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에서 살아봤습니다-22(저녁을 밤 11시에??)

자정 가까이 저녁 먹고 자면 소화가 될까나.

by AMAP

그리스 사람들은 점심과 저녁을 아주 늦게 먹는다. 보통 식당이 낮 1시에 오픈하긴 하지만 그 시간대에 와서 점심 먹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학창시절부터 점심은 12시쯤에 먹는다는 불문율이 몸에 밴 한국인들로서는 적응이 쉽지 않았다. 1시까지 주린 배를 움켜쥐고 기다리다가 문 열자마자 들어가지만 아무도 없다. 3시가 지나서야 손님들이 하나 둘 들어오기 시작한다. 12시에 뭔가 먹으려면 까페에 가서 도너츠나 사먹든지 아니면 맥도날드로 가야 한다. 애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학교 점심시간은 약 1시쯤이라 한다. 이건 국제기준과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그런데 실제로는 점심시간에 대부분 과자 몇 개만 먹고 제대로 된 식사는 하교 후 집에 가서 한다고 한다. 그게 3~4시경이다. 식당이 3시 이후에 활기를 띄는 것이 다 이유가 있다.


taverna.jfif 저녁 6시 동네 식당 풍경. 이렇게 아무도 없다.

저녁식사도 마찬가지다. 6시쯤에 식당에 가면 손님이 거의 없다. 그리스인들에겐 아주 애매한 시간대다. 심지어 직원이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지금은 Lunch Menu 끝났습니다." 늦은 점심이라고 생각했나 보다. 덕분에 우리는 식당을 전세낸 것처럼 텅 빈 식당에서 조용히 식사할 수 있었다. 애들이 가끔 친구네 집에 저녁에 놀러갈 때면 늘 카톡이 왔다. "아빠, 배고파 죽겠어..10시가 다 돼 가는데 밥을 안줘.." 보통은 10시, 어떤 집은 11시가 되어서야 저녁을 먹는다고 하니 평소 7시 전에 저녁먹는 애들이 얼마나 배가 고팠을까(물론 그 전에 간식은 줌). 신기하다. 저 시간대에 밥 먹고 자면 소화가 되나?


map.jpg 국가별 저녁시간대(사진출처 : 구글)

검색을 해보니 일몰 시간대와 관련이 있다고 한다. 해가 일찍 지는 북유럽은 저녁을 빨리 먹고, 해가 늦게 지는 남유럽은 6~7시는 너무 더워서 좀 쉬다가 해 떨어지고 나서야 저녁을 먹는 거라고 한다. 일견 이해가 되는데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그럼 겨울은? 살아보니 겨울에는 5시면 해가 지던데 그때도 저녁식사를 10시 넘어 하시더만. 구글에서 가져온 위 그림에는 그리스 저녁시간이 8~9시라고 되어 있는데 살아보니 이보다 훨씬 늦더라. 이에 대해 현지인들에게 물어봐도 명쾌한 답을 듣지는 못했다. 자기들도 어릴 때부터 그렇게 살아왔다고. 밤늦게까지 돌아다니는 관광객들도 그게 편하고 좋지 않냐고 농담하면서 웃는다.


지인 이야기에 따르면 그리스 사람들이 한국에 출장왔을 때 만찬 때문에 몹시 힘들어한다고 했다. 한국측 카운터파트는 우리식으로 7시경에 만찬 스케줄을 잡는데 평생 그 시간대에 저녁을 먹어본 적이 없는 사람들로선 당연히 부담스럽겠지. 그래서 제발 저녁약속은 잡지 말아달라고 사정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스에 2년 살면서 현지문화를 최대한 많이 경험하고 따르려 노력했는데 식사시간만은 도저히 불가능했다. 학창시절 16년, 직장생활 20여 년간 점심은 12시에 먹고 저녁은 6~7시에 먹던 습관을 바꾸긴 어려웠다. 곧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는데 바꿀 이유도 없었고.


그래, 각자 편한대로 사는 거다. 차이를 존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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