나니이던 털갈이 시기의 어린 덕구.




덕구가 무지개다리를 건넌 지 딱 10년이 되었다.


거대하고 따뜻하고 상냥하고 다정했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내 개를

정말 딱 한 번만 더 안아보고 싶다.


더 열심히 사랑할걸.

덕구가 그랬던 것처럼.


모든 개들은 천국으로 간다고 한다.


내가 좋은 사람으로 죽어야만 하는 이유다.


내가 죽어서 나를 마중 나와 있을 우리 덕구와 마지막에 또 헤어지면 안 되니까.




덕구가 많이 보고 싶다. 10년이 지났는데도 그렇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