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걸음은 팔자다. 어머니도 외할아버지도, 외삼촌도 그렇다. 생각해 보면 외가 친척들 대부분 팔자걸음이었다. 그래서일까 어렸을 때부터 팔자걸음에 대해 거부 반응은 없었다. 양반은 팔자로 걷는다는 말을 들었고, 스스로 양반의 피가 흐르고 있을 것이라는 확신으로 오히려 당당했다.
아버지는 팔자걸음이 아니다. 이북에서 고모와 함께 넘어오셨기에 친가의 모습을 알 수 없어 양반이었는지 모르겠다. 외할아버지는 두루마기에 한복을 입고 다니셨고 어릴 적 한자와 붓글씨를 가르쳐 주셨던 분이었기에 진짜 양반의 후손임을 의심하지 않았다. 고지식한 외할아버지가 두 분의 결혼을 승낙한 것으로 봐서 아버지도 양반이었을 것으로 추측했다.
양반이라는 말은 이제 사어가 되었지만 그래도 어릴 적 어른들은 양반, 상놈이라는 말이 의식 깊은 곳에 있었는지 곧잘 끄집어냈다. 예의가 없거나 도리에 어긋난 행동을 하는 사람에게 상놈이라고 했고, 양반은 그 반대의 뜻으로 표현을 했다. 양반이라는 말은 긍정적이고 좋은 의미가 담긴 말로 인식되었다. 그래서였는지 양반임을 증명하는 팔자걸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것 같다. 말도 안 되는 자부심으로 교정해야 할 걸음이 아닌 자랑스러운 걸음으로 여기며 살았다.
걸음걸이에 대해 문제가 있다고 자각한 것은 대학교 1학년, 주일학교 교사를 시작할 때였다. 친한 선배 여교사가 성당에서 어머니를 봤다고 했다. 어머니와 인사도 한 적이 없었는데 어떻게 알아봤는지 궁금해졌다. 걸어오는 모습이 너랑 똑같아서 금방 알아봤다는 것이다. 얼굴도 아니고 걸음걸이로 알아봤다고 하니 어머니와 나의 걸음걸이가 얼마나 유별났었는지 그제야 알게 되었다.
결혼 후 어느 날 아내가 내 걸음걸이에 대해 설명한 적이 있었다. 생물학 박사인 아내는 관찰과 실험으로 체화된 눈썰미 때문에 입체적인 분석을 잘한다.발을 디딜 때 발목을 휫 돌린다며 팔자걸음보다 걸음의 이상함을 지적했다. 내가 걷는 모습을 제대로 본 적이 없었기에 아내의 설명에 그러냐고 대꾸를 할 뿐, 할 말이 없었다. 그 후 팔자걸음을 고쳐보려고 수제구두를 샀던 구두 매장의 걸음 교정프로그램에 참가해 한 달가량 연습도 했다. 별 도움은 되지 않았다. 그동안 걷던 편한 걸음걸이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우리는 걷는 것에 대해 배워 본 적이 없다. 태어나 네 발로 눕고 기다가 돌이 되기 전 첫걸음을 떼면서 걷는다. 직립보행인 인류의 일원이 된 것에 대해 가족의 축하를 받으며 평생 걷게 된다. 어떻게 걷는 것이 제대로 걷는지 모른 채 본능적으로 두 발과 두 팔이 앞뒤로 움직이며 걷는다. 본능적이고 너무나 당연한 걷기가 요즘 들어 건강관리에 대단히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두 달 전 구례 펜션에서 대학 동아리 선배들과 1박 2일 모임을 가졌다. 학교 다닐 때 얼굴도 뵌 적 없는 10년 터울의 선배들이 서울에서 내려왔다. 어려운 대선배이지만 같이 늙어가는 처지이다 보니 세월에 격차는 무디어졌다. 세월에 장사 없다고 선배들은 예전만큼 술을 안 마셨다. 아니 정확하게 못 마셨다. 이야기꽃도 나이 앞에 일찍 저버리는지 12시가 넘자 술자리는 마무리되었다. 방에는 이미 두 명의 선배가 있었다. 당뇨 환자였다. 한 분은 피를 뽑아 당 검사를 하고 있었고, 한 분은 복부에 인슐린 주사를 직접 놓고 있었다. 버거운 삶을 온몸으로 받고 있었다.
종전까지 술과 담배를 같이 했던 두 분이 당뇨라고 하니 의아해졌다. 술과 담배를 끊지 못하지만 하루에 만보 걷는 것으로 건강관리를 한다고 했다. 이번에 온 1기 선배도 지병 때문에 하루 만보 이상 걷는다고 알려주었다. 건강에 이상이 있는 선배들은 모두 걷기를 통해 건강을 관리하고 있었다.
올 6월, 평생교육원의 글쓰기 강좌가 끝나고 뒤풀이 시간을 가졌다. 수업에 꾸준히 참여한 팔순의 노교수가 자신을 소개하며, 와사보생(臥死步生)으로 자신의 생활을 이야기했다. 누우면 죽고 걸으며 산다는 말이 새롭게 다가웠다. 젊을 때 부지런히 걸어 다녔으니 나이 먹으면 누워서 편히 사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던 생각이 어리석게 느껴졌다. 나이 먹을수록 움직이지 않으면 근력이 떨어져 몸이 더 안 좋아지기 때문에 나이 먹어도 걷기는 계속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주 전 아버지는 눈 수술을 했다. 오른쪽 눈이 녹내장으로 시력이 거의 없었다. 의사는 그나마 나은 왼쪽 눈이 더 나빠지는 것을 완화하기 위해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팔순이 훨씬 넘은 연세에 수술이 마뜩지 않지만 아내도 같은 의견이라 어쩔 수 없었다. 앞이 보여야 걷거나 움직일 수 있기에 수술을 강행했다. 수술 중에 보라매공원을 산책하며 대기하고 있었다.
공원에는 많은 사람들이 트랙을 걷고 있었다. 나처럼 팔자걸음도 은근히 많았다. 다리를 내딛으면 벌어진 각도의 차이가 다를 뿐이었다. 걷는 모습은 외모만큼 제각각이다. 체형이 다른 것도 있지만 세월이 할퀴고 간 자리에 허리와 다리의 기능이 변해 똑바로 걷는 사람도 흔치 않았다. 한 팔은 앞뒤로 움직이는데 반대 팔은 고정되어 걷는 사람, 약간 기우뚱해서 걷기도 하고, 천천히 한 걸음씩 힘겹게 걷는 사람도 있었다. 나이 먹을수록 걷는 모습은 불안해 보였고 보는 것만으로 안쓰럽기도 했다.
걷기가 인간에게 좋은 운동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나이 먹고 병든 사람에게도 걷기가 보약임을 새삼 알게 되었다. 의료 발전으로 길어진 수명을 받쳐주는 것은 인류가 전해준 걷기였다. 와사보생이라는 말이 가슴에 와닿고 있다. 무더위가 한 풀 꺾여 걷기 좋은 계절이다. 더군다나 6일의 긴 추석 연휴는 밖으로 나가 걷기 좋은 시간이다. 유별난 팔자걸음이 신경 쓰이지만 이제라도 바른걸음에 신경을 쓰며 부지런히 걸어야겠다. 인류가 전해 준 최고의 선물을 잘 사용하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