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솔이 Aug 30. 2023

창백한 푸른 점

칼 세이건과 코스모스

1990년 2월 1일. Voyager 1 호에서 찍은 오리지널 "Pale Blue Dot"



태양계 외부를 탐사한다는 목적을 가지고 발사된 보이저 1호는 60억 킬로미터 밖에서 카메라를 돌려 지구를 찍기로 한다. 당시의 카메라 기술이 형편없었던 까닭에, 모두가 의미 없다고 말하는 작업이었지만 칼 세이건이 간절하게 명령(간절함과 명령의 수사 관계가 성립하다니!)한 덕분이었다.


위의 사진은 그렇게 탄생했다. 

그리고 칼 세이건은, 이 사진에 대해 동명의 책에서 아래와 같은 소감을 남겼다.





칼 세이건, "창백한 푸른 점", 1994 (2023, 필자 옮김)


이 거리만큼 멀리 떨어진 지점에서 보면 지구는 어떤 특별한 흥미를 끌만한 게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에게 이것은 다른 의미를 갖는다. 저 점을 다시 보시라. 저건 여기다. 저게 우리 집이다. 저것이 우리다. 그 위에서 당신이 사랑하는 모두가, 당신이 아는 모두가, 당신이 들어본 모든 사람, 그곳에 존재했던 모든 인류가 그들의 삶을 살아 냈다. 우리의 모든 즐거움과 고통, 확신에 찬 온갖 종류의 종교, 이념, 그리고 경제 독트린, 모든 사냥꾼과 약탈자, 모든 영웅과 겁쟁이, 모든 문명의 창조자와 파괴자, 모든 왕과 소작농, 사랑에 빠진 모든 젊은 커플들, 모든 어머니와 아버지, 희망에 찬 어린아이들, 발명가와 탐험가, 도덕을 가르치는 스승들, 모든 부패한 정치가와 모든 "슈퍼스타", 모든 "최고 지도자", 모든 성자와 범죄자들 - 우리 인간 종의 역사에 등장하는 이 모든 이들이 햇빛 안에 부유하고 있는 저 티끌 속에서 살았다.


지구는 이 거대한 우주의 공간 속에서 아주 작은 무대에 불과하다. 모든 장수들과 황제들이 흘린 피의 강을 생각해 보라. 그들은 이 점 속의 극히 일부분에서 순간적인 주인이 되는 영광과 승리를 위해 그런 피를 흘렸다. 이 픽셀 속의 한 모서리에 사는 주민들이 간신히 구별할 만한 다른 코너의 주민들에게 가하는 그 끝없이 잔인한 방문은 어떠한가? 그들의 오해가 얼마나 자주 일어나는지, 그들이 서로 다른 누군가를 얼마나 죽이고 싶어 하는지, 얼마나 지독한 증오를 가지고 있는지 생각해 보라.


우리의 지위, 우리가 스스로에게 부여한 중요성, 그러니까, 우리가 우주 속에서 어떤 특권의 위치를 차지한다는 그 망상은 이 희미한 빛의 점 앞에서 위협받는다. 우리의 행성은 이 거대한 우주의 암흑에 둘러싸인 외로운 얼룩이다. 우리의 애매모호한 존재감과 이 우주의 광대함에 비추어 볼 때, 어딘가에서 우리를 우리 스스로에게서 구원할 도움이 올 것이라는 징후 같은 것은 없다.


지구는 지금까지 생명체가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진 오직 단 하나의 세계다. 적어도 가까운 미래에 우리 인간종이 이주할 곳은 정말이지 어디에도 없다. 방문? 가능하다. 그러나 정주는 아직 시기상조다. 좋든 싫든, 지금 이 순간 지구만이 우리가 존재할 수 있는 곳이다.


천문학은 겸손함과 인격 형성의 경험을 제공한다고 말한다. 아마도, 인간 자만의 어리석음에 대해 우리의 조막만 한 세상을 멀찍이서 찍어낸 이 사진만큼 잘 설명하는 것은 없을 것이다. 나에게 이것은 우리의 책임을 강조한다. 다른 사람들에게 더 친절하게 대할 것. 그리고 이 창백한 푸른 점을 보존하고 소중히 여길 것. 이것은 우리가 아는 유일한 우리의 집이기 때문이다.





2020년 2월 12일, Nasa의 제트 추진 연구실은, 이 "창백한 푸른 점"을 보정하여 공개했다.




오랜만에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읽다가, 문득 생각이 나서 얼른 찾아와 번역했다. 원래는 산문인데 마치 운문 같다. 이런 느낌을 줄 수 있는 순수 과학 문장이라니. 역시, 칼 세이건은 멋지고, 극단은 통하는 법이랄까.


하지만 사실이다. 순수과학 서적, 특히 우주에 관련한 서적은, 오랜 종교의 경전이나 고대 철학서와 비슷한 느낌이 든다. 그리고 이건 어쩌면 어릴 때 BBC의 코스모스(칼 세이건의 동명 저작 코스모스의 동영상 버전이다.)를 직접 보면서 자랐기 때문인 것 같은데, 비단 칼 세이건의 설명이 아니더라도 우주의 탄생부터 죽음까지의 일련의 과정을 들려주는 대로 상상하다 보면, 빛, 소리, 향, 맛, 온도와 같은 모든 것이 사라지는 일종의 빈사 체험을 하게 된다. 그래서 깜깜하고 고요하고 무감각한 공간에 뚝 떨어져, 옛날 브라운관 TV에서 까만 화면과 함께 무음을 닮은 미묘한 진동음이 나던 것처럼 사위가 암전하는 느낌이 든다. 그러다 그 안에서 화들짝 정신을 차리면 약간, 엄청 오랫동안 굶으면서 명상이라도 한 기분까지 든다.


그럴 때면 아주 지쳐서 배가 고픈데, 아무것도 먹지 않아도 뭔가 에너지가 넘친다. 그리고 정신이 말끔하게 갠다. 우주에도 끝이 있을진대, 인류의 이 짧은 역사 속에서, 남들보다 위대해지거나 다른 사람보다 부우자가 되거나 타인의 존경과 명예를 얻는 일 따위는 너무나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냥, 오늘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오늘 아낌없이 사랑하는 일로서 충분해진다. 사랑하는 사람들한테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별이 쏟아지는 것처럼 말해주고 싶어 진다. 그리고 그렇게 들떠있는 나도 온전하게 사랑할 수 있다는 기분이 드는 것이다. 그것은 아주 행복하고 자유로운 기분이다. 마치 정신세계에 우주복을 입고 나가서 지구 중력 밖의 우주들 맴도는 기분. 전 우주를 통틀어 단 하나뿐인 내 고향 지구별에 내 영혼이 있다는 걸 확인하는 기분이랄까.




나는 가끔 이런 글이 다시 읽고 싶어 진다. 그리고 그건 어쩌면 내가 여전히 세상은 더 많은 선의로 가득 차야 한다고, 이유와 대가 없는 다정이 분명 무수한 무고한 사람을 구하리라 믿는 나이브한 인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원문은 아래와 같습니다.

 Carl Sagan, Pale Blue Dot, 1994

"From this distant vantage point, the Earth might not seem of any particular interest. But for us, it's different. Consider again that dot. That's here. That's home. That's us. On it everyone you love, everyone you know, everyone you ever heard of, every human being who ever was, lived out their lives. The aggregate of our joy and suffering, thousands of confident religions, ideologies, and economic doctrines, every hunter and forager, every hero and coward, every creator and destroyer of civilization, every king and peasant, every young couple in love, every mother and father, hopeful child, inventor and explorer, every teacher of morals, every corrupt politician, every "superstar, " every "supreme leader, " every saint and sinner in the history of our species lived there – on a mote of dust suspended in a sunbeam.

The Earth is a very small stage in a vast cosmic arena. Think of the rivers of blood spilled by all those generals and emperors so that, in glory and triumph, they could become the momentary masters of a fraction of a dot. Think of the endless cruelties visited by the inhabitants of one corner of this pixel on the scarcely distinguishable inhabitants of some other corner, how frequent their misunderstandings, how eager they are to kill one another, how fervent their hatreds.

Our posturings, our imagined self-importance, the delusion that we have some privileged position in the Universe, are challenged by this point of pale light. Our planet is a lonely speck in the great enveloping cosmic dark. In our obscurity, in all this vastness, there is no hint that help will come from elsewhere to save us from ourselves.

The Earth is the only world known so far to harbor life. There is nowhere else, at least in the near future, to which our species could migrate. Visit, yes. Settle, not yet. Like it or not, for the moment the Earth is where we make our stand.

It has been said that astronomy is a humbling and character-building experience. There is perhaps no better demonstration of the folly of human conceits than this distant image of our tiny world. To me, it underscores our responsibility to deal more kindly with one another, and to preserve and cherish the pale blue dot, the only home we've ever known."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 엄마가 고아가 되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