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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리 Aug 02. 2024

은퇴 후, 자격증 꼭 필요할까

부라보 마이 라이프

지난 며칠간, 나를 좌절시키고, 고민에 빠뜨렸던 문제들의 원인을 좀 더 생각해 보았다.

무엇인가 남에게 보일 어떤 성과를 의식하면서 겪게 되는 좌절감이 아니었을까.  

특히 자격증. 노년에, 인생 후반기에, 뭔가 체계 있는 삶을 계획하는데 꼭 필요한 듯하지만,

어쩌면 내게는 그다지 필요하지 않을 그것들..  


사실 나, 관광통역안내원 자격증 있다. 40살도 되기 전 '은퇴하면 뭐 하지' 생각하면서 설렁설렁 독학해서 얻어낸 자격증이다. 설렁설렁..이라고 표현했지만, 관광법, 한국지리.. 그런 과목 시험서를 들고 늦은 저녁, 심지어 주말까지 작은 방구석에 틀어박혀 애써 공부했었다. 면접시험과 소양 교육받을 때는 휴가까지 내가며 만들어낸 자격증으로 운전면허증 취득 이후 최초의 그 자격증이 대학원 졸업장만큼이나 기뻤었다. 그런데..

현재 그 자격증 1도 사용하고 있지 않다. 내 직업에 그 자격증은 전혀 필요하지 않았고 지금 나의 삶에도 전혀 필요하지 않다.


1980년대, 아시안게임과 올림픽대회가 우리나라에서 개최되는 경험을 한 나의 세대는 저런 자격증이 그런 국제 행사 때 요긴하게 쓰일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사실 그때 온 나라가 영어 같은 외국어 소통 능력이 있는 봉사자를 매우 필요로 하였고, 외국어 교사나 해외지사 근무 경력자들, 또는 외국계 직장 유경험자 등 비록 어쭙잖은 실력이어도 귀하게 여겨지던 시대였던지라 남들 못해보는 '별난' 경험을 할 수 있는 패스포트 같은 것이 외국어 능력이었다. 나는 재직 중에도 '이다음에 퇴직하면 뭐 하나..' 그런 생각을 많이 했던 사람인데, 결코 짧다고 할 수 없는 가방끈을 갖었고, 직장에서 장기간 일한 경력이 있다고 해도 내 경력은 은퇴 즉시 아무 쓸모가 없어질 것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미용이나 재봉.. 그런 기술 능력을 갖고 싶었고 그 대안으로 독학으로 도전이 가능한 것이 영어 통역안내원 자격증이었던 것. 은퇴 후에는... 시간 많겠다, 무슨 국제대회가 열리면 자원봉사해야지... 그런 마음이었던 것.


지금껏 한 번도 그 자격증을 쓰지않았지만, 앞으로도 나의 저 자격증이 어디 요긴하게 쓰일까.. 싶다. 1980년대의 대한민국과 지금의 우리나라는 많이 달라졌다. 그저 전쟁 때 민간인의 물품과 지원을 수집하듯 그런 식으로 인력을 충원하지는 않는다. 자격증만 있다고 무슨 기회를 우선적으로 가질 수 있는 그런 헐렁한 사회가 아닌 것이다. 내가 어딘가에서 영어로 봉사를 하려면 무엇보다도 나의 실력이 중요할 것이다. 영어회화 좀 한다는 마음으로 저런 자격증은 만들어 놓았지만, 언어가 유창하지는 않다는 나의 자기 평가가 있다. 그러니..


예전에 은퇴 후 진짜 하고 싶은 일이라고 떠들고 다닌 것은 바로 고급 호텔에 있는 꽃집에서 판매원으로 일하는 거였다. 소공동 지하를 걷다가 호텔 지하에 연결된 꽃집을 지나게 되었는데 그 꽃집이 어찌나 그림 같이 보이던지. 아름다운 꽃들이 양동이마다 가득가득 들어있는 것도 그림 같은데, 바구니로 화환으로 그리고 사방화로(- 어디 객실에 넣을 건가) 꾸며진 꽃들이 눈에 띄는데 손님은 하나도 없었다. 그냥 그 자체가 꽃으로 꾸며진 멋진 공간.  '저런 곳에서 일한다면 멋지겠는걸' 그런 마음이었던 듯. 아무튼 나는 꽃집 경영 같은 것은 1도 생각하지 않으니까, 직장생활에 지친 상태였으므로 정식직원도 아니고, 그냥 아르바이트생으로 일하고 싶다.. 는 생각이었다. 아르바이트생으로 나이 든 나를 채용해 달라고 하려면 우선 자격증은 있어야지.. 하는 생각으로 화훼장식기능사 자격증을 생각하였다.  


화훼장식기능사, 필기시험을 2번이나 치르고 실기시험장에는 가보지도 못했다. 첫 번째 필기시험은 '화훼장식기능사'에 대한 이런저런 조사를 마치고 경험 삼아 도전. 쉽게 통과하였지만 실시시험은 독학으로 될 수 없었다. 어영부영 기한을 넘긴 어느 날, 곧 퇴직을 할 거므로, 다시 필기시험을  봐두자.. 하는 마음으로 응시. 이렇게 두 번째 필기시험도 통과. 실기시험을 봐야 하는데, 퇴직 후 삶은 생각보다 바빴다. 딸아이 결혼에 집수리.. 등 인생에 한번 겪을 일들을 처리하고 정신을 차려보니 실기시험 기한을 3개월 앞둔 시점이었다. 부랴부랴 학원엘 갔는데...


이거 원.. 설렁설렁으로는 도저히 어려운, 열심히 해도 될까 말까 한 시험임을 알게 되었다. 학원을 다녔다고 합격을 보장할 수 없고, 혼자 엄청 열심히 연습해도 합격을 할까.. 말까.. 란다. 그런데 내가 더욱 주저되었던 것은, 그 많은 세월이 흐르는 동안 꽃에 대한, 특히 절화에 대한 내 마음이 무척 많이 변했다는 점이었다. 절화들은 그 소임을 다하고 처리될 때는 엄청난 쓰레기를 유발한다는 점이 그에 대한 사랑을 점차 감소시켰다. 꽃은 곧잘 시들지만 부패하기도 잘한다. 물을 오염시키고, 쓰레기로 버리려도 양이 만만치 않다. 게다가 꽃다발을 해체할 때 그 많은 비닐 포장지와 아낌없이 사용한 종이 싸인 철사줄. 그리고 덕지덕지 테이프 자국까지. 바구니는 더 쁘다. 덩어리 플라워폼은 기본이고, 물 새지 말라고 폼과 바구니를 눈 가리기식으로 덮어 씌운 방수 비닐뭉터기, 그리고 이런저런 플라스틱 장식품들. 꽃이라는 것이 아니러니 하게도 겉으로 그리 이쁜데 뒤에 감춰진 엄청난 골치거리들. 그걸 의식하면서 꽃에 대하여 불편하게 생각하기 시작.

나는 음악을 전공한 딸아이 덕분에 연주회 때마다 꽃다발 뒤처리를 참으로 많이 했었다. 그때마다 속으로 '옳지 않아, 옳지 않아..'  하며 절화가 주는 예쁨보다 그 가벼움, 경박함부담스럽게 느껴지는 사람이 되어갔다.

이제 화훼장식기능사 시험도 안녕이다. 몇 년 뒤에 다시 꽃이 좋아. 꽃을 만지며 살고 싶어.. 그러며 달려들고픈 마음이 생길지는 모르겠으나, 그렇다 하더라도 그때 자격증이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요 며칠, 조리기능 익혀보겠다고, 그것도 자격증을 목표로 해 보겠다고 나섰다가 그 일도 주춤하고 있다.

이 자격증도 필기와 실기 시험을 거쳐야 하는데, 실기를 학원에서 잘 배운다고 쉽게 합격할 수 있는 것이 아닌 것임은 내 요리 실력으로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그 필기.. 시험이라는 단계도 이젠 좀 두렵게 느껴진다. 수험서, 종이책일터인데, 눈을 부릅뜨고, 확대경까지 갖다 대며 공부를 하다가는 내 눈이 돌아갈지도 모른다. ㅎㅎ 현재의 내 눈으로는 종이로 된 책을 보는 일이 무척이나 힘들기 때문이다. 폭우가 간헐적으로 쏟아지던 그 더운 날, 학원 가서 상담하고, 교보문고에 가서 수험서까지 살펴본 후 피곤한 다리를 쉬게 할 겸 카페에 앉아 생각을 정리해 보았다. 오늘의 수고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도전하지 말아야겠다는 결심이 나를 허탈하게 하는 것은, 꼭 필요한 것도 아닌 것을 넘들 말 듣고 나섰다가 스스로 포기하는 자기 정리의 능력의 결과이므로 개의치 말아야 한다는 쪽으로 말이다.


나는 왜 뭔가를 배우려 할 때 굳이 국가자격증까지 의식할까?

열심히 하겠다는 마음? 각오를 위해서?

아니면  은퇴 후 자격증 같은 걸 준비하면 좋을 것이라는 '일반론'에 경도되었기 때문일까.


나는 퇴직 직후 교회에서 주방 봉사자로 활동하고 있다. 주중 하루는 출근할 때보다도 더 일찍 집을 나서서 뉘엿뉘엿할 때 귀가한다. 또 회비만 내던 환경 NGO에서는 퇴직 후부터는 운영위원으로 꽤나 열심히 활동한다. 또 나의 늙으신 친정어머니 댁을 방문하여 도와드리는 일도 직장인일 때와는 달리 방문 횟수도 늘여 정기적으로 해 오고 있다. 이 모든 일이 무보수다. 바로 봉사인 것이다. 내 어머니를 찾는 일을 봉사냐.. 하겠지만, 내가 가지 않으면 친정집에는 즉시 외부인력이 투입되어야 한다. 그러니 이런 일들이야 말로 사랑을 담은 진정한 봉사활동이다. 그런데 나의 이 활동들에는 자격증이 전혀 필요치 않다. 대신 무거운 책임감과 성실함이 요구된다.  


이제 나는 비로소 나에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올리 씨, 퇴직 후 자격증, 별로 필요하지 않지?

배우고 싶었던 일이 있으면 자격증 따지 않는 그런 경로로 해봐. 괜히 자격증 운운했다가

그 부담감으로 하고 싶었던 것으로부터 저 멀리 도방 가는 상황 만들지 말자고.

자격증은 잊고, 그냥 하고 싶었던 일들, 천천히 하나씩.

시간 쓰고 돈 쓰면서.. 하자 말이야. 하하하...


자격증 생각하지 않는 은퇴 후의 삶, 내겐 그쪽이 훠얼씬 건강하고 행복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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