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어떤 사람인가

질문 하나. 네게 엄마는 어떤 사람이야?

by 예다고

새벽을 깨우는 소리


차카차카차카차카착

차카차카차카차카착


키보드를 두들기는 소리다.


이른 새벽, 가끔 선잠에서 깨어 일어나면 들리는 어머니의 키보드 소리. 나는 그 소리를 들으면 살금살금 걸어가 어머니의 서재를 들여다 보곤 한다. 그러면 여지없이 키보드를 두들기는 어머니의 뒷모습이 푸른 모니터의 빛을 광원으로 삼은 역광의 실루엣으로 내 눈에 전달된다.


차카차카차카착


소리가 들리는 동안 어머니의 실루엣은 모니터를 향한 것이 아니라 키보드를 향해 있다. 타자를 칠 수 있게 된 지 어언 이십여 년이 지났음에도, 어머니는 아직도 모니터가 아닌 자판을 보며 타자를 치는 것이다.

시간은 새벽 다섯 시나 여섯 시 쯤. 그렇게 내 어머니의 하루는 시작된 것이다.



엄마는 어떤 사람이야?



"네게 엄마는 어떤 엄마야?"


가끔 어머니가 내게 묻는 질문이다. 그런 물음을 마주할 때면, 내 머리 안에서는 숱한 이야기들이 맴돌게 된다. 선뜻 어떤 말을 내놓기가 무섭다. 왜냐면 나의 입에서 흘러나올 어떤 말을, 나를 낳아주고 길러주신 어머니가 크고 검은 눈동자를 굴리며 기다리고 있음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그럴 때면 나는 그만 피식 웃음을 짓고 말씀을 드린다.


"엄마는 부엌데기가 아니라서 좋아요. 엄마의 인생을 개척해 나가는 사람이라서, 저도 안심하고 내 앞길만 생각할 수 있으니까 좋아요."


이런 대답을 들은 어머니가 너털웃음을 지으며 말을 되돌려 주신다.


"너도 참. 부엌데기가 뭐니? 전업주부라고 해야지."


그러면 나도 이렇게 되돌려 드리곤 한다.


"엄마. 그야말로 부엌에서 종일 시간을 보내던 옛날 어머니들 이야기를 하는 거죠. 전업주부는 정말 신성한 직업이니까, 비하의 의미는 아니었어요."


이런 대답이 내 어머니에게는 어느 정도의 만족도를 선사할 수 있을까. 전혀 모르겠다. 하지만 이것은 정말 정직하게 드리는 대답, 그 뿐인 것이다.


학창시절 기억 속의 어머니


어릴 때는 어머니가 원망스러웠던 적도 있었다. 그 때도 어머니는 글을 쓰고 공부하느라 키보드를 치셨다. 요즘 아이들처럼 모두가 급식을 먹던 시절이 아니었던 내 학창 시절에 어머니가 준비해 준 내 도시락은 늘 풍성하지는 않았다. 어느 날에는 반찬이 오징어젓갈 하나 뿐인 적도 있었다. 배는 채우게 하고 싶었는지 밥도 꽉꽉, 오징어젓갈도 꽉꽉. 요새 내 식단으로는 세 끼는 해결이 가능할 양일 것이다. 그것은 일정에 바쁜 어머니가 도저히 다른 음식을 챙길 여력이 없었기에 나온 결과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이들이란 그런 어른들의 사정을 알 리가 없다. 철없는 친구들의 놀림 속에서 그들과 마찬가지로 철없던 나도 서러움과 울음을 꾹 참으며 억지로 입에 구겨넣은 기억이 있다.


하지만 그런 어머니의 일정의 연속이 아니었다면, 나는 이만큼 공부하고 성장할 수 없었을 것이다. 어머니는 매일 아침 일찍 도시락을 싸주고 우리를 등교시킨 뒤에, 어머니 본인의 사업체를 운영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생계를 함께 책임지느라 바쁜 일상을 보내고 계셨다. 어림잡아 계산해 보니, 그 때의 어머니는 지금의 나보다 몇 살이나 어렸다. 생각할수록 대단하다.


오늘의 어머니


난 오늘 평소의 일정과 달리, 두 시간쯤 늦게 귀가했다. 직장 동료의 사정이 있어 그 만큼 내가 수업 시간을 보충해 줬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필요를 한껏 채워준 뒤, 무거운 발걸음을 억지로 잡아 끌며 현관을 열고 들어왔다. 신발을 벗는데 어머니의 방에서 음성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영상회의프로그램을 활용한 온라인 글쓰기 수업 중인 어머니의 목소리다. 어머니는 힘껏 소리 높여 글귀를 읽고, 그것을 해석하고, 숨은 뜻과 의미를 전달해 주고 계셨다. 내가 아이들에게 그림을 가르칠 때, 시범을 보이고 이론을 설명하며 이해를 시키고자 애쓰는 장면과 중첩되는 것 같았다.


수업에 방해가 될까 봐 조심스레 방문을 닫고 들어와 앉아 있는데, 문득 어머니의 키보드 소리가 떠올랐다. 그 모니터 저편에는 어머니가 만들어 내는 세상이 있을 것이다. 그것이 계속 수정 보완되면서 어떤 형태를 만들어 내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저편의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그들의 지평을 넓히며 당신의 세계를 전달해 주고 계실 것이다.


기분좋은 소리


"차카차카차카차카착."


나는 요새도 가끔 어머니 앞에서 어머니의 키보드 소리를 흉내내곤 한다. 그 때마다 어머니는 깔깔 웃으신다. 그러면서 내가 짓궂은 장난을 치는 것마냥 눈을 흘겨보기도 하신다. 하지만 나는 앞으로도 계속 이런 장난을 칠 것이다. 그리고 되도록 아주 오래도록 어머니의 키보드 소리를 흉내내는 장난을 치고 싶다. 최대한 길게, 아주 오랫동안.


누가 뭐라 해도 이 키보드 소리가 나를 키워 왔다. 내게는 세상 어느 음악보다 기분 좋은 소리다. 내 어머니는 그렇게 살아 오셨고, 지금도 그렇게 살아 가고 계시며,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가실 것이다. 내게는 살아 있는 인간의 심장이 고동하는 것과 같은 소리다.


차카차카차카차카착


삶이 이렇게 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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