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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분당주민 Jul 14. 2024

불안(anxiety)의 시대

1편 안보고 본 인사이드아웃 2

극장에 자주 가지 않게 된 계기는 많지만 

어느 날부터 영화관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끼기 위해서는 

총알이 1억개가 날라다니고 차는 한 200대 부서지고 사람은 1,000명 정도 죽어야 하고 

소리는 가슴을 때릴 정도로 커야 극장에서 영화를 봤다고 느끼게 되었다.

인사이드아웃 2는 그럴 영화가 아니었다.

그래서 와이프에게 끌려가듯 그리고 오랜만에 코엑스나 가자는 느낌으로 보게 되었다.

역시나 약간은 지루하고 생각은 많아지고 

극장에서 오랜만에 본 영화인데도 비용의 효용성은 느낄 수 없었다.


불안의 시대

지난 140년은 전세계가 폭발적 부의 성장을 이룬 시기다. 

기술의 발전속도는 인구증가를 초월했고 

지난 140여년의 시간은 인류가 지구에 정착한 시기 중 가장 풍요롭고

가장 건강한 시대를 살게 해 준 것이 분명하다.

반대로

우리는 인규의 역사상 가장 불안한 시대에 살고 있다는 생각도 한다.

이 정도로 불안한 시대를 산 인류가 있을까?

풍요의 시대에 살고 있지만 우리의 불안은 우리의 다양한 다른 감정을 억압한다.

SNS상의 타인의 행복과 과시를 보며 우리의 행복 기준이 어디 있는지 헤매곤 한다.

남들과 비교하며 자신을 몰아붙이고

영화 대사처럼 나는 부족해 (I am not good enough)의 마음에 조정당한다.


언제 밥 한번 먹자. 우리가 마음에도 없는 말을 자주 꺼내는 문구다.

지금 세상이 풍요롭기는 한데, 

불과 우리 아버지 세대(전쟁 이후)에서는 자식을 굶길까 

부모부양을 어떻게 하지의 걱정을 하는 시대에서 언제 밥 한번 먹자는 이 시대를 투영한 것이 아닐까 싶다.

불안은 

한국경제 성장의 동력이 된 것은 사실이지만 불안을 동력삼아 스스로를 채찍질한 것에 대한 결과는 참혹하다.


지각사회

불안감은 결국 우리 삶의 의사결정 과정을 왜곡한다.

몇일 전 신문에서 41살의 차장이 청첩장을 돌리고 50세의 부장이 육아휴직을 한다는 기사를 보았다.

이런 현상에서 저출생은 필연적인 것이다.

집값, 물가같은 경제적 관점에서 보는 것도 있겠지만 

내 주변 그리고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몇 세대가 걱정하지 않을 부의 대물림이 있지 않는 상황이라면

불안의 대물림을 끊겠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월급을 모으고 집을 장만하고 노후를 준비하는 것이 

애초부터 불가능한 상황으로 인식되어 버렸다. 

이런 상황에서 출발은 가능하겠지만 결혼과 아이라는 또 다른 불안감을 언제 끝날지 모를 것이다.

우리 사회는 이런 걱정과 불안으로 늦은 결혼, 자녀없는 노후를 보내거나 

늦은 나이에 1명 정도 출산하는 것도 리스크라 생각하며 고민하며 사회는 점점 지각사회로 향해 간다.


답은 있을까?

정부나 지금 이 사회는 불안의 보호망을 제공해 주는 것은 불가하다.

정부가 사회적 문제로 SNS에서 보여지는 왜곡된 현실을 바로 잡겠다고 

어느날 SNS를 검열하고 통제할 수 없다.

행복했던 시기는 모두가 평등한 수준이었을 때 였다고 한다.

미국이 유럽에 앞서 대국이 될 수 있었던 것도 평등에서 기인했다고 본다.

사회계급도 미비했고 누구나 평등하고 공평하게 출발이 가능했던 시기가 있었으니까.

그래서 이민자가 성공하고 미국 시민으로의 자긍심을 가지게 된 인물이 많다.

그리고 지금 미국은 개인의 성공, 부를 개인이 더 많이 성취하게 된 구조에서 경제적 관점에서

평등하고 복지국가로의 전환을 한 유럽을 또 앞지르고 있다.

지금 미국의 발전, 미국의 부 구조 상 없는 사람들의 불안은 앞으로 더 커질 것이다.

미국의 구조는 곧 전세계의 구조로 확산될 것이 뻔하니

이 시점에서 구조적인 정부의 불안 보호망을 기대하는 것은 불가하다.

어떻게 할 수가 없는데

지금 이 시점에서 개인의 마음을 다스리고 지금 있는 것에 행복함을 그리고 

열심히 하면 된다는 무책임하고 무의미한 이야기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조금이라도 기대하는건

정부가 그리고 우리 사회가 조금은 더디고 늦더라도 기회의 공정, 기회의 평등 그리고 같은 출발점에서

그 누구도 소외없는 교육부터 잡아 나간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속도가 아닌 국민의 불안감을 치유하는 것 그리고 그것의 시작은 공정한 기회의 평등에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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