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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분당주민 Feb 21. 2024

케인스가 90년대 기억을 소환하다

경제학과 선배와 131번 버스에서 한 대화의 기억

난 대학시절 내내 생각이 없었다.

공부는 안했다. 그래서 무식했다.


술을 마시고 잡담하고 당구를 치는 것 외 딱히 할 것 없던 시기에

유일하게 배웠던 것은 선배들을 따라 다니며 미군들이 저지른 악행에 대해 놀라고,

세계화 지배적인 이념 하에 농가들을 지키기 위해 농민들과 거리를 뛰어다니고

통일, 학원 자유화, 한국 현대사에 대한 다른 관점의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를 읽고

토론하는 것이 전부였다.

몸이 움직이는 대로 살았지 머리에 뭘 넣어야 할지 고민하먀 살아가는 삶이었다.

(그렇다고 의미없지는 않았지만) 


어느날 뭐라도 머리에 든 사람을 만난 건 버스 안이었다.

서울 귀퉁이 집 앞에서 버스를 타면 한번에 학교가 있는 신촌까지 갔다.

거의 종점과 종점이라는 먼 거리였지만 워크맨에 의존하여 학교가는 길이

그렇게 힘들거나 지루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아무 생각없이 수업시간에 맞춰 버스를 탔고

버스 안에서 경제학과를 다니는 선배를 만났다.

거의 종점에서 타는거라 자리가 많아 선배와 나는 같이 앉아서 학교로 향했다.

정말 사소한 일상의 대화를 하고 있었는데

라디오 진행자가 WTO, 세계화에 대한 정부의 입장을 찬양하는 이야기를

무심코 듣고 있었는데

경제학과 선배가 왜 정부의 정책이 옳은 선택인지 경제학 관점에서 설명하기 시작했다.

무슨 말인지도 잘 몰랐지만 학교까지 가는 40여분의 시간을 보냈다.

그때 데모나 하고 다니던 나에게는 정부정책의 옳바름과 반대하는 사람들의 입장을 조목 조목 반박하며 

설명하는 선배가 그리 탐탐치는 않았던 것 같다.

그는 대학생이 가져야 할 열정도 없는 시대정신도 없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왜 긴 시간이 지났음에도 이런 생각이 떠올랐을까?


첫 번째는 그때 내가 정말 아는 것없이 없다는 생각에 놀랐던 것 같다. 

선배의 이야기를 시대정신 관점에서 계속 부정했을 뿐 

딱히 선배의 이야기를 반박한 논리가 나에게는 하나도 없었다.


그 시점은 미국의 민주당 집권임에도 신자유주의 추종자들이 새로운 방안을 추진하고 있었고

한국에서는 신한국당의 대통령에게 기억되는건 '세계화'와 'IMF'다.



두 나라의 상관관계에 대한 설명이었다.

국제적 자유무역이 무역국들과 세계의 이익에 가장 잘 부합된다는 것에 동조한 것이다.

미국은 이념이 사라진 시대에 미국의 패권을 자유무역이라는 비전을 통해 실현하고자

했던 것 같다.

불공정한 장벽인 관세 외 환경보호, 특허기간까지 검토대상이 되었다.

미국은 새로운 무역협정을 작성하고 WTO라는 국제무역에 대한

새로운 규제기관을 마련하여 각국 정부가 불공정한 장벽을 치지 못하도록 했다.

이런 클린턴의 세계화 계획에 경제학자들이 압도적 지지를 보내고

우리 정부도 동조하게 된 것 같다.

관세를 철폐하면 세계 최대 규모의 감세 효과를 낳고 신규 무역을 촉진할 것으로 

기대했던 것 같다.

농업에서 오는 피해보다 더 큰 경제적 효과가 있을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두 번째, 지금 이 시간 읽고 있는 존 메이드 케인스 (돈, 민주주의, 그리고 케인스의 삶) 

724 페이지 즈음의 이야기를 보고 있으니 딱 그때가 생각났다.

중국까지 WTO 가입하면서 세계화, 자유무역, WTO 등 신자유주의에 반대는

최신 경제학과 이념적으로 발을 맞추지 못하는 취급을 받았을 것이다.



맞어. 그 선배는 이 이야기를 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맞는 이야기를 했었다. 나는 설득되었는데 표면적으로는 내색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렀다.

아주 오랜시간이. 

졸업을 했고 각자 대기업에 다니며 결혼을 했고

가장이 되고 이제 은퇴 후에 삶에 대한 고민을 하는 나이가 되었다.


세상을 어떻게 변했을까?

그 선배 말대로 세대 최대 규모의 감세 효과가 신규무역을 촉진해서

농민들의 피해보다 더 큰 경제적 효과로 모두가 잘사는 세상이 되었을까?


일부는 맞았는데

내 관점에서 대부분을 틀렸을 것이다.

평균적인 우리의 생활수준을 향상됐지만

엄청난 불평등과 신자유주의라는 명목하에 자본주의의의 남용을 경험하게 되었다.

부유층에 대한 새로운 혜택은 낙수효과라는 개념하에 자행되었고

빈곤층과 중산층을 위한 지원 시스템은 미비했다.


케인스는 20세기 가장 중대한 문제들은 불평등을 완화할 때 

가장 잘 해결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의 일반이론은 다른 무엇보다 불평등과 사회적 진보에 관한 책이었다.)

그의 이론에서는 기업 및 경제의 성장이 특출난 천재나 부유층의 막대한 재산이 아니라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는 일반대중의 구매력으로 주도될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더더욱 빈곤층과 중산층을 위한 지원 시스템이 마련되어야 한다.



앞으로도 세계화는 진행될 것이고 

지금 이대로라면 경젝적 불평등이 계속 심화될 것이고

심화된 결과는 기업의 수익과 주가는 끌어오리는 반면 

대부분의 우리 생활수준은 하향 곡선을 그리도록 압력할 것이다.



30여년 전 선배 말을 맞았던 것 같은데 지금은 아닌 것 같아.


선배 잘 살고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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