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허정 Sep 24. 2023

기업의 경쟁력이 신용이다

 자금만 충분했더라면. 많은 대표자의 머릿속에 있는 말이다. 굳이 자본주의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돈은 기업의 생존을 위해 필수다. 아무리 좋은 아이템이 있고 같이 할 직원이 있어도 기업을 운영하고 새로운 제품을 만들려면 돈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넉넉하게 자금을 보유한 중소기업은 흔치 않다. 더욱이 창업기업의 자금 부족은 더욱 심각하다.     


 처음에 기업은 자본금으로 시작하지만, 외부 자금을 조달하지 않고서는 사업을 할 수 없다. 자본금으로 사업장 임차료, 인건비, 원자재비 및 개발비 등으로 사용하다 보면 어느새 자금이 부족하다. 아이템을 개발 완료하고 양산화하려면 원재료가 있어야 하고 기계 설비도 필요하다. 투자를 받거나 은행 등 금융기관 또는 정부의 정책자금 조달을 시도할 수밖에 없다.      


 창업기업인 A 기업도 자금이 부족한 데스밸리에 진입한 것 같았다. 창업 후 3~5년 차에 기업은 데스밸리에 처하는 경우가 많다. 데스밸리는 사업이 본격적인 궤도에 올라 이익을 내기 전 자금이 모두 소진되어 실패할 수 있는 죽음의 계곡을 말한다. A 기업은 개발 제품이 완료되어 양산과 판매를 위해 준비 중이었다. 매출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본격적인 생산 및 영업활동을 위한 자금이 턱없이 부족했다. 금융기관의 차입금 한도도 꽉 차 있어 추가 대출이 어려워 보였다.      


 자금지원을 위해 사업장을 방문했다. 소형 청소차라는 아이템으로 창업한 지 3년이 되었다. 공장에서 조립한 완제품을 보고 깜짝 놀랐다. 디자인이나 스펙을 보고 이런 제품을 개발하고 완성품을 만들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을지 그동안의 노고가 느껴졌다. 더욱이 자사 브랜드를 만들어 판매까지 하겠다고 하니 대단하게 보였다.      


 중소기업이 자기 브랜드로 생산하고 제품을 판매한다는 것은 엄청나게 어렵다. 제품은 어떻게든 만들 수 있다. 판매와 A/S를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홍보와 영업을 통해 인지도가 없는 중소기업 제품을 사용자에게 어떻게 소구(訴求)할 것인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완성품을 만들 수 있는 중소기업의 대표자를 만나 독자 브랜드로 시장에 진입하는 것에 관해 이야기하면 대체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주변에 그렇게 하다 실패한 기업을 많이 봤기 때문이다. 대기업에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으로 납품하거나 부품만 생산해 거래처에 납품하는 것이 속이 편하다고 한다.      


 다행히 A 기업의 대표자는 예전에 농기계를 만들던 중소기업에서 영업이사를 했던 사람이었다. 대표자는 자가 브랜드로 농기계를 생산하고 직접 판매를 했던 기업에서 제조에서 판매까지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 기술력만 믿고 창업한 대표들과 다르게 어떻게 팔 것인지를 아는 대표자였다. 남 다른 대표자의 경력은 자신의 기업에서 진가를 발휘하고 있었다. 중소기업이 할 만한 작은 틈새시장을 고려한 아이템 선정에서부터 기존 제품과 차별적인 성능과 세련된 디자인은 눈에 띄었다.      


  A 기업의 대표는 자신의 판매계획을 설명했다. 관공서 납품을 위해 지자체에 홍보를 하고 있었고, 수출을 위해 해외 바이어와 계약을 진행하고 있었다. 안타깝게 실제 계약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직 없었다. 매출 발생을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지만 대표자의 말 그대로 사업이 진행될지 고민이 되었다. 그동안 계획했던 사업이 진행되지 않아 애로를 겪었던 기업을 많이 봤기 때문이다     


 개발 제품은 기존의 경쟁 제품과 확실히 크기와 성능 면에서 차별성이 있었다. 브래드 명도 쉬워 인지도를 높일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무엇보다 대표자가 실제 영업을 했던 경험과 노하우가 있어 제품 판매가 가능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기업에 대해 종합적으로 검토한 결과, 사업성이 있다고 판단되어 자금지원을 결정했다. 그 기업이 지금은 견실하게 성장하고 있어 당시 결정에 보람을 느끼게 했다.  



 돈은 신용이다. 경제구성원들이 종이 쪼가리인 지폐를 가지고 어디를 가도 그 숫자만큼의 가치 있는 물건을 살 수 있다. 종이 쪼가리이지만 신용이 있기 때문이다.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기업도 신용이 있어야 한다. 그 기업에 돈을 빌려주고, 투자해도 돈을 다시 받을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면 자금을 구하기는 쉽다. 삼성전자가 돈을 빌려달라면 고민도 안 하고 빌려주겠지만, 이름 모르는 지방의 창업기업이 돈을 빌려달라고 하면 단번에 거절할 것이다.     


 기업의 신용은 기업의 경쟁력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경쟁력 있는 기업은 시장의 변화를 따르고 타 기업에 뒤처지지 않는 제품 개발과 생산 능력으로 물건을 잘 만들어낸다. 타사 제품보다 낮은 생산원가로 가격경쟁력이 있고 다양한 거래처를 확보해 물건을 팔 수 있는 기반을 갖추었다. 한마디로 잘 만들고 잘 팔아 높은 수익을 창출하는 기업이고, 망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주는 기업이다.         

 

 경쟁력 있는 기업이 되는 것은 쉽지 않다.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기술력을 쌓고 새로운 제품을 만들어 내는 과정이 그냥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쉽게 모방하고 단순 가공해서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성공의 확신이 없는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도전하고 성공함으로써 생겨나는 것이다. 변화에 대응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제품화하는 부단한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A 기업을 지원했던 것도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 흔적이 신용 있는 기업으로 믿음을 주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A 기업은 이러한 노력을 지속하고 있고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어느 대표자는 직원들 월급을 주고 나면 한 달은 발 뻗고 지낼 수 있다고 한다. 월급을 주는 대표들만이 겪는 고충으로 애로가 느껴진다. 하반기 우리 경제는 미국 금리 동결과 국내 부동산 경기 침체, 수출 부진, 세수 펑크 등으로 쉽지 않을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우리 기업들이 경쟁력을 갖추어 망하지 않는 기업이 되기를 바라며 닥칠 수 있는 경제 위기를 잘 극복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그래도 사람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