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에서 살아봤습니다-39(신화에서 비롯된 표현들)

수천년을 거슬러 한국에서까지 쓰이는 말들.

by AMAP

신문기사나 책에 자주 등장하는 표현 중에 그리스 신화나 역사에서 비롯된 것들이 몇 가지 있다. 예를 들면 누군가의 심각한 약점을 이야기할 때 '아킬레스건'이라고 하고, 선물이나 호의로 위장하여 적에게 접근한 후 나중에 치명타를 입힐 때 '트로이목마'라고 표현한다. 이참에 내가 아는 범위 내에서 그리스 신화와 역사에 뿌리를 둔 관용적 표현 몇 가지를 정리해 본다. 영어에는 더 많은 표현이 있다는데 우리가 평소 쓰는 말이 아니므로 패스한다(예: Gordian Knot, 고르디우스의 매듭).


아킬레스 건 그림.jpg
아킬레스 코르푸.jpg
(좌) 아킬레스건 위치, (우) 오른발 아킬레스건에 화살을 맞은 아킬레우스(사진출처 : 구글)

1. 아킬레스건

- 발뒤꿈치에 있는 강한 힘줄로 종아리 근육과 발뒤꿈치의 뼈를 연결하여 발을 디디거나 뛸 수 있게 해주는 부위를 말하는데, 비유적으로는 대단히 치명적인 약점을 말할 때 이 용어를 쓴다.


트로이전쟁에서 트로이의 헥토르를 박살낸 그리스 영웅 아킬레우스에서 비롯됐다. 신화에 따르면 아킬레우스의 어머니 바다의 여인 테티스는 아킬레우스를 불사신으로 만들기 위해 그를 저승을 흐르는 스틱스 강에 담갔다. 그런데 물에 담글 때 발뒤꿈치를 잡고 담갔기 때문에 발뒤꿈치는 신비로는 물에 젖지 않아 나중에 그의 치명적인 약점이 되었다. 그래서 트로이전쟁에서도 트로이의 파리스가 쏜 화살에 발뒤꿈치를 맞아 사망했다고 한다.


트로이 목마.jpg B.C. 7세기 항아리에 그려진 트로이목마 그림(미코노스 고고학박물관)

2. 트로이목마

- 호의로 가장하여 적에게 접근한 뒤 나중에 치명상을 입힐 때 그 도구를 트로이목마라고 한다. 신화에 따르면, 트로이전쟁 당시 그리스인들이 떠나는 척 하면서 나무로 말을 만들어 그 안에 그리스 군사들을 숨겨놨다. 트로이 사람들은 목마를 승리의 전리품으로 생각하고 성 안에 들였는데 밤에 이들이 나와 트로이군을 전멸시켰다고 한다. 기원전 7세기에 만든 항아리에도 트로이목마 그림이 새겨진 걸 보면 기원전 12세기경에 벌어졌다고 하는 트로이전쟁이 수세기에 걸쳐 구전으로 내려왔나 보다.


판도라.jpg <판도라>,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그림출처 : 구글)

3. 판도라의 상자

- 보거나 열면 상상하지도 못한 큰 사건이 터지기 때문에 열어서는 안되는 무언가를 말할 때 판도라의 상자라고 한다. 어떤 정치인들의 비리가 담겨있는 이메일이나 배우자의 불륜 증거가 담긴 휴대폰 등에 대해 말할 때 이 표현을 주로 쓴다. 이 역시 그리스 신화에서 나왔다. 신들이 창조한 여인 판도라는 제우스로부터 항아리 하나를 선물로 받았다. 절대 열어보지 말라는 말과 함께(열지 말라고 하면서 선물은 왜 주는 건지..). 하지만 궁금증을 참지 못한 판도라는 항아리를 열었고 여기서 온갖 재앙들이 튀어나와 세상에 퍼졌다. 상자 안에는 희망만이 남았다고.


디오니소스와 마이다스.jpg <디오니소스와 마이다스>, 니콜라 푸생(그림출처 : 구글)

4. 마이다스의 손

- 하는 일마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며 성공을 이룰 때 마이다스의 손을 가졌다고 한다. 즉 손대는 족족 성공하는 사람이라는 말이다. 소위 '똥손'의 반대말이다. 마이다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프리기아의 왕이다. 술의 신 디오니소스의 양아버지를 돌봐주자 이에 감사한 디오니소스는 마이다스에게 소원을 하나 들어주겠다고 했다. 이에 부자가 되고 싶었던 마이다스는 자신이 손대는 모든 것을 황금으로 변하게 해달라고 했다는 이야기다.


나르키소스.jpg <나르키소스>, 카라바조(그림출처 : 구글)

5. 나르시시즘

- 자기애가 하늘을 찌를 정도로 도가 지나쳐 자신만이 뛰어나고 잘났다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소위 '재수없는' 사람을 이야기할 때 나르시시즘에 빠졌다고 한다. 과도하게 예쁜 척(또는 잘생긴 척)하는 연예인이나 자기 혼자 잘났다고 독불장군 행세를 하는 정치인을 이야기할 때 이 표현을 많이 쓴다. 그리스 신화에서 미소년 나르키소스가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반해 식음을 전폐하고 몇날 며칠을 물 속만 바라보다가 수선화가 되었다는 스토리에서 비롯되었다.


그 외에도 '오이디푸스 컴플렉스', '이카루스의 날개',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등도 생각나는데 이건 일상에서 자주 쓰는 표현은 아니라 패스한다.


그리스 신화의 영향력은 대단하다. 수천년이란 시간의 강을 건너고 동서양의 지리적 한계를 뛰어 넘어 현대 코리아에서까지 흔히 쓰는 표현으로 흔적을 남겼다니.




작가의 이전글그리스에서 살아봤습니다-38(식민시절의 아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