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음마는 필요해
1. 예술, 왜 하세요?
누군가 물었다.
"나는 예술을 왜 하고 있을까요?"
질문의 주체는 명문 미술대학교를 졸업하고 우리나라와 세계 각지를 돌며 현직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사람이다. 그런 이에게서 그런 질문이 나왔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그리고 이전에 들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대학교에 재학하던 시절에, 흥미롭게 수업을 진행하던 미디어 아트 작가 교수님과 개인적인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그때의 대화를 아주 사소한 것까지 다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분이 내게 해줬던 이야기는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다. 위의 질문과 동일한 나의 물음에 그분이 대답했다.
"내가 있는 섬 반대편에 무엇이 있을까 궁금했어. 이 편과 저 편을 잇는 아주 긴 다리가 있었지. 나는 그 다리를 건너기 시작했어. 처음에는 아주 설렜고 즐거웠지. 하지만 아무리 걷고 또 걸어도 반대편은 아직도 멀리 있었지. 얼마나 걸었을까. 이제 저 편의 섬이 보이기 시작할 때쯤이었어. 문득 내가 얼마나 왔는지 궁금했지. 그리고 돌아갈 수 있다면 다시 돌아가고 싶은 마음도 있었어. 하지만 돌아보고 나서 깨달았어. 내가 가야 할 만큼의 길이 내 뒤로 그대로 있는 거야. 이제는 앞으로 갈 수밖에 없어. 그런 마음이야."
그런 기분을 나는 아직 알지 못한다. 작가로서의 나는, 걸음마를 제대로 떼어 보지도 못한 채 앉은자리에서 몸만 커버린 아이와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걷고 뛰고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 걷는 과정을 아직 제대로 겪지 못했다. 과연 이 길을 끝까지 걸을 수 있을까.
첫 개인전을 치르며 가장 먼저 마주친 감정은 두려움이었다. 내 작품에 대한 감상이 어떨까. 사람들은 어떤 평가를 내릴까. 그전에, 전시장을 찾아 줄까. 전시 디스플레이를 마치고 나서는 될 대로 되라는 기분까지 들 정도로 두려움에 휩싸이기까지 했다. 다리가 후들거려 아무것도 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그러나 오픈 후 한두 사람씩 아는 이 외에도 미지의 콜렉터들과 관람객이 방문할 때마다 내 안에서 두려움은 잦아들고 설레는 기분과 즐거움, 동시에 아쉬운 마음이 자라 갔다.
'아, 더 일찍 이런 기회를 만들어 볼 걸.'
'더 많은 작품을 만들어 놓을 걸.'
'일단 부딪쳐 볼 걸.'
전시를 통해 나도 모르던 자신에 대해 알게 되었다. 아, 나는 아주 관심을 받고 싶어 하는 사람이구나. 내 안의 세계가 가시화되어 타인의 시각과 지각을 건드려 가는 것을 좋아하는구나. 나는 내 작품을 평가받는 것보다, 함께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는구나.
이런 나를 절대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작업을 해 보지 않았다면.
이런 세상은 절대로 알지 못했을 것이다. 걸어보지 않았다면.
그야말로 미지. 그저 몰라서 몰랐던 것이다.
그렇다. 미지는 두렵지만 설레는 것이었다. 나는 이 미지의 세계를 계속 탐구하고 걸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