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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정 Jul 19. 2023

시장과 함께 하는 사업아이템

 처음 본 A 대표자는 얼굴에 활기가 넘쳤다. 그는 두 달 전 경매로 김치공장을 낙찰받았다. IMF 이후 공장 경매 물건이 많이 나왔지만 공장규모, 입지조건, 가격 등을 고려한 물건을 찾기 어려웠다. 그는 부지런히 발품을 팔아 충청도에서 공장을 찾았다. 입찰차 간의 보이지 않는 눈치 경쟁을 뚫고 원하는 공장을 낙찰받았다. 이번에 장기 저리의 정책자금을 지원받아 경락 대금도 해결하게 되었다.               

     

 대출을 실행하기 위해 A 대표자와 충북의 경락 공장을 방문했다. 서울과의 근접성, 공장 규모와 작업 공간 등 모든 것이 맘에 들었는지 그는 이곳저곳으로 나를 데리고 다녔다. 남의 공장에서 사업할 때의 불편했던 점을 비교해 가며 공장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설명해 주었다. 묻지 않는 내용까지 신나게 이야기하는 것이 머릿속에는 이미 공장을 가동해 김치를 생산하고 있었다.

 


 

 기업인에게 자기 공장을 가진다는 것은 서민의 내 집 마련 이상의 가치가 있다. 대부분의 창업 기업은 자금이 부족해 임차 사업장에서 조그맣게 시작한다. 점차 사업을 하다 보면 사업장이 좁고 기계의 위치를 바꿔 효율적으로 생산하고 싶지만 남의 공장이라 마음대로 할 수가 없다. 월세와 금리를 생각하면 부담은 되지만 이참에 공장을 살까 하는 욕심이 든다. 공장을 산다는 것은 빚을 내야 하므로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런 과정을 거쳐 자가공장을 가지면 뿌듯해지고 거래처나 경쟁사 등 외부에서 보는 시각이 달라진다. 건실한 기업으로 제법 안정적인 성장을 하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가 된다.

                     

 ‘어떻게 해서 사업을 하게 되었나요?’. 일을 마치고 서울로 올라오는 한낮, 차 안의 이산화탄소 농도가 높아졌다. 차 안의 적막함과 나른 함을 깨울 요량으로 대표자에게 질문했다. 가끔 대표자와 친해지면 묻곤 하는 질문이었다. 서류의 뒤편에 있는 대표자의 창업 및 성장 과정, 내가 살아보지 못한 타인의 삶을 듣고 싶었다. 다람쥐 쳇바퀴처럼 사는 샐러리맨의 단조로움과 역동적이고 변화무쌍한 사업가의 삶은 어떻게 다른지 궁금했다.

 



 A 대표자는 잠시 멈칫거리다 이내 곧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가 사업을 하게 된 것은 IMF로 실직을 하고 나서였다. 망막했던 그가 제일 먼저 한 것은 중고 자동차를 사서 가족들과 남해안 일대를 돌며 머리를 식히고 가족 간의 결속을 다졌다. 여행을 갔다 오고 나서 무엇을 할지 고민하며 발길 닿는 대로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우연히 백화점 지하 식품 판매대를 돌다 사람들이 반찬 판매대에 몰려 있는 것을 보고 음식 사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IMF로 경기가 침체되다 보니 불요불급한 소비도 줄고 생존에 필수적인 소비만 이루어지고 있어 음식 장사는 망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나름 타당하다고 생각되었다. A 대표자가 제일 먼저 시작한 것은 일식집에 명란젓을 파는 사업이었다. 배우자가 주문 전화를 받고 자신이 일식집을 돌아다니며 영업을 하고 물건을 떼어다 파는 식으로 유통을 했다. 명란젓을 팔기 위해서 뒷문의 주방을 통해 드나들 때는 창피하기도 하고 어색했다고 한다. 성실하게 일한 덕분에 어느 정도 사업이 되면서 김치 수요까지 확보해 동네 아주머니들을 고용해서 조그맣게 김치공장을 운영하게 되었다. 사업이 조금씩 확장되어 공장을 구입할 단계에 이르자 경매에 참여해 지금의 공장을 사게 되었다고 한다.   

        



 사업에 있어 아이템 선정은 굉장히 중요하다. A 대표자의 사업 아이템이 대단한 것은 아니었다. 특별한 기술이 없었기 때문에 사업 아이템을 찾는 것이 막연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IMF라는 특별한 경제 상황에서 시장을 관찰하고 영감을 얻어 식품 쪽으로 창업한 것은 긍정적이다. 식품 유통에서 김치 제조로 사업을 전환한 것도 좋은 사업 모델 변경이었다. 힘들어도 유통보다는 제조 마진이 훨씬 높기 때문이다.

                    

 창업자들을 만나보면 자신의 사업 아이템에 매몰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자신이 개발한 제품이 시장에서 성공할 것 같은 자신감, 시제품에 담아 있는 대표자의 자존심을 보게 된다. 그러한 확신과 자존심이 있기에 창업을 한 것은 이해가 되지만 제품 못지않게 누구에게 어떻게 팔지, 유통 판로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한데 쉽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값싸고 좋은 제품을 출시하면 소비자들이 알아서 살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을 하고 있음을 종종 느낀다. 소비자에게 어떻게 소구(訴求)할지에 대한 생각도 개발 제품 못지않게 중요한데 말이다.  

                    

 시장에서 팔릴 수 있는 물건을 만들어야 하는데 창업자는 자신이 만들고 싶거나, 자신의 기술을 활용하여 만들 수 있는 제품에만 초점을 맞춘다. 시장에 대한 이해와 유통구조, 경쟁기업, 타깃 소비자에 대한 분석 등 팔릴 수 있는 물건이 되도록 더 많은 연구와 관심이 필요하지만 그러지 못함에 안타까울 때가 많다. 이미 세상엔 웬만한 제품은 다 있고 만들 수 있는 기업도 많이 있다.  

              

 요즘 정부의 창업 지원제도가 잘 되어 있어 창업 교육 프로그램으로 시장에 대한 중요성을 알려주고 있다. 예전에 비해 창업자의 마인드도 많이 바뀌고 있다. 교육을 통해 부족한 경험과 창업자 자신만의 세계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어 다행스럽다. 교육을 통해 시장을 바라보는 현실감각을 갖출 수 있도록 창업자의 열린 마음도 못지않게 중요하다.

     



 신입사원 시절, 일선에서 중소기업 지원 업무를 시작할 때 중소기업 대표자와 상담하다 보면 자신의 기술이 국내 최초, 세계 최초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상담할 때마다 듣는 ‘세계 최초’라는 말은 처음에 신기했고 그럴듯하게 들렸다. 차츰 동료 직원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그런 소리를 듣는 것은 나만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금도 제일 기억에 남는 것은 ‘물로 가는 자동차’라는 아이템이었다. 일흔이 넘은 분이 창업을 하겠다고 자신이 개발한 기술을 설명하러 사무실로 자주 오셨다. 지금의 수소차가 물로 가는 자동차다. 25년 전 시장을 앞선 기술에 대해 시장이 받아주지 않았다. 시장을 이기는 기술이나 제품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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