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건강 클리닉
안녕하셨어요?
아 네, 제가 참여하는 환경 NGO의 여름프로그램이 있어서 거기 다녀왔어요. 그게 여행이지요, 뭐.
더워서 죽을 뻔했어요.
글램핑? 그런 곳이 잠자리로 배정되었어요. 짐가방을 내려놓고 둘러보는데 도저히 잘 곳이 못 돼서 빗자루로 거미줄 정리부터 했어요. 나중엔 엎드려서 바닥을 물휴지로 닦았어요. 땀이 줄줄.
환경 캠프인데 그 나쁜 물휴지를 거의 한 통을 써가며 바닥 흙먼지와 뚝뚝 떨어지는 제 땀을 닦아내는데 썼답니다. 시작부터...
8월 중순 더위엔 어디 가면 안 돼요.
아, 왜 웃으셔요? 삼복더위 동안엔 이런 시원한 곳에 있는 거예요.
캠프 기간 중에 광복절이 있었는데, 광복되던 해 그 여름을 생각해 봤어요.
광복되었다고 이런 더위에 태극기 들고 거리로 뛰어나갈 수 있을까. 왜 있잖아요, 거리로 태극기 들고 뛰쳐나와 만세 부르는 모습이요. 그래도 나갔겠죠? 나가야죠. 아무리 더워도.
아, 청소년 대상 행사인데, 저는 우리 NGO의 임원으로서 간 거예요.
원래 프로그램은 2박 3일이지만, 임원들은 준비한다고 전날부터 가야했다래서 3박 4일이 되었어요.
잘 마치고 돌아왔는데 왜 불편한 마음인지 모르겠어요.
그럼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해 볼까요?
이 프로그램은 우리 단체의 교육팀이 진행하는 것이고 십 수년의 전통이 있는 행사여요. 그런데 올해는 외부 기관에서 맡아 진행했어요. 그 외부 기관의 대표가 우리 NGO의 임원이기도 해서 그쪽 힘을 빌리는 형식으로요. 우리 단체가 이 행사를 매년 해왔는데 요즘엔 프로그램 자체에 대한 대대적인 개혁이 필요한 상황이라 고민이 많았어요. 그런데 올해, 외부 '기관'이 맡아 진행해 보겠다고 하니까 냉큼 넘긴 거죠. 다만 행사의 진행은 그쪽이 하더라도 우리 단체의 이름으로 하는 행사니까 우리의 입장과 기준을 잘 견지했어야 했는데, 그게 많이 아쉬웠어요. 임원들이 참가비를 내면서까지 동원되었는데 청소년 참가자들과 겉돌게 된 그런 행사. 보람이 없었다.. 뭐 그런 결론이어요, 저는.
그런데 제가 화가 나는 것은, 이 행사가 끝난 뒤 객관적으로 평가의견을 주고받는 충분한 시간이 없었고 또 카톡 같은 곳에서 오고 가는 의견들을 종합해 보면 대체로 좋게 좋게 넘어가는 듯한 점이어요. 저는 행사 기간 중에도 잘못된 점, 개선해할 것들이 다다닥 보여서 메모를 해 두었는데 정작 이 행사의 책임이 있는 교육팀장은 두리뭉실. 다 잘 끝나서 좋다.. 뭐 이런 식으로 넘어가고 있어요. 저와 같이 참여했던 다른 임원들이 사석에서는 '이건 아니지' '이렇게는 두 번 다시 안 돼' 이런 말을 하면서도 다들 그냥 '고생했다, 수고했다, 이렇게 잘 마무리되는 것은 우리 단체의 저력..' 운운하면서 속 생각을 잘 드러내지 않더라고요.
이번 행사를 진행한 외부 기관의 대표이자 우리 NGO의 임원이기도 한 S 씨는 고생 많이 했어요.
지방 모 청소년 단체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되 어른들도 함께 하려던 것, 아쉽게도 오직 청소년들만을 대상으로 한 것이 되어버렸지요. S의 입장에서는 학생들만으로도 매우 가시적인 성과가 보이니까 비즈니스적 입장에서는 얻는 것이 많았을 거예요. 그런데 우리 NGO의 어른들은? 우리가 자체적으로 행사를 했을 때와는 달리 우리 회원들은 그 청소년들과 섞이지도 못한 채 도우미 역할만 하는 것에 그쳤어요. 프로그램의 설계와 운영이 잘못되었던 거죠. 우리 교육팀 담당자 K가 멍청했다, 그가 자기 역할을 잘 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는 생각이어요.
K는 나랑 동갑이라 농담도 건네며 가까운 척 하긴 해요. 음악을 좋아하고 기타도 잘 쳐서 우리 모임에서 싱어롱을 담당하죠. 그런데도 그가 멋져 보이지가 않는 것은 주로 7080 노래를 해요. 때로는 그보다 더 훨씬 오래된 노래까지 그렇게 불러대니 우리들이 구리구리하다고 놀리대지요. 그래도 꿈쩍도 하지 않는데, 자기가 이 NGO에 오래전부터 참여했다고 엄청 어른인 체하니까 그것도 '웃기네' 하는 그런 마음이 있던 사람이지요.
그래도 공공기관에 오래 재직하고 있다가 퇴직하여 전 직장의 아이템을 갖고 자기 사업을 하면서 이 나이에도 바쁘게 지내니 새삼 부러운 사람이어요. 똑똑한 사람이 아닌데도 전공과 직업을 잘 선택해서 능력자가 되었고, 가정적으로도 화목하게 잘 사는 것 같으니 제가 시비걸 일이 전혀 없는 사람인데... 하하하.
그 사람이 자기 일로 바쁘다고 준비회의에 곧잘 빠졌지요. 그러니 이전 회의 때 논의된 내용을 마치 처음인 것처럼 엉뚱 소리를 해서 주위의 빈축을 하기도 했고요. 그런데 제 눈에 그가 진짜 하찮게 보이는 건, 자기 할 일을 다른 누군가가 하게 만들고는 어쩌고 저쩌고 자기 존재를 보태는 태도요.
그럴 때면 저는 속으로 '멍청이'라고 생각해요. 실력이 없으면 겸손이라도 하면 좋겠는데, 자기가 잘하고 있는 듯 알은체, 어른인 체하려 드니까 저는 그걸 못마땅해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진짜 문제는 그의 그런 모습을 다른 회원들은 잘 넘어가 주는데 저는 그렇지 못하냐는 점이어요.
다음 주에 임원 모임이 있어요. 저는 어떤 식으로든 그 행사에 대한 평가 논의를 제대로 끌어낼 생각이어요. 그게 맞거든요. 그런데 엄청 조심하긴 해야 해요. 그를 멍청이라고 생각하는 내 속마음이 들키지 않아야 하니까요. 또 사람들의 솔직한 평가 의견이 잘 나오는지 신경을 쓰되 진짜 주의할 점은 제가 먼저 좌라락 말하지 않는 일이랍니다.
사람들은, 솔직한 의견 특히 비판적인 이야기 하고 나면 미안해하잖아요. 그래서 마무리는 '그래도 좋았어요.' 그렇게 할 테니까요. 말 잘하는 제가 객관적인 의견이라고 먼저 다다다 이야기 하면 사람들은 속으로 '맞다' '옳아' '바로 그 점이야'라고 생각해도 좀 비판적이다 싶으면 '뭐 그렇게 까지는 아니었다..'라는 식으로 물타기를 할 테니까요. 즉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부정적인 의견과 평가는 제가, 긍정적이거나 적당히 중립적이며 미래지향적인 듯한 의견은 다른 이들이 하면서 훈훈하게 마무리되는 거죠.
답답한 부분은 제가 다 긁어주면서 저는 센 언니로 다시금 강화되는 거죠. 하하하
그래서 저의 목표는 가급적 입을 꼭 다문다.
입꾹은 힘들겠지만...
저 생긴 대로 하고 싶은 말 다 하며 살면 안 돼요?
어머.. 오늘은 진짜 빨리 가네요.
집에 가서 곰곰 생각해 볼게요. 이렇게 이야기하다 보니 뭐 별것도 아닌 것을 이야기했네.. 그런 생각도 드네요.
그럼 다음에 뵐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