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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에 대한 편견

by 김성자예쁜

수원에서 정조 임금을 만난 역사 기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다. 초가을 바람이 살짝 서늘해진 저녁쯤, 마을버스를 기다리며 지인과 이야기를 나누던 때다. 가방을 메고 정류장으로 다가오는 한 젊은이가 눈에 들어온다. 단정한 차림, 마른 체형, 스쳐보면 너무나 평범한 모습이다. 그런데 가까이 다가오자, 그의 양쪽 셔츠 소매가 텅 빈 채 바람에 나부끼는 것이 보인다.


시선이 멈춰진다. 괜히 오래 바라보는 것이 실례일까 싶어 얼른 눈길을 돌렸다. 지인이 낮게 말한다. “어머, 양쪽 팔이 다 없네. 얼마나 불편할까.” 그 말 뒤로 잠시 마음이 먹먹해진다. 버스카드는 어떻게 찍지, 혼자 생활하는 걸까 힘들지는 않을까, 아주 잠깐이지만 많은 생각이 내 마음을 다녀간다. 도움 안 되는 걱정들이 자꾸만 머리를 흔들게 한다.


곧 버스가 도착했고, 젊은이는 가장 먼저 가볍게 올라탐과 동시에 “삑─ 환승입니다.” 경쾌한 안내음이 울린다. 나도 모르게 휴-우 마음이 놓인다. 불편함을 먼저 떠올렸던 내 시선이 공연한 수선이었나보다. ‘너나 잘해’ 하는 것 같은 생각이다.


그 청년에게는 이미 삶을 살아가는 자기만의 방식과 리듬이 있다는 걸 알았다. 부족함이 아니라, 다른 방식의 완성이다. 버스가 몇 정거장 지나 멈췄을 때, 그가 내려 어깨를 곧게 펴고 경쾌한 걸음으로 부지런히 걸어가는 모습이 보인다. 오늘따라 바람마저 고요하지 못해 빈 소매가 펄럭이는 모습이 머릿속에 안개처럼 자욱하게 깔려 걷히지 않는다.


불쌍함이 아닌, 묵묵한 존엄함으로 사람들은 흔히 ‘장애인’과 ‘비장애인’으로 나눈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모두 언젠가 불편해질 미래의 존재다. 세월이 흐르면 조금씩 느려지고 약해진다. 눈은 침침해지고, 손끝의 감각은 둔해지고, 계단 몇 칸에도 숨이 차오르는 날이 올 것이다. 그때는 우리도 그 청년과 다름없는 행동이 편하지 못한 사람이 된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그냥 씁쓸함에 침묵이다.


‘아, 나 역시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해지는 사람이구나.’ 평생 당연하다는 듯 사용하는 몸의 기능이 사실은 기적이구나. 감사할 줄 모르고 살아왔음을 뒤늦게 알아차릴 수 있는 나도 미래의 장애인으로 가는 중이려니.

예전 장애인 복지 수업 시간이 떠 오른다. 교수님 큰아들이 지적 장애다. 엄마로서 아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일을 찾다가 사회복지 박사학위까지 공부한 분이다. 수업 시간에 늘 하셨던 말씀이 있다. ‘몸도 성치 않은 자식을 데리고 뭣 하러 나왔냐?’는 주위의 차가운 시선과 편견이 가장 힘들었다는 이야기다. 도와주지 못하는 건 괜찮으니 차라리 불쌍한 시선으로 바라보지 말라는 말이 아팠다. 오죽했으면 그들이 그런 말을 했을까. 그런데도 그 아들을 당당히 대학 강단까지 서게 만든 장본인이 교수님이다. 말 없는 노력이 눈앞에 그려지며 공감하게 된 아주 밝았던 모습이 새삼 그립다. 그때 들었던 말이 ‘누구나 미래의 장애인’이 된다는 말이다. 충분히 공감되었던 그 수업을 다시 한번 듣고 싶다.


말씀처럼 도움은 때때로 상대의 자존심을 건드리기도 한다. 정말 필요한 것은 동정이 아니라 존중이다. 불쌍해서가 아니라, ‘당신도 나와 같은 한 사람입니다’라는 마음으로 내미는 손길. 그것이 진짜 인간다움 아닐까. 창밖에는 노을이 붉게 번지고, 가을바람이 나뭇잎 사이를 지나간다. 내 시선이 상대에게 아픔이 되지 않았기를 바랄 뿐이다.


문득, 팔다리가 없는 모습으로 태어났지만 풍성한 삶을 사는 닉 부이치치(Nick Vujicic)가 떠오른다. 누구보다 행복하고 활기찬 사람. 그는 물에 몸을 맡기며 수영하고,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전 세계를 다니며 강연한다. 우리나라에도 초대받아 건강한 젊은이들보다 더 건강한 메시지를 주던 그가 한 말이 지금도 귓전에 맴돈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이 생명에 감사하며, 내가 가진 것으로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그는 결핍 때문에 포기한 것이 아니라, 결핍을 끌어안고 자신만의 삶을 활짝 피워냈다. 무엇이 부족한지가 아니라,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느냐가 사람의 운명를 결정한다는 사실을 몸소 보여준 것이다.


완벽한 사람은 그 어디에도 없다. 영원한 것도 없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할 때, 우리는 모두 조금 더 따뜻해진다. 언젠가 나 역시 불편함을 안고 살아갈 날이 오겠지만, 그날이 두렵지 않도록 그 청년처럼 또 닉처럼 내 방식대로 당당하게 살아가는 방법을 익히며 살고 싶다.


우리는 언젠가 불편해질 ‘미래의 장애인’이다. 그때 우왕좌왕하지 않도록 지금, 이 순간 내 곁의 누군가에게 보내는 시선이 상처가 아닌 응원, 동정이 아닌 존중, 거리감이 아닌 따뜻한 연결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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