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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이 Jan 21. 2023

2022년 섣달도 끝.

독일 생활과 2023년을 맞이하는 자세

해외에서 혼자 살 때 외로움을 인정하는 일은 차라리 쉽다. 외로움은 정상이니까. 나는 지금 외국어를 쓰는 나라에 혼자 살고 있고, 매일매일 단지 생활이 아니라 생존해야 한다는 퀘스트를 깨며 살기 때문이다. 물론 친구가 있고, 아주 친밀한 친구도 있고, 매일 얼굴을 마주하는 동료와 나가 앉아있을 수 있는 자리와 이 나라에 적어도 8월까지는 살아도 좋다는 체류허가도 있다.


그러나 시시때때로 마음을 불편하게 만드는 각종 사건들-가령 수도관이 폭발하거나 갑자기 누진으로 전기가 차단되거나 독일어밖에 쓰지 못하는 기술자가 다짜고짜 문을 두드리거나, 쓰지 않은 난방기구가 사용되었다며 계기판 변화를 보이는 등등의 결국 사람들을 만나고 대화해서 해결하면 되는 문제부터, 건강보험 회사를 찾거나, 비자를 연장하는 등의 법률적인 문제까지-은 매일같이 벌어진다. 한 고비 넘기면 또 한 고비인 셈이다. 더구나 이런 일 전부를 오로지 혼자서 다 해내야 한다는 것은, 궁극적으로 외로움을 부추기는 꼴이 되고 만다.


따라서, 나는 내가 외로워하는구나,라는 건 생각보다 어렵지 않게 납득할 수 있다.



입맛이 할머니라 이런 걸 좋아한다. 엄마가 보내준 간식으로 달래는 외로움...



그러나 내가 우울증이라는 걸 인정하는 건 쉽지가 않았다.

2018년도에 유학을 나온 뒤, 때마다 고비가 아니었던 적도 없다. 그렇지만 그때마다 정말 우연히 행운과 행운이 깃들어서 어떻게든 버텨내고 극복해 냈다. 유학 2년 차 만에 팬데믹이 왔을 때에도, 어떻게든 해냈다.


그러나 2022년은 정말로 좀 고되었다.

더 이상은 버텨낼 방법도, 답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그냥 다 끝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평소처럼 생활하다가 드디어 깨달았다.


내가 분명 고장이 났는데 계속 "예전처럼 그대로 생활하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다. 정상처럼 보이지만 전혀 비정상적으로 생활하고 있다면, 가령 술이 너무 늘었고(고백컨데 나는 부족한 칼로리를 모두 싸구려 와인이나 맥주로 채우고 있다. 문제는 술을 그렇게 마셔도 못 잔다. 전엔 잠이라도 왔는데...) 밤에 깊은 수면을 약 3분 정도 하다가 어느 날 낮잠 30분을 통째로 깊은 수면을 한다거나(모르고 싶었는데 갤 핏 2와 삼성 헬스가 너무 잘 알려준다.), 올바른 단어를 찾지 못해서 계속 말과 사고가 꼬이고, 매사에 전혀 집중을 못하면서 계속해서 뭔가 읽어 대지만 단지 그뿐이라면.

계속해서 사람도 대하고 순간순간의 문제도 해결하고 웃기도 하고 명상도 요가도 도시락 싸기도 전부 하는데 잠을 제대로 못 자고 그냥 모든 게 끝났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들면. 사실 낮에도 자꾸 그런 생각이 들어서 뭔가 중요한 걸 전혀 결정하지 못한다면.


그건 정상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에도 종종 이럴 때가 있었지만 그때는 생각이 너무 많아서였고 뭐든 욕구가 있었다. 그리고 불안감이 들어도 결론적으로, Ok, 됐어, 고! 했는데 지금은 이 시퀀스 자체가 스트레스다. Ok까지 안 가는 건 둘째 문제고, 신경 끄기 자체가 되질 않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2022년 6월 말부터 약을 먹었다. 당장에 의사를 만나는 것이 불가능해서, 일단 약사 한 테라도 말해서 처방전 없이 받을 수 있는 약부터 먹기 시작했다. 약사는 우선적으로 비타민D, 세로토닌, 비타민C, 약한 진정제 같은 걸 주었다. 왼쪽 뒤통수에서 오른쪽 관자놀이를 관통하는 찌릿찌릿한 편두통에 대해서는, 너무 고민하지 말고 아스피린을 먹으라는 말도 들었다.


그 이후에는 의사도 만났다. 의사가 처방해 주는 약은 훨씬 효과가 좋았다. 불안해서 잠을 못 자는 일이 많이 줄어들었고, 좀 덜 멍한 상태로 일에 집중할 수도 있었다. 의사에게 내 이야기를 털어놓고, 그가 나에게 대답하듯 그게 내 마음에 어떤 작용을 하는 건지 이야기해 주는 것으로도 내 마음의 상태가 정확이 어떻고, 그런 상태는 어떤 이유로 생겨났는지를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되었다.




슈투트가르트에는 12월에 눈이 오는 일이 거의 없다. 그리고 2022년 12월에는 눈이 펑펑 내렸다. 이렇게 예측할 수 없는 일이 내게도 벌어졌다.



그런데 11월 말부터는 이런 모든 것을 그만두었다. 한 번도 상상조차 안 해 본 일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무슨 일인지는 아직 문장으로 쓰기가 어렵다. 말하고 나면 토할 것 같아지고 울렁대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여하튼, 우리 가족 모두에게 아주 끔찍한 일이었다.


그 일이 생긴 뒤에 나는 병원에 가지 않았다. 의사와는 충분히 대화를 했고, 더 이상 외국인 의사에게 서로에게 외국어일 영어로 내 이야기만 열심히 쏟아 낸다는 것은 어쩐지 무의미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대신 그냥 그동안 살아왔듯이 어떻게든 삶을 살았다. 최대한 생각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면서...


그중 하나는 사경이었다. 인간은 어려울 때에 종교에 매달리게 되는 경향이 있다는 걸 경험으로 깨달았다. 2022년 초에 시작했던 사경은 벌써 3회 차 필사가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11월 말부터 12월 중순까지, 나는 하루에 한 시간씩 사경을 했다. 마음이 복잡하면 한 시간 반도 했다.


요가도 마찬가지였다. 한 자세로 오랫동안 호흡에 집중하면서 한 시간 두 시간 우습게 요가에 몰두했다. 한 번은 후굴 자세로 너무 오래 있었는지 수카사나(정자세)로 앉았는데 앞가슴이 뻐그라지는 기분이 들 정도였다. (이렇게 하면 안 된다...)




예측하지 못했던, 오랜 친구의 엽서. 이 고양이가 나 같아서 샀다고 한다. 2023년 새 다이어리에 꽂아 두었다.


그리고 이렇게 2023년 음력설을 앞두고서야, 나는 어쩐지 나에게 벌어지는 일에는 아무런 이유 같은 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 5년 동안 나는 많은 사람들을 떠나 왔고, 많은 사람들이 떠나갔다. 그중엔 설마 그럴 리 없다고 생각했던 사람들도 있었고, 차마 알아볼 새도 없이 떠난 사람도 있다. 그런 일에는 아무 이유가 없다. 운명이라거나 숙명이라거나 하는 것은, 오직 믿음의 영역에 있을 뿐이다. 현재를 직시하려면 사실만을 바라봐야 한다. 명확한 사실은, 이제 더는 그들이 내 곁에 없다는 것이고, 22년이 지나간다는 것뿐.


얼마 전 엄마와 통화를 하면서, 나는 내가 깨달은 사성제와 22년을 보내는 내 심정을 이야기했다.

나는 왕자로 태어나지 않았고, 감사하게도 어머니를 7일 만에 잃지 않았다. 서른몇 살이 넘도록 불특정 한 추종자를 몰고 다니지도 않으니, 골고다 언덕을 오를 일도 없을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괴롭다고 여기는 내 생은, 어쩌면 그들이 가장 누리고 싶었던 삶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평범함이라는 것은 얼마나 흔하며 또한 얼마나 괴로운지...


한나 아렌트는 악의 평범성에 대해 이야기했고 무수한 이들이 선의 평범성을 증명하고 있다. 그래서 결국은 돌고 돌아, 단 하나 남는 것이 바로 선하게 살기 위해 선하게 살아야 한다는 사실뿐이다. 어느 날 나를 괴롭게 하는 모든 것 속에도 부처가 있는 걸 깨닫는다. 부처라는 게 뭔가 종교적으로 느껴지겠지만 엄밀히 따지자면 그냥, 뭔가 말로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무엇보다 명확한 어떤 선(善)의 실체 같은 거다. 모든 선함, 나의-우리의- 선함의 이유 같은 것.


드디어 달라이라마의 기도문이 조금 이해되기 시작했다. 어째서 나를 괴롭게 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야 하는지, 왜 나의 슬픔을 받아 들어야 하는지, 나의 행복도 내버려 둬야 하는지, 뭐 이런 것들이 모두.


이 모든 것을 깨달은 날, 나는 오랜만에 10시도 되지 않아서 잠에 들었다. 새벽 3시까지 잠들지 못하다 억지로 억지로 눈을 감았던 일들마저 다 아득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잠들기 시작한 후부터는 5시쯤이면 자연스럽게 눈이 떠진다. 따뜻한 차를 한 잔 내려 마시고 요가를 하면서 아침을 시작한다.


언젠가 일기장에 "행복한 기분이 되었더니, 위대해지겠다는 인간의 욕망 같은 것은 하찮게 느껴진다"는 문장을 적었던 적이 있다. 그날은 사소한 일로 소소한 행복감을 느낀 날이었다. 요새는, 행복하지 않을 때에도 위대해지겠다는 인간의 욕망이 하찮게 느껴진다. 대신 선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선함만이 살아가는 목적이며 수단인 유일한 것이다. 우리는 선하게 살기 위해 선하게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신기한 게, 나는 전부 바뀌었고, 또 전혀 바뀌지 않았다. 먹고, 자고, 쓰고, 읽고.

그리고 언젠가는 지금 이 시간들을 그리워하는 날이 올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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