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좋은 선생님이 되고 싶지 않았다.
1. 고민
가르침이란 무엇인가. 나는 원해서 학생을 가르치고 있는가. 미술학원에서 수업을 하다 보면 가끔 밀려드는 이런 의문에 마음이 복잡해지곤 한다. 그러나 시작이 어떻든 이미 나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에 몸을 담고 있다. 나를 선생님으로 만난 아이들은 아무 책임이 없으며, 그들은 마땅히 정당한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기에 난 열심히 의무를 다하고 있다.
그렇게 매일을 보내다 보면 나를 가르치던 선생님들이 생각날 때가 있다. 그분들은 과연 자신의 일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던 걸까. 나를 보며 무슨 생각을 했고 어떤 기분이나 감정을 느꼈을까. 십수 년 이상 이 일을 통해 삶을 이어 온 경험에 미뤄 평가해 보자면 그들은 썩 좋은 선생님들은 아니었다.
2. 배우던 시절의 기억
학생들을 가르치며 알게 된 것은 그들에게 뭘 제대로 배운 것이 적다는 것이다. 형태를 잡아내는 능력부터 조색을 하고 그림을 완성해 가는 순서에 이르기까지 말이다. 대부분 스스로 알아내고 공부하고 부딪쳐가며 배워 왔다. 그것을 아이들에게 설명해 주기 위해 머리를 쥐어짜 내며 처절하게 깨달았다. 그렇게 빈약한 설명으로 매질해 가며 참 편하게 강사 생활을 하신 분들이구나.
그러나 확실히 좋았던 것도 있다. 그 선생님들의 실기능력은 스물 다섯 해가 지난 지금 돌이켜 봐도 정말 훌륭했다는 점이다. 지식의 전달력은 거의 없다시피 한 분들이지만 본인들이 만들어낸 결과물들은 대단히 빼어났다. 난 그 작업물들에 눈을 빼앗기고 그 경지에 따라가고자 무던히 애를 썼다. 그러면서 그리는 능력을 손에 붙여간 것이다. 그래도 역시 충분한 설명이 받쳐주지 않은 노력은, 다소의 비효율을 야기했다는 점은 부정할 수없다.
3. 지금의 나
현재로 눈을 돌리면 그때의 나와 같은 아이들이 보인다. 난 내가 겪은 고생을 이 아이들이 물려받지 않기를 원한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더 자세히 알려주려고 애쓰고, 내가 피땀 흘려 얻은 실기력으로 최선을 다해 시범을 보여준다. 그러다 보니 수업을 마치면 녹초가 되는 게 당연할 지경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한 번씩 과거의 선생님들을 이해하게 되는 순간들이 있다는 점이다. 왜 그들이 갑갑하다는 듯 한숨을 쉬고, 목청을 높이며 화를 냈던 건지 말이다.
가르치는 것은 일방통행이 아니다. 교육하는 이의 전문성에 더해 배우는 이의 의지가 어우러져야 한다. 그러나 간혹 수업태도가 나쁜 학생이 있을 때 수업은 원활히 돌아가지 않는다. 어쩌면 나와 다르지만 같은 문제를 가진 듯하다. 나는 원해서 배우고 있는가 하는.
그럴 때면 마음에 불길이 확 타오르고 혈기가 솟는다. 난 몰라서 얻지 못한 시간들, 이렇게 좋은 기회의 순간들을 가졌으면서 소중함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을 그렇게 느끼는 건 개인의 감정이기에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힌다. 그 아이는 그 사실을 모를 것이기 때문에 엄하게 몇 마디 하곤 다음 스텝으로 넘어간다.
4. 세대 차이
그러나 해가 갈수록 이 불길을 잠재우는 것에 어려움을 느낀다. 학창 시절에 상상도 하지 못했던 언행을 목격한다. 아이들은 확실히 이전에 비해 자기주장이 분명한 점이 좋다. 그러나 인내심이 약하고 배우면서 느끼는 불편함은 전혀 감수하지 않으려 한다. 심지어 자기 시험 일정이 바쁘다며 연필들을 깎아달란 말에는 도저히 참지 못하고, 네 엄마한테 가서 부탁하라는 가시 돋친 말을 뱉고 말았다. 아이도 사과했고 나도 곧 철회했지만 수업 내내 마음이 복잡했다. 세대 차이라는 것이 이런 걸까.
나는 좋은 선생님이 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다. 처음부터 하고 싶어서 하는 일도 아니다. 늘 스스로 선생님이라고 자각하는 순간부터 난 작가로서 끝난다고 생각했다.
5. 다짐
하지만 학생들을 잘 훈육해서 좋은 후배로 만드는 일도 작가의 길을 걸으면서 감내할 하나의 과제로 삼아야겠다. 태어난 시기와 사회시스템이 전혀 다른 아이들을 내가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은 그대로 인정하면서.
숱한 미술계의 옛 선배들이 적잖이 후계와 제자를 길렀음을 떠올린다. 그분들의 고민과 노력을 따라가고 싶은 마음을 가졌으면서, 아직 뭔가 이루지 못했으면서 굳이 업을 구분 짓고 거리를 두려던 것이 쑥스럽다. 소처럼 묵묵히 걸어야지. 길의 끝이 보일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