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즐거움은 어디에나 있더라
며칠 전, 겨우 한 달 여 만에 겨우 시간을 내서 어머니와 둘이 시간을 보냈다. 빠듯한 일정에 실질적 피곤에 찌든 육신은 "나를 좀 더 재워!"라고 외치고 있었지만, 정서적 갈증에 시달리던 정신은 "네 어머니와 맥주라도 한 잔 하라고!"라며 나를 등 떠밀고 있었다.
마침 그날은 왠지 치킨을 먹고 싶었다. 워낙 치킨을 좋아해서 혼자 지내던 시절에는 못해도 주에 1~2회씩은 배달을 시켜 먹던 나였지만, 어머니와 합가해 지내면서 그 좋아하던 것을 일순간에 딱 끊었더랬다. 이전에는 비 오는 날이라서 후라이드 치킨, 날씨가 후덥지근해서 양념치킨, 기분이 꿀꿀해서 블랙 알리오, 기분이 좋아서 고추마요 치킨 등... 참 많은 이유를 대면서 치킨을 사서 모니터 앞에 앉아, 차가운 맥주 한 캔 홀짝이며 OTT로 영화나 드라마를 보는 것이 소중한 취미 중 하나였다. 그것이 한순간에 사라진 것이다. 최근까지 아주 어쩌다 가끔 그립다는 생각이 들 뿐, 이제는 그저 있다가 없어진 일상 중 하나로 받아들인 지 오래다.
그런데 어떤 이유였을까. 불현듯 내 지나간 취미와 소소한 행복을 어머니와 나누고 싶은 마음이 불처럼 타올랐던 것은. 아마도 마침 딱 좋은 시점에 새로 밥을 해서 올려야 할 시점과 심신의 피로가 겹친 때문이지 않을까. 한 번 마음에 파문이 일자, 이후의 행동은 치킨 주문부터 영화 선택과 자리 만들기까지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
내 선택의 기준은 다음과 같았다.
1. 어머니가 평소에 맛본 적 없을 것 같은 치킨. 그러니까 일반적인 후라이드 치킨이나 양념 치킨 같은 것은 메뉴 후보에서 제외다. 특별한 시간이니까. 게다가 무조건 뼈가 아닌 순살이어야 한다. 왜냐면 살을 바르느라 영화에서 눈이 떨어지면 안 되니까.
2. 영화는 가족적인 분위기에 유쾌하며 두 시간을 넘지 않는 것으로. 어머니는 취향에 맞는 고전 영화가 아니면 한두 시간을 못 버티고 바로 전화나 문자, 기타 대화 등을 시도하며 영화의 세계에서 벗어나 버리니까. 드라마는 긴 시즌도 집중해서 보시는 분이 한두 시간짜리 영화에는 왜 그토록 집중이 안 되시는 건지 지금까지 궁금해 왔고 지금도 궁금하고 앞으로도 궁금할 것이다.
3. 맥주는 많아야 두 캔까지. 몽롱한 정신으로는 영화를 즐길 수 없고, 음식 맛도 결국 희미해질 테니까.
이 세 가지의 기준으로 음식을 주문하고 영화를 선택하고 맥주를 꺼냈다. 내가 선택한 영화는 오래전에 재미있게 봤던 과속스캔들이다. 영화의 이야기는 홀로 사는 남자(혹은 여자), 갑자기 생긴 가족(딸과 손녀)의 합가, 오해 및 다툼과 화해로 흘러가는데 그것이 왠지 나와 어머니의 생활에 시사하는 바가 있을 것 같았다. 사실 가장 큰 이유는 암울하기 짝이 없는 요즘 세상에서 깔깔 웃으며 시름을 잊을 소재로 적절한 만듦새임을 잘 알고 있었다는 점이다.
결과는 절반의 성공이었다. 영화의 초반에 어머니는 집중하지 못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꺼내셨다. 어쩌면 건성으로 대답하는 내게 어머니가 서운하셨을지 모르겠다. 지금 생각하니 그 순간이 너무 예상 이내여서 우습지만, 당시에는 어머니의 이야기보다는 내가 만든 분위기에 어머니가 스며들지 못하는 게 아닌가 싶어서 조마조마했다. 영화 시작한 지 정말 단 10분도 안 돼서 내가 정확히 예상한 대로 주변인의 이야기를 꺼내며 영화의 세계에서 벗어나 부유하고 있는 어머니의 정신세계가 흥미롭기도 했고, 다시 주의를 돌리려고 얼마나 노력했는지 모른다. 글을 쓰는 지금도 그 상황이 떠올라 미소가 입가에 떠오른다. 참 예측과 일치하는 어떤 이의 행동이란, 그것을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안심과 항상성을 갖게 하는가 보다.
그래도 이야기와 캐릭터가 주는 힘은 통했는지, 어느새 영화 속 캐릭터가 하는 말과 행동에 어머니가 웃음을 터뜨리시기 시작했다. 그리고 서로 함께 잔을 주고받으면서 웃고 치킨을 뜯으며 또 웃고 영화의 끝까지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겨우 두 캔뿐인 맥주였지만, 살면서 지금껏 수십 년 간 잔을 나눠 온 그 어느 누구와 보냈던 수백 수천 시간보다 훨씬 행복했다고 확신한다.
돌이켜 보면 돌아가신 아버지와는 단 한 잔의 술도 - 그것이 어떤 종류든 - 나눠 본 적이 없다. 꼭 술을 마셔야 정서적 공감을 할 수 있는 건 절대 아니지만, 내 마음 한구석 어딘가 깊이 잠들어 있던 아쉬움과 슬픔이 있다. 둘이서 낚시를 간다든가, 최소한 뭔가는 해볼 수 있었을 텐데.
아버지는 생전에 아들과 한 잔 마시고 싶다는 생각을 한 번도 내비치신 적이 없다. 그 외에도 내게 뭔가 원하는 것이 있다는, 또는 그 비슷한 감정이라도 보인 적이 없으셨다. 그래선지 나는 어릴 때부터 왠지 모르게, '아버지는 내가 원하는 것을 다 들어주시지는 못할 거야'라는 생각을 품고 있었다.
그러나 한두 해 전, 어머니는 내게 "네 아빠는 네가 달라는 게 있었으면 다 줬을 거야."라고 확신에 찬 목소리로 이야기해 주셨던 적이 있다. 그리고 생각해 보니 그 말이 맞았다. 아버지는 내게 먼저 뭘 해주겠다고 하신 적은 없어도, 내가 먼저 뭘 하고 싶다고 할 때 안된다고 하신 적이 없었다. 정말 아주 작은 한 가지라도, 내가 하고 싶다고 하면 안 된다고 하신 적이 없다. 그것을 깨달은 이후로는 늘 마음 한 구석에 어머니와는 뭔가 할 수 있을 때 해봐야지라는 생각을 품고 있었다.
그런데 참 어처구니없게도 그것도 어디까지나 내가 하고 싶은 범위 안에서다. 난 참 이기적이고 못된 녀석이니까. 어머니가 먼저 하고 싶다는 것을 내가 그러자고 대답한 적은 별로 없다. 그런 점에 대해 죄의식도 갖고 있고, 후회가 될 때도 많다. 하지만, 그래도 한 가지 방패는 가지고 있다.
누가 뭐래도 난 일단 어머니의 아들이니까. 어머니가 아들이 하고 싶은 걸 먼저 들어주셔야 하지 않을까. 이런 뻔뻔하고 철없는 소리도 아들이니까 어머니께 겨우 할 수 있는 이야기일 것이다.
물론 말만 이렇게 하는 것이다. 위악이라도 부려 봐야 겨우 상쇄될까 말까 하는 죄송함과 감사함이 늘 내 안에 가득하다는 것을 어머니가 알아주시길 바랄 뿐이다. 앞으로도 종종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다. 물론 당분간은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