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의 차원이 다르다.
평소 '먹는 것'에 큰 관심이 없다. 동일 품목(또는 메뉴)이면 어디서 뭘 먹든 효용이 비슷하다. 즉 우리 동네 평범한 중국집이나 남들이 맛집으로 꼽는 장안의 소문난 중국집이나 짜장면 맛이 그게 그거다. 그 정도로 맛에 둔감한 나도 인정하는 두 가지 음식이 있으니 바로 그리스산 올리브오일과 꿀이다. 올리브오일에 대해서는 전에 포스팅했으므로(15화) 오늘은 그리스 꿀에 대해 간단히 이야기하고자 한다.
그리스에서는 웬만한 건 다 신화와 연결되듯 꿀도 신화에 등장한다. 아폴론과 키레네의 아들인 Aristaeus가 양봉의 신으로 등장하고, 아기 제우스를 동굴에 숨겨 키워준 요정 Melissa는 제우스에게 꿀과 우유를 먹이며 키웠다(그리스어로 꿀을 Meli라고 함). Homer가 쓴 <오딧세이>에도 마녀 키르케가 오딧세이의 동료들에게 꿀을 탄 포도주를 먹여 돼지로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고 한다.
신화 뿐이랴. 꿀은 역사에도 어김없이 등장한다. 극강의 군사력을 자랑하던 스파르타에서는 군사훈련을 할 때 꿀만 먹으며 산에서 1개월을 버티게 했다고 한다. 또한 기원전 시기에도 양봉으로 먹고 사는사람들이 많았는지 Solon 시대에는 양봉장 간 300피트 거리제한을 두어 과당경쟁을 막을 정도였다고.
그리스 마트에 가면 꿀 코너가 화려하다. 산지, 원료, 브랜드가 각각 다른 수십 가지 브랜드의 꿀이 진열되어 있다. 시간이 좀 지난 후 찬찬히 보니 그리스 꿀은 크게 Floral Honey와 Forest Honey 이렇게 둘로 나뉘더라(우리말로 뭐라 할 지 몰라 그냥 영어로 썼다).
Floral Honey는 벌이 꽃꿀(화밀, nectar)을 먹고 이 액체를 축적한 것을 모은 것으로 천연꿀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우리나라 동서벌꿀이 아카시아에서 추출한 꿀인 반면, 그리스 Floral Honey는 백리향(Thyme)에서 얻는다. 아마 백리향의 주산지가 남부유럽이라 그런가 보다. 동서벌꿀보다는 색깔이 진하지만 Forest Honey보다는 연하다. Forest Honey는 소나무나 전나무의 송진을 먹은 벌이 만든 꿀로서 상대적으로 색깔이 진하다. 맛도 약간 송진맛이 나고 뒤끝에 낙엽 태우는 냄새가 난다.
그리스에선 꿀은 그냥 떠먹기도 하고 여기저기 웬만한 음식에 다 넣어서 먹는다. 특히 제과점에 파는 과자들은 아주 꿀로 목욕을 시켜놨다. 꿀을 '덕지덕지' 발라놓은 통에 어떤 건 너무 달아서 곰돌이 Pooh나 먹을 수 있을 정도다. 나는 예전부터 샌드위치는 딸기잼, 햄, 치즈를 넣어서 먹는 거라는 고정관념이 있었는데 그리스 꿀을 맛보고는 가끔 레시피를 바꾸기도 했다. 식빵에 꿀도 발라서 먹으니 은근 별미더라. 그리스 사람들은 꿀 발라서 먹는 사람들이 은근 많다고 한다. 검색해 보니 그리스 꿀은 항균작용, LDL 콜레스테롤 감소, 항산화 작용, 상처부위 회복 촉진, 위장 활동을 돕는 프로바이오틱스 함유, 칼슘 흡수 촉진 등 효능이 엄청나다고 하는데..난 그냥 맛이 좋아 먹는다. 아무리 그리스 꿀이 맛있더라도 불로장생 약도 아니고.
이 맛있는 꿀을 전세계로 수출해서 외화를 벌어들이면 좋겠구만, 올리브오일이나 와인에서 보듯 그리스는 수출 같은 거 잘 안한다. 연간 약 2만톤의 꿀을 생산해서 스페인에 이어 유럽에서 두번째로 많이 생산한다고 한다. 그런데 1인당 연간 소비량이 1.7kg에 달해(우리나라는 1인당 연간 약 650g 소비) 전 인구가 다 드시고 나면 수출할 물량이 얼마 안된다고 한다. 겨우 2천톤 수출한다고. 역시 그리스다. "언제 우리가 돈 벌었냐. 맛있는 건 내가 먹는다"
요새도 종종 꿀을 먹는다. 그리스를 떠난 이후론 거의 동서벌꿀이다. 요거트에 꿀을 넣어서 같이 먹거나 추운 겨울밤엔 꿀차를 타서 마신다. 평생 모르고 갔으면 좋았을텐데 그리스 꿀의 극강의 맛을 알아버린 후론 수시로 그립다. 그 색깔과 끈적임, 진하디 진한 맛! 비유하자면 물탄 생맥주가 아닌 병맥주의 그윽한 맛이다.
아마존에서 현지 가격의 약 2.5배로 팔긴 하는데 눈 딱 감고 한 번만 질러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