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상황에서의 의사결정(오판 패턴, 인지 편향)

2부. 2화. 마음가짐과 정신적 준비

by 눕더기

위기 상황에서의 의사결정
― 오판의 패턴, 인지 편향, 그리고 ‘멍해지는’ 나 자신과 마주하기




우리는 보통 위기를 떠올릴 때, 장비를 먼저 생각한다.
소화기, 비상식량, 생존가방, 랜턴, 현금, 차키.
그러나 실제 재난 사례들을 들여다보면, 사람을 살리거나 망하게 하는 건 장비보다 먼저, ‘판단’이다.


똑같이 비상구가 있는 건물 안에서도
누군가는 빠르게 뛰쳐나오고,
누군가는 “설마 진짜겠어” 하고 주저앉아 있다가,
그 자리에 머무른 채 목숨을 잃는다.


같은 뉴스를 보고도
누군가는 “아, 이쯤 되면 슬슬 준비해야겠다”라고 생각하는 반면,
누군가는 “그래도 설마 우리한테까지 그런 일이 오겠어?”라며 전부 흘려보낸다.


위기 상황에서의 의사결정을 다룬다는 것은,
“어떻게 하면 더 똑똑해질 것인가”가 아니라
“내가 얼마나 쉽게 틀리는 존재인가”를 인정하는 일에 가깝다.
생존주의자에게 이 인정은 불편하지만 피할 수 없는 출발점이다.


1. 위기 앞에서 인간은 생각보다 빨리 ‘멍해진다’



뉴스 속 사진을 보면,
불길이 치솟는 건물 앞에서
그냥 멍하니 서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종종 나온다.
우리는 그런 사진을 보며 속으로 생각한다.


“나는 저렇게 안 할 것 같은데…”


하지만 심리학과 재난 보고서에 따르면,
대부분의 사람은 갑작스러운 위기 앞에서 우선 ‘멈춘다’.
생각을 해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몸과 뇌가 순간적으로 “현실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상태”에 빠지는 것이다.


이 상태를 단순화해서 말하면,
“이럴 리가 없다.”


화재 알람이 울렸을 때,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계단으로 향하는 사람보다
잠시 멈추고 주변을 살피며,
“이거 진짜인가? 오작동인가?”를 확인하려는 사람이 훨씬 많다.


지하철이 급정거했을 때,
지금 당장 내려야 할지,
그대로 앉아 있어야 할지
쉽게 결정하지 못하고
그저 사람들 표정을 훔쳐보게 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 망설임 몇 초, 몇 분이
생존과 사망의 경계가 되는 상황이 분명 존재한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위기 앞에서
이토록 쉽게 “멍해지는가”?


2. 인지 편향 – 뇌가 스스로에게 거는 마취제


심리학과 행동경제학에서 자주 등장하는 개념이 있다.
바로 인지 편향(cognitive bias)이다.


인간의 뇌는 생각보다 게으르다.
모든 상황에서 정보 전체를 분석하고,
확률을 따지고,
최적의 결정을 내리는 방식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대신,
“대충 이렇겠지”라는 지름길(휴리스틱)을 통해 빠르게 결론을 내리고,
나머지는 버린다.
이 지름길이 평소에는 우리를 편하게 살게 해주지만,
위기 상황에서는 오판으로 직결된다.


위기 상황에서 특히 자주 등장하는 인지 편향 몇 가지를 짚어보자.


2-1. 정상성 편향 (Normalcy Bias)


― “설마 진짜 이 정도일까?”


정상성 편향이란,
“지금까지 늘 괜찮았으니,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믿는 심리”다.


지진이 나도,
사이렌이 울려도,
뉴스에서 “위험하다”고 말해도,
우리는 머릿속에서 이렇게 반응한다.


“그래도 설마 진짜 큰일 나겠어?”
“늘 뉴스에서 난리 난리 해도 결국 별 일 없었잖아.”


이 편향은 재난 상황에서 수없이 목격됐다.




홍수 경보가 여러 번 울렸지만,
사람들은 “작년에도 그랬는데 괜찮았잖아”라며 대피하지 않았다.




산불이 멀리서 보이는데도,
“우리 동네까지 오겠어?” 하며 짐을 안 싸고 집에 머물렀다.




건물 화재 경보가 울렸는데,
“공사 중이라 그럴 거야”라고 넘기고 자리에 앉아 있던 사람들.




정상성 편향은 “안심하려는 본능”이자,
“위험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서 나온다.


생존주의자의 관점에서 이 편향은
가장 먼저 자각해야 할,
그리고 가장 위험한 적이다.


2-2. 군중 따르기 편향 (Herding)


― “다른 사람들도 안 움직이는데?”


위기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판단보다 다수의 행동을 먼저 본다.



아무도 일어나지 않으면, 나도 안 일어난다.


몇 명이 먼저 대피하면, 그제서야 따라 나선다.


“다들 괜찮다는데 나만 유난 떨기는 싫다”고 생각한다.



군중 따르기 편향은
우리를 심리적으로 편하게 만들어준다.
“나 혼자 결정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로 밀어 넣어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위기 상황에서는
이 편향이 위험하게 작동한다.


“모두가 틀리고 있는데, 나도 같이 틀려버리는 상황.”


실제로 여러 재난 사례를 보면,
한 사람이 먼저 강하게 “나간다”고 말하고 움직였을 때,
그제야 나머지가 들썩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 “한 사람”이 나오기 전까지,
모두가 그 자리에서 ‘생각하는 척, 버티기’를 하고 있는 셈이다.


2-3. 과신 편향 (Overconfidence)


― “나는 위기 오면 잘할 거야”


많은 사람이 머릿속에
‘위기 상황에서의 멋진 나’를 하나씩 품고 있다.


나는 위급할 때 침착할 거야.
나는 사람들을 이끌 거야.
나는 도망칠 타이밍을 기가 막히게 잡을 수 있을 거야.


그러나 실제로 그런 연습을
단 한 번이라도 해본 적 있는지를 물으면
대부분 대답이 막힌다.


과신 편향은
“경험하지 않은 것을, 익숙한 것처럼 느끼게 만드는 기만”이다.


실전 사격을 한 번도 안 해본 사람이
전쟁 영화만 보고 “총 정도야 뭐…”라고 생각하는 것과 비슷하다.

위기에서도 우리는 종종
영화와 드라마 속의 “침착한 주인공”을
무의식적으로 자신과 겹쳐본다.


생존주의자의 입장에서 이 과신 편향은
“실전 행동을 가로막는 허세”다.


2-4. 손실 회피와 집착 – “여기까지 왔는데…”


위기 상황에서도
인간은 기묘하게 ‘손실을 보지 않으려는 마음’을 유지한다.




집 안에 이미 비싼 물건들이 있는데
이걸 두고 나가야 하나 망설인다.




월세, 전세, 대출금, 전자제품, 가전, 가구…
머릿속에 돈이 먼저 떠오른다.




“잠깐만, 이것만 챙기고…” 하다가
대피 타이밍을 놓친다.




이것은 손실 회피(loss aversion)라는 심리로 설명된다.
우리는 같은 크기의 이득보다,
같은 크기의 손실을 훨씬 더 크게 느낀다.


“이걸 잃는다”는 감정이
“내가 지금 살아나야 한다”는 이성적 판단보다
순간적으로 더 크게 느껴지는 것이다.


결국 생존 상황에서 중요한 건,
“무엇을 더 챙겨 나갈 것인가”가 아니라
종종 “무엇을 과감히 버리고 나갈 것인가”가 된다.


3. 위기 상황에서 실제로 나타나는 오판 패턴들


이제 이론적인 이름을 조금 거둬내고,
현실에서 우리가 실제로 범하게 되는
오판 패턴들을 하나씩 정리해보자.


생존주의자의 시각에서 보면,
이 패턴들을 미리 알고 있는 것만으로도
위기에서 “반 박자 빠르게” 움직일 여지가 생긴다.


패턴 1 – “먼저 상황을 좀 더 지켜보자”


가장 전형적인 패턴이다.


알람이 울리고,
화재 경보가 켜지고,
실내 방송에서 대피 안내가 들려오는데도,
사람들은 앉아서 표정을 서로 살핀다.


“일단 좀 기다려보자.”
“진짜면 안내가 한 번 더 나오겠지.”
“누가 먼저 나가나 보자.”


문제는 “지켜보는 시간”이 곧 위험에 노출되는 시간이라는 점이다.


생존주의자에게는 한 가지 기준이 필요하다.



“이 신호가 가짜일 때, 내가 손해 보는 것은 무엇인가?”
“이 신호가 진짜일 때, 내가 가만있으면 잃는 것은 무엇인가?”



경보가 가짜였을 때의 손해란,
잠깐 자리 비우고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오는 정도다.
하지만 진짜였는데 가만히 있었을 때의 손해는,
말 그대로 생명 전체다.


패턴 2 – “이 정도면 아직 괜찮겠지”


위기는 보통 단계적으로 온다.




물이 차오를 때도,
발목 → 종아리 → 무릎 → 허리 순으로 올라온다.



화재도 연기 → 열기 → 화염 순으로 다가온다.



사회적 위기 역시 물가 상승, 공급망 붕괴, 물자 통제처럼
‘징후’가 먼저 나타난다.




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그 징후마다 멈춰서 이렇게 스스로에게 말한다.


“아직은 괜찮겠지.”
“버틸 수 있겠는데?”
“조금만 더 지켜보자.”


이건 ‘한계점’을 잘못 설정하는 행동이다.
우리 몸과 뇌는 생각보다 빨리 지치고,
실제로 움직이기 시작하면
이미 에너지가 상당 부분 소모된 뒤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생존주의자는
“위험 감지 기준선”을 평범한 사람들보다 조금 더 앞에 둔다.



“연기가 보이면 바로 이동한다”



“지진 흔들림이 일정 수준 이상이면,
먼저 책상 아래로 들어가고, 이후 즉시 탈출 동선을 잡는다”




“뉴스에서 같은 위험 키워드가 여러 날 반복되면,
그때부터는 ‘실제로 온다’고 보고 물자와 현금 비중을 조절한다”




패턴 3 – “이대로 가만있으면 누가 와서 도와주겠지”


도시 생활은 우리에게
‘서비스에 의존하는 습관’을 준다.



배달은 오고


택시는 오고


AS 기사도 오고


관리실도 있고


경비실도 있다



이 구조 속에서 우리는
위기에서도 비슷한 기대를 품게 된다.


“119가 오겠지.”
“구조대가 도착하겠지.”
“정부에서 대피 안내를 해주겠지.”


물론, 많은 경우 실제로 누군가는 달려온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제시간에 구조받는 시나리오”는 거의 없다.


생존주의자가 가진 기본적인 태도는 이렇다.



“누군가 오면 감사하겠지만,
아무도 오지 않아도 나는 최소한의 대비를 해두겠다.”



이건 국가나 사회에 대한 불신이 아니다.
그저 구조와 지원에는 물리적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자세다.


위기 상황에서 “스스로 첫 번째 구조대가 되는 것”,
그것이 생존주의자의 마음가짐이다.


4.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가 – 마음가짐과 훈련


이제 중요한 질문이 나온다.
“그럼 이 모든 편향과 오판을 알고,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생존주의자가 할 수 있는 일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자신이 틀릴 수 있다는 사실을 미리 인정하기


평소에 ‘결정 기준’을 만들어두기


작은 훈련을 반복해서, 위기 때 몸이 먼저 움직이게 만들기



4-1. “나는 틀릴 수 있다”는 문장을 받아들이기


이건 생각보다 어렵다.
우리는 “나는 남들보다 조금은 더 이성적이고 침착하다”고 믿고 싶어 한다.


하지만 생존주의자는 오히려 반대로 말해야 한다.


“나는 남들처럼 충분히 멍해질 수 있고,
나도 ‘설마’라고 생각하다가 늦을 수 있다.”


이 ‘자기불신’이야말로,
실전에서는 가장 단단한 안전벨트가 된다.


나도 틀릴 수 있다고 인정하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다음 질문을 할 수 있게 된다.


“그렇다면 내가 틀리기 쉽다는 걸 전제로
어떻게 환경과 습관을 바꿔야 할까?”


4-2. 미리 정해둔 “행동 기준선” 만들기


위기에서 가장 무서운 건
정보 부족이 아니라 결정 지연이다.


그래서 평소에
“이 상황에서는 어떻게 한다”는 기준선을
몇 개라도 미리 만들어두는 것이 좋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화재 경보가 울리면
→ 1분 이내에 자리에서 일어나서 비상구 방향으로 이동을 시작한다.
(‘오작동 확인’은 건물 관리 측의 몫이지, 내 몫이 아니다)




지진으로 건물이 눈에 띄게 흔들릴 경우
→ 무조건 책상 아래에서 머리를 보호하고, 진동이 잦아들면 계단 탈출을 시도한다.




장기 정전 + 통신 두절이 24시간 이상 지속될 경우
→ 집 안의 물과 식량을 재점검하고,
가까운 편의점, 마트 상황을 확인한 뒤
이후 48~72시간을 버틸 방안을 가구별로 상의한다.




이 기준선들은 완벽할 필요가 없다.
중요한 건, “그 자리에서 생각하지 않게 만드는 것”이다.


뇌는 위기에서 생각보다 빨리 멈추기에,
차라리 평소의 내가 미리 내려둔 결정을
위기 시의 내가 그냥 따라가는 쪽이 훨씬 안전하다.


4-3. 작은 훈련 – 일상 속에서 할 수 있는 것들


생존 훈련이라고 하면
대부분 산에 들어가
불 피우고 물 찾는 장면을 떠올리지만,
정작 도시형 생존주의자에게 필요한 훈련은
훨씬 소소하고, 일상적이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회사에서 한 번쯤 비상구까지 걸어가보기
– “가까운 비상계단”이 어딘지 실제로 확인해본다.




집에서 밤에 불 끄고 라이트만 켜고 움직여보기
– 정전 시 동선 감각을 몸으로 익힌다.




지하철을 탔을 때
– 근처 비상문, 비상망치, 탈출 안내 표시를 한 번씩 눈으로 확인해보기.




혼자 있을 때
– “지금 갑자기 화재 경보가 울리면,
나는 어디로 어떻게 움직일까?”를
10초 정도만 상상해보기.




이런 작은 훈련들은
거창하지도 않고 고조된 공포도 필요 없다.
다만 “볼 때마다 한 번씩 떠올리는 습관”이 차이를 만든다.


5. 맺음말 – 위기에서 나를 구하는 것은, 결국 ‘미리 준비된 나’


위기 상황의 의사결정은
순간적인 ‘천재성’에서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평소의 나가 얼마나 자신을 알고,
얼마나 인정하고,
얼마나 준비해 두었는가에서 나온다.


우리는 모두
– 정상성 편향에 빠지고
– 군중을 눈치 보고
– 과신하고
– 손실을 두려워하는
아주 인간적인 존재다.


생존주의자로 산다는 것은
이 인간성을 버리는 게 아니라,
이 인간성을 인정한 채로 전략을 세우는 자세다.


나는 멍해질 수 있다.
나는 오판할 수 있다.
나는 사람들 눈치를 보다 타이밍을 놓칠 수 있다.


그러니,
그걸 전제로 준비한다.


위기에 빠졌을 때
나를 건져줄 사람은,
경비 아저씨도, 뉴스 속 누군가도,
이 책을 쓴 사람도 아니다.


그 순간에 나를 구하는 것은
위기보다 앞서서
먼저 나 자신을 의심해 보고,
번거롭더라도 몇 번쯤 동선을 걸어보고,
조금이라도 일찍 움직이겠다고 마음먹은,
평소의 나다.


생존주의자가 되는 첫걸음은
장비를 사는 것이 아니라,
조용히 이렇게 말해보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완벽하지 않다.
그래서 준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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