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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리 Jul 27. 2024

은퇴 후, 헤매는 중

부라보 마이 라이프

37년이나 일했으면 되었지, 무엇을 더.. ?

그런 마음이었다. 그렇게 정년퇴직을 하고서는 느~무 바빴다. 2년 전, 퇴직은 여름에 하는데, 그 해가 시작되는 첫날부터 들떴다. '나 올해 끝이야.' 마지막 출근을 했던 6월 말일이 지나고 7월 1일. 마침내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 그 첫날, 내 기분은 날개는 없더라도 마음으로는 하늘로 날아갈 지경이었다. 사무실이 아닌 어딘가로 가야겠는데, 지방으로 출장 간다는 지인의 여정에 동행하였다. 1박 2일의 강의 일정인데 내가 함께 할 수 있는 것은 오고 가는 기차를 함께 타는 일일 뿐. 그래도 일단 따라나섰다. 이제까지의 일터가 아닌 내 맘대로 가버려도 되는 자유를 만끽하고 싶었으니까. 열차 목적지에 도착한 후 나는 혼자 가까운 숙소에서 1박 2일을 뒹굴었다. 그때 내 마음은 자유, 자유, 자유~ 


은퇴 후 첫날을 그렇게 보낸 나는 그 후로도 열심히 잘 지냈다. 

은퇴자, 즉 퇴직한 자가 아니고서는 할 수 없었던 일을 하나씩 해 나갔다. 

먼저 자식을 혼인시켰다. 준비야 지들이 다 하는 거고, 나야 돈만 준비하면 되는 거였지만, 해외에서 치르는 혼인식이라 나름 힘들었다. 


미국에 장기 체류도 해보았다. 6년마다 안식년을 이유로 해외로 나가 장기 체류하는 사람들을 가까이서 보아왔던 터라 나도 '해 외 장 기 체 류'가 그렇게 해보고 싶었다. 기러기인지 갈매기인지.. 부부가 떨어져 아이들을 데리고 해외살이 하는 풍습이 한국 사회를 뒤흔들던 때도 슬쩍 마음은 동했지만직장인이자 가장이었던 내 형편으로는 꿈도 꿀 수 없었다. 딸 결혼식 치르러 미국 가는 일정을 의논하던 중 '엄마, 이제는 퇴직했으니 여기 오래 있다가 가' 하는 그 한 마디에 냉큼 길~게 비행기표를 끊어버렸다. 딸의 결혼식을 전후하여 총 5개월을 미국 텍사스 작은 도시 변두리 주택가에서 살아보았다. 자동차 없이 친구도 없이.


서울과 같은 밀도 있는 도시 주거환경도 아니고, 오직 사돈댁 배려에 의지하여 한인 교회 쫓아다닌 것 외에는 나의 주체적인 바깥 생활이 거의 불가능했던 곳. 답답했다. 덕분에 딸네 집에서 책도 많이 읽고, 글도 쓰고, 애들 살림 도우미까지 쫀쫀하게 해 보았지만 '아무것도 안 하고 무위도식하는 것 자체가 꿈' 이었던 지친 직장인의 '해외장기체류'의 일은 그 한 번으로 족했다. 


가족을 위한 의무 실행, 이것도 잘 해왔다. 

올해 구십이 되신 친정엄마가 계신다. 혼인하지 않고 같이 늙어가는 오빠와 함께 사신다.

외부인을 들일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그 2인 노인 가정을 정기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아예 자리를 잡고 말았다. 가족 간 지원!!!

반찬 배달 서비스도 받고 언니가 드나들며 청소도 해드리지만, 엄마 형편이 조리도 못하는 지경에 들어서니 경험 있는 주부의 손길이 더 많이 필요해졌다. 이제 직장에 매인 몸도 아닌 나는 일주일에 이틀을 친정엄마댁 가사 도우미로 채우고 있다. 필요한 것 사다 드리고, 냉장고 점검도 하고, 오빠와 이런저런 의논도 하면서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내가 전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은퇴자의 이 여유를 감사한 마음으로 생각하고는 있는데... 퇴직 후 2년 사이 내 무릎은 더 약해지고, 눈은 형편없이 불편해졌고 아야야, 한숨 소리는 많아지니 슬슬 꽤가 나기 시작했다. 나도 이렇게 노인이 되어가는데, 저 노인들 뒷바라지를 언제까지 해야 하는 거지? 하는 생각.


배우고 싶었던 거, 해보기. 틈틈히 도전해 보았다.

요거는 정말 신났었다. 서울 50+의 각종 프로그램을 열심히 쫓아다녔다. 4주짜리 꽃꽂이 강좌도 들어보고, 스마트하게 휴대폰 사용하는 법도 배웠다. 상속과 증여에 대한 경제 강좌는 물론 글쓰기 교실에도 다녀보았다. 어느 때는 신청했던 강좌가 취소된 줄 모르고 갔다가 헛걸음하는 나를 안타까워하며 다가와준 상담사님 덕분에 전문적인 진로상담까지 받기도 했다. 그런데.. 그렇게 배움에 목말라하며 따라다녔지만  깊이와 연속성을 갖고 발전시킬 무엇인가를 아직도 찾지 못한 느낌이다.

 

소원하던 피아노 배우기도 지난해 여름부터 레슨을 받기 시작했는데, 바이엘 과정을 다 마친 요즘, 체르니로 옮겨 가려다가 주춤하고 있다. 바로 글자크기의 문제. 바이엘 책에서는 콩알만 하던 음표가 체르니 책에서는 깨알만 해졌다. 음표가 '시'에 걸린 것인지 '도'에 걸린 것인지 애매하고 그 위에 적힌 손가락 번호는 내 코가 악보에 닿을 만큼 갖다 대어야 겨우 구별할 수 있는 지경. 예상하지 못했던 장애 상황이다. 3년 전부터 왼쪽 눈에 발병한 망막정맥폐쇄의 어려움에 더하여 오른 눈은 백내장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독서용 도서는 이미 전자책으로 옮겨간 지 오래되었기에 독서 생활은 안정을 찾았는데...  피아노 배우는 데는 전자책이 소용없다. 좌절의 지경이다.  


자격증 도전하기. 교회에서 꽃꽂이 봉사를 몇 년간 하면서 꿈꾸었던 화훼장식기능사 시험은 필기시험만 두 번 보고 날려버렸다. 한번 필기시험을 통과하면 2년 내 실기시험을 치러야 하는데, 직장 다닐 때 그냥 저냥 봐두었던 필기시험이었지만, 당시는 실기를 준비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었다. 퇴직 후 비로소 시간이 생기고 또 부담되었던 실기 강습료도 국민내일배움카드인가.. 그런 것으로 도움을 받으려 했지만, 아쉽게도 요즘 내 마음은 꽃꽂이로부터 조금 멀어져 있다. 바로 쓰레기 발생 문제. 꽃 만지는 일 자체는 좋지만, 꽃꽂이에서 발생되는 쓰레기들은 플라워 폼이나 비닐포장지, 종이를 입힌 철사 등등 재활용되지 않는 물품이 대부분이다. 직업 삼아 치열하게 살아갈 생각도 없는 내가 굳이 이런 배움을 해야 하나.. 하는 생각. 나무, 길에서 만나는 꽃과 풀.. 그런 것으로도 충분하다.. 싶다. 


대안으로 요리를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불쑥 솟아 한 동안 고민에 빠지기도 했었다. 

다니는 교회에서 주중에 하는 주방봉사 활동에 참여하고 보니 이게 참 보람있게 느껴졌다. 그 식사 기회를 활용하시는 분들은 거의 노인들인데, 주중 하루 노구를 이끌고 교회에 나와 얘배에 참석하는 일도 의미가 있지만, 조용하고 안전한 환경에서 또래의 지인들과 음식으로 교류하는 사회활동이 엄청 소중한 것임을 확인한 것. 절대 빈곤층도 아닌 그들에게 그런 시간이 소중한 것은 핵가족화, 1인가구의 증가 등으로 한 끼 식사의 소중함이 더욱 잘 보였다. 나이는 먹었으나 주부로서의 실력이 없는 내가 음식 만드는 것을 체계 있게 배우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한식조리기능사를 생각해보았다. 요리를 배우되 기왕이면 자격증 취득을 목표로. 역시 학원에 가서 상담을 받아보니 필기시험과 실기시험을 거쳐야 했다. 실기는 학원 수강도 받고 일상생활에서 연습도 하면 될 것 같았고, 필기시험이야... 정말 아무것도 아니지.. 하는 마음으로 서점에서 수험서를 찾아보았다. 그런데.. 아.... 

글자가 안보였다. 피아노에 이어 두 번째 좌절. 무슨 무슨 기능사.. 되려면 필기시험을 반드시 거쳐야 하는데, 친절한 전자책이 있지 않고서야... 내 눈의 이런 형편으로 바로 포기.  

이런 도전의 흥분과 곧 이어 생기는 좌절의 마음. 내 마음이 어지러웠다. 그런데 이렇게 글로 적어보니 내가 맘먹으면 편안해절 생각 몇 가지는 정리되는 느낌이다.  


1. 뭐 배운다고, 그것도 자격증 따겠다고 나대지 않는다. 

나도 힘들지만, 좌절을 겪은 나의 한숨을 주변 사람들이 듣느라 피곤해지는 일도 막을 수 있다.

배우는 것으로부터 스트레스 없게,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말인) 설렁설렁 할 수 있는 정도로 고려한다. 


2. 책 읽기, 전자책으로나마 즐길 수 있음을 감사하며 조금 더 덤벼든다. 

독서의 힘. 취미가 아니라 일처럼 열심히 매진하여 삶을 바꾼 사람들의 이야기, 나는 믿는다. 특히 지적 욕구가 많은 내게 독서는 상식과 교양을 늘여줄 것이지만, 마침내 내 인생이 바뀔 것이라고 믿는다.  

독서는 내가 꾸준히 잘 오던 일. 이 일에 좀 더 시간을 내어보는 것이 학원가를 배회하는 것보다 보다 생산적일 수도 있다고 믿고 정진하기로. 


3. 글쓰기, 좀 열심히 해본다. 

브런치 스토리 작가가 되었으면서도 그냥 저냥 .. 게를리 하고 있다. 글쓰기는 돈도 들지 않고 시간도 내 맘대로 정해서 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글솜씨의 부끄러움을 감내해야 하지만, 글쓰기를 운동처럼 하라.. 고 하지 않던가. 운동하는 사람들의 수준은 천차만별이다. 내가 꼭 잘 쓰는 사람이 아니어도 스스로 용납할 수 있다는 말이다. 전자적으로 만들어진 글은 언제라도 쉽게 없애버릴 수 있는 장점까지 있으니, 용기를 내어 더 좀 써보자. 

  

4. 가족 돌보기. 힘들 땐 태업도 하겠다고 결심한다.  

나 아니면 어쩔 거냐고, 미리 생색내며 걱정하지 말고, 영 싫은 때는 내 멋대로 태업한다. 

그런다고 가족이 파탄 나는 것도 아니고, 그런 지경이 되면 외부 인력 영입을 자연스럽게 논할 수도 있을 것이다. 혹 원만치 못하여 가족 간 좋은 관계가 조금 무너지더라도 남은 시간에 다시 회복될 것이다. 힘들다면 좀 편하게 생각하고 대처해 보자.


이렇게. 결심. 

그런데 이렇게 잘 정리해 놓고도 내일 아침이 되면 '내 인생 뭔가 채워야하지 않나, 뭐를 배워볼까, 뭐를 찾아볼까..' 하며 고민하지는 않을까.? 은퇴 후 세상에 나와보니 분주하기는 한데 뭔가 쌓이는 것이 없는 상황이 불안하다. 그래서 어질 어질 아직도 헤매고 있는 중인가 보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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