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복을 앞두고 집중수행 하러 명상센터에 갔다. 6박 7일 동안 밥 먹고 자는 것 말고 오로지 좌선, 행선 그리고 법문으로 짜인 단순한 일정이었다. 단순해서 부담스러웠다. 이왕 하는 것 제대로 해 보려고 스마트폰을 반납하고 책도 읽지 않으려고 했다. 온종일 명상만 하는 그곳에서 내 호흡이 그 시간을 잘 버틸 수 있을지 염려가 되었다. 작년에도 4일간 참여했기에 이것 하나 못하겠냐는 생각과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마음은 장거리 운전을 힘들지않게 했다.
처음 명상을 시작한 것은 14년 전이다. 명상하던 직장 선배가 평상시 양자역학과 함께 세상은 마음이 지어낸 것이라는 알 수 없는 이야기를 해주었다.흔히 눈으로 사물을 본다고 생각하지만 이미 마음에서 의도가 일어났고 망막을 통해 보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보는 것이라고 했다.내가 세상에 사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마음속에 세상을 짓고 인식하고 개념화하면서 산다는 것이었다. 마치 영화 매트리스의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 생각지도 않았던 마음 세계의 이야기를 들으니 신기했고 틀린 것 같지 않아 그런가 했었다.
하루는 선배가 점심을 먹고 나서 직원들과 같이 명상을 해보자고 했다. 나를 포함해 관심 있는 직원 3명이 같이 참여했다. 선배는 눈을 감고 오직 호흡에만 신경을 쓰고 숨이 들어오고 나가는 곳을 바라보라고 했다. 여태껏 숨을 쉬기만 했지 바라본 적은 없어서 어색했다. 숨을 쉬면서 배가 부풀어 오르고 내쉬면서 꺼지는 것을 바라보면 되는 것이었다. 단순했다. 가부좌를 틀고 앉아 20분가량 눈을 감고 명상이라는 것을 처음 해봤다.
들어오는 숨과 내쉬는 숨을 바라보면서 호흡에 집중했다. 얼마 되지 않아 아니 몇 초 만에 이 생각이 일어났다 바로 다른 생각이 떠올랐고, 전혀 생뚱맞은 생각이 쑥 들어오는 등 별의별 생각으로 머릿속은 가득했다. 내 의도는 전혀 없었다. 생각들이 알아서 생겨났다 사라지는 것이었다. ‘이것이 뭐지?’ 도통 호흡에 집중할 수 없었다. 순간 ‘오만가지 잡생각’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우리 선조들은 이미 잡생각이 오만 가지나 생겼다 사라지는 것을 알았다는 것인가. 신기할 따름이었다.
명상 후 선배는 내가 겪은 이야기를 듣고 나서 처음으로 너의 생각을 본 것이라고 했다. 내가 하는 것이 위빠사나 명상이고 석가모니 부처가 깨달음을 얻었던 수행방법이라고 했다. 그 후 나는 너무 신기해서 집에서 가끔 혼자 명상을 했었다. 명상하다 잠이 들기도 했고, 기분 나쁜 생각으로 갑자기 눈이 떠져 그렇게 끝나기도 했다.혼자 하니 어설펐다. ‘18년부터 본격적으로 명상 모임에 참여해 일주일에 한 번씩 1시간씩 명상을 했고 지금까지 꾸준히 하고 있다.
집에서 혼자 명상을 하다 보니 어느 순간 진전이 없다고 느껴졌다. 6년 넘게 하고 있지만, 여전히 잡생각과 씨름을 하고 있다. 20~30분 눈을 감고 호흡을 바라보면 떠오르는 잡생각은 변함이 없다. 당연했지만 더딤에 답답했다. 정원에 잡초를 제거하고 나면, 다음 날 또다시 생겨나는 것처럼 생각, 감정은 질기고 멋대로다. 생각과 감정이 생명이 있는 것 같다. 저절로 일어난 생각에 방심하면 어느 순간 잭크의 콩나무와 같이 커져 버려 하늘까지 올라가 버린다. 다시 알아차려 호흡에 집중하면 사라지지만 여전히 집중력이 부족함에 아쉬움이 컸다. 명상은 시시포스가 바위를 옮기는 것처럼 끝이 없어 보였다.
아침 5시 예불로 시작해 좌선과 걷기 명상 각각 5시간, 1시간 법문은 정말 힘들었다. 무슨 노동이나 운동을 한 것도 아닌데 이렇게 힘들 줄 몰랐다. 저녁 9시 하루 일정이 끝나면 너무 피곤해 빨리 씻고 눕고만 싶었다. 그렇게 누워 조용히 들려오는 풀벌레 소리를 듣다 보면 어느새 잠이 들었다. 스마트폰을 보며 자곤 했었지만 일주일 동안 스마트폰에 대한 그리움은 전혀 없었다.
걷기 명상을 10분 정도 하면 다리가 무거워진다. 등산이나 운동을 하고 난 후 생겨난 피곤함, 다리 아픔과는 다르다. 걷기 명상을 하고 나서 든 생각이었다. 우리가 하는 행동 하나하나를 이렇게 알아차려 움직이다 보면 힘들어서 일상이 안 될 것 같다. 그래서 인간은 자동으로 무의식적으로 살아감으로써 에너지 소비를 줄이며 효율적으로 살아가는 길을 택했나 보다. 원시시대부터 즉각적으로 반응을 해야 살아남았을 것이니 명상이라는 것은 생각지도 못했을 것이다.
좌선을 하다 보면 곧잘 다리가 저렸다. 마음을 집중하고 ‘저리다’라고 명칭을 붙여 4~5번 관찰했지만, 관찰의 힘이 약한지, 절여오는 통증이 더 아픈지 이내 곧 움직여 다리를 펴버렸다. 다리를 펼 때도 그냥 바로 펴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으로 다리 펴는 것을 의식하고 천천히 움직이라고 했지만, 통증은 그럴 겨를도 주지 않았다. 빨리 다리를 펴고 싶은 의도가 이미 마음을 접수한 상태였다. 아직 수행이 짧아 극복하기 어려운 것 같다.
첫째 날부터 집에서 할 때와 달리 아무 문제가 없었던 몸에서 이상 증세를 보내왔다. 좌선할 때면 허리도 아프고, 목도 아프고 다리도 아파 제대로 가부좌를 하기 어려웠다. 그동안 의식하지 못하고 살던 몸의 잔고장이 고요 속에서 자신의 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인지 염려가 되었다. 이러한 증세는 마지막 날까지 계속되었다. 특히 양 무릎 통증은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해 가부좌를 어렵게 했다.
수행 중에 계속 사방이 아프고 무릎의 통증이 심해 병원에 가야 하는 것 아닌가 걱정이 되었다. 때마침 수행센터에서 일하는 분이 계셔 혹시 나 같은 사람의 경우 센터 내에서 취했던 방법이 있을까 싶어 물어봤다. 그분이 내 이야기를 듣더니 웃으셨다. 얼마 전에 오신 분도 당신처럼 수행하다 통증으로 걱정이 되어 MRI까지 찍고 왔는데 결국 아무 이상이 없었다고 했다. 그냥 집에 가면 다 낫는다고 했다. 이어 무아를 이야기하며 내 몸이 내 몸이 아니라고, 너무 열심히 하려다 보니 몸이 상황에 맞추느라 생겨난 것이라고 했다. 일정표대로 맞춰서 하다 보면 힘이 드니 쉬면서 하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제야 사람들이 일정표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롭게 자신의 상황에 따라 수행에 참여하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무작정 열심히 한다고 되는 것도 아님을 또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 결국 몸도 생각처럼 내 마음대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었다.
명상을 하고 나서 일이나 사람을 대할 때 대응의 여유가 조금은 생겼다. 이전에는 급한 성격에 바로바로 대응했는데, 지금은 마음속에 일어난 생각이나 감정을 알아차리다 보니 화가 났는지, 불쾌했는지 상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게 되었다. 호흡에 집중하면서 일어난 감정, 생각에 집중하고 ‘화 남’, ‘망상’이라 명칭을 붙여 4~5번 관찰한다. 그렇게 호흡에 집중하면 일어났던 감정, 생각이 사라져 평상심을 유지하게 되었다.
일체유심조라고 하지만 마음을 어떻게 할지 몰랐고 내 마음 나도 몰라 괴로웠던 시절에 명상은 도움이 되었다. 괴롭고 고통스러운 것은 모두 마음이, 과거의 후회, 미래의 불안에 빠져 있어 그러함을 알게 되었다. 마음이 오직 현재에만 있어야 고통스럽지 않다. 호흡에만 집중하고 마음을 지금 여기에 두면 좋지도 싫지도 않은 평상심을 유지하게 된다. 그게 좋아서 명상을 한다. 물론 이런 생각, 감정마저도 알아차림의 대상이 되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