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길로 가 보다.
요즘 들어 부쩍 온도가 상승한 날씨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등줄기를 따라 흐르는 땀을 느끼고, 관자놀이와 콧잔등의 습기로 안경이 흘러내리는 것을 느낀다. 불편하다. 이럴 때면 나는 문득 궁금해진다. 사람들의 더위에 대한 체감은 모두 같을까? 이런 찝찝함과 괴로움을 모두가 같은 감각으로 느끼고 있을까?
날이 추우면 추워서, 더우면 더운 대로 움직임이 줄어든다. 그러나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의 양은 특별히 달라지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최근 들어 부쩍 몸이 무거워짐을 깨닫는다. 그래서 오늘도 혹시나 다칠까 염려스러워 걱정하는 어머니의 음성을 뒤로한 채, 자전거 헬멧을 꺼내 들고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른다. 따가울 만큼 뜨거운, 태양으로부터 8분 19초 전에 출발한 태양빛이 달궈 놓은 도로. 이 코딱지만 한 별의 모래알 같은 내 목덜미에 닿기까지, 태양의 중심으로부터 17만 년을 뚫고 나온 빛의 반응을 느낀다. 뜨겁군. 내 자전거의 타이어는 쩍 하는 비명을 지르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오늘은 평소에 달리던 방향과 무조건 다르게 가본다. 늘 좌측으로 나가던 아파트 정문을 오른쪽으로 나갔고, 큰 길가로 나 있는 자전거 도로가 아닌 골목을 향한 길로 달렸다. 그렇게 한참을 달리면서 평소와 다른 경치를 구경하며 대퇴부에 힘을 가했다.
결론은 같다. 길은 사람이 다니는 곳으로 나게 되어 있고, 다르게 나갔어도 큰 방향만 잃지 않는다면 비슷한 지점에서 합류하게 된다. 그렇게 약간의 변화였을 뿐이지만, 내 머리 안에서 이 도시가 새롭게 구성되는 것을 느꼈다.
양재시민의 숲 공원을 달리다, 한강공원으로 나가서 잠시 책을 읽었다. 책의 내용이 머리에 하나도 들어오지 않지만, 그렇게 앉아 있는 자신이 자못 멋스럽기에 해볼 만한 시도였다. 그 시간에 그 자리에 그렇게 앉아 있는 나는, 상수역 반지하 작업실이나 대치동의 실기실에서 그림을 그리거나 아이들을 가르치는 나와 또 다른 뷰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만족스럽고 행복했다. 조금 더 멀리, 다르게 움직이고 보고 듣는 나의 하루는 그렇게 풍성하게 저물어 갔다.
근래에 나는 많은 것을 시도하기도 했고, 거기서 작은 실패와 작은 성공을 두루 맛보는 중이다. 그것을 곁에서 지켜보는 사람은 오직 어머니 한 사람. 어머니는 그런 나의 심기가 늘 걱정이신 모양이다. 조심스럽게 아들의 기분을 살피며 잘 안 되어도 괜찮다는 말씀을 계속 던지시곤 한다. 나는 전혀 좌절하지 않는데 반복해서 들리는 격려에 간혹 짜증스레 반응할 때도 있지만, 대체로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다. 때로는 든든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나나 어머니나 자연인의 한 개체로서 완전히 서로 이해할 수는 없기에, 온전히 서로의 마음을 전하지 못할 뿐이다.
나는 괜찮다. 지금까지 괜찮았고, 지금도 괜찮으며 앞으로도 괜찮을 것이다. 사람은 대체로 진 경기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우며, 넘어지면서 일어서는 법을 배운다. 그리고 난 아직, 한참을 더 넘어져도 괜찮을 만큼 충분히 넘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오늘도 자전거에 몸을 싣고 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