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 세계를 다시 만나다.
"빰 빠빠빠빰 빠빠빠빰 빠라라~"
아직도 깊이 자리 잡은 토요명화의 오프닝. 한 주간 토요명화나 주말의 명화를 보기 위해 기다림의 시간을 견디던 어린 시절이 생각난다. 늘 그랬던 것은 아니지만 가끔 취향에 맞는 영화를 아버지와 나란히 앉아 함께 보던 추억은 내 안에 깊이 자리하고 있다.
다른 가족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아버지와 나는 친한 듯하면서도 거리감이 있는 관계였다. 아침에 휴지를 돌돌 말아 내 귀나 발가락을 간지럽히며 장난을 치며 깨우시던 아버지와, 일상의 대화를 나누는 아버지의 모습은 괴리감이 있었다. 아버지의 마음은 모르겠지만 나는 적어도 나보다 여동생을 더 아끼시는 것처럼 느끼곤 했다.
그런 내가 아버지와 함께 있는 시간이 가장 편안하고 따뜻했던 것은 토요명화를 함께 감상하는 순간이었다. 아버지가 유난히 좋아하시던 서부극이 방영될 예정임을 편성표를 보고 알게 되면 하루 이틀 전부터 설레곤 했다.
그래서일까. 나는 지금도 그 어느 것보다 영화 보는 것을 좋아한다. 독서나 게임, 또는 스포츠도 참 좋아하지만 내게 있어 최고의 취미는 예나 지금이나 단연코 영화 감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영화를 보는 것은 가장 접근성 좋은 문화생활 중 하나일 것이다. 요새는 극장이나 공중파 텔레비전 이외에 OTT 같은 감상의 통로가 많아서 더 풍성하게 즐길 수 있다.
하지만 역시 영화는 극장에서 거대한 스크린을 보며 음향과 영상을 온몸으로 즐기는 것이 최고다. 쿨미디어의 극이랄까.
바로 엊그제 개봉한 조지 밀러 감독의 "퓨리오사 : 매드 맥스 사가"를 감상하고 왔다. 이틀이 지났지만 아직도 가슴이 두근거린다.
감독의 전작 "매드 맥스 : 분노의 도로"를 극장에서 두 번, OTT로는 스무 번을 넘게 봤다. 그 싯누런 사막의 황폐한 광기와 엄청난 액션으로부터 받은 시각과 청각의 공감각. 서사는 단순하나 행동으로 모든 것을 보여 주는 강렬함에 시선을 빼앗긴 기억.
그만한 영화를 칠순의 조지 밀러 감독이 연출했다는 것이 아직도 의심스러울 만큼 대단했기에, 그로부터 9년이 지나 나온 후속작에 더욱 기대감을 가졌던 것이다. 그리고 곧 팔순을 맞는 감독은 그런 내 기대를 거의 저버리지 않았다.
거의라는 것은 아무래도 말보다 행동으로 모든 것을 보여주던 전작에 비해 정교해진 서사만큼 완급 조절이 된 탓에 일정 부분 느슨한 구간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작을 의식하지 않고 한 편의 영화로서만 판단하자면 이미 차고도 넘치게 훌륭한 영화다.
내 감상 포인트는 이 영화가 어머니를 잃은 여자 아이의 처절한 홀로 서기와 그 과정에서의 사투, 거악과 싸우는 개인의 외로움을 담고 있다는 점이었다. 모두가 어딘가 상처 입은 사람들, 또는 상처를 주는 사람들이며 좋은 사람 한둘을 겨우 만났다 싶으면 곧 잃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결국 스스로 일어나 목표를 향해 무한질주하는 모습은 내 아버지가 그토록 좋아하시던 서부극의 방랑자와 아주 닮아 있었다.
여성이 주인공인 영화를 보면서 아버지와 함께 설레는 마음으로 영화를 보던 순간이 떠올랐다. 훨씬 이전의 전작들, 매드 맥스 1편부터 3편까지도 아버지와 함께 봤기에 나는 그 시절과 아버지가 그리워졌다.
이 영화도 전작처럼 일종의 페미니즘 영화로 취급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그럴 수 있다고 대답할 것이다. 그러나 과도한 PC로 점철된 영화들과는 현저히 다르다. 전작이 그랬던 것처럼 아주 자연스럽고 즐겁게 감상할 수 있게 잘 만든 영화다. 한 번쯤 극장에서 감상해 보기를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