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은 편하고 마음은 불편했던
2024년을 떠나 보내며
2024년은 정신적으로 참 건강하지 못했던 한 해였다.
작년에 기록학 석사과정생으로 대학원에 입학했다. 뭐라 설명하기 어렵지만 작년의 나는 공부에 자신감이 가득 차있었다. 매일매일 일어나는 사무실에서의 루틴한 행정 처리 업무보다도 고차원적이고 꽤 오랜 시간 고심해야 하는 공부에 올인하는 것이 나와 더 맞은 일일 것이라 생각했다. 내 배 아파 낳은 자식처럼 내 머리를 열심히 괴롭혀 낳은 자식같은 논문을 쓸 수 있을 줄 알았다. 작년 8월, 그런 근거없는 자신감에 가득차서 퇴사를 했다. 물론 기록학에 대한 애정이 변한건 아니다. 여전히 기록학을 향한 사랑은 지속되고 있고, 앞으로도 꽤 오래갈 예정이다.
하지만 그 자신감 넘쳤던 2023년의 나는 온데 간데 없고, 2024년의 나는 매일 매일 불안에 떨며 지냈다. 올해 중순부터는 졸업을 하기 위해 내내 논문을 썼다. 기록과 스토리텔링을 연결해보려고 했다. 근데 그게 여간 까다로운 일이 아니었고, 또 기대만큼 재미가 있지도 않았다. 내가 계속 소설을 쓰는 이유는 그 과정이 말도 못하게 고통스러우면서도 그 고통을 상쇄할만큼의 재미가 있기 때문인데, 학위 논문이라는건 그렇지가 않더라. 자존감이 떨어져서 외모에도 집착을 많이 했다. 서른이 되니 눈 밑이 거무죽죽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팽팽했던 얼굴살도 이제 중력을 거스르기가 어려운가보다. 울퉁 불퉁해진 피부 표면도 괜히 신경이 쓰였다. 예전같았으면 무언가에 열중했을 때엔 추리닝 하나 걸치고 나가도 주변 시선을 크게 신경쓰지 않았을텐데. 일을 하거나 친구를 만나러 나갔을 때 괜히 초라하고 나이들어 보이긴 싫어서 옷도 이것 저것 사입어보고 화장품도 바꿔봤다.
어쨌든 올해는 혼자 많이 울었다. 분명히 내 마음의 소리를 따라가고 있다고 자부했지만, 내 마음엔 내가 참 많기도 하고, 거짓말을 치는 나도 참 많아서 누구 말을 들어야 할지 모르겠더라. 정말이지, 그 '무지'의 상태가 나를 그렇게 지치게 했다. 그렇다고 올 한해 딱히 육체적으로 건강했다고도 할 수 없었다. 회사 다닐 때에는 상상도 못할 정도로 아침잠을 실컷 잤다. 그럼에도 한달에 거의 이주간은 잔잔한 복통에 시달렸던 것 같다. 하루는 급성 장염으로 응급실에 실려가기도 했다. 나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그렇게 배가 아프더라. 이것도 정신적인 건가. 열심히 사는 현대인이라면 하나씩 달고 있는 과민성 대장 증후군, 뭐 그런거. 그것 말고도 생리전 증후군도 심해져서 이쯤되니 그냥 잔잔한 복통은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살았다.
그럼에도 올 한해 얻은게 있다면, 논문은 내 취향의 글이 아니라는걸 확실히 깨달았다는 것이다. 또 그 댓가가 조금 크긴 했지만, 석사과정생의 삶을 비교적 잘 체험해 봤다는 것에도 만족한다. 그리고 계속 소설을 써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 것도. 나는 내 생각을 겉으로 드러내는 것을 본능적으로 두려워하는 사람이다. 이런 내가 애초에 어떻게 글을 쓰겠다는 결심을 한건지 신기할 따름이지만 진심으로 하고 싶은 일이 하나라도 존재한다는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체감했기 때문에, 나에게 거의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그 순수한 마음을 포기하고 싶지가 않다.
아이러니한 건 난 올해 결혼도 했다는 거다. 원했던 곳으로 신혼여행도 다녀왔다. 그토록 가보고 싶었던 런던이라는 대도시와, 스페인 중부의 작은 마을들로 훌쩍 떠났다. 이제는 남편이 된 남자와 매일 매일 이국적인 거리를 거닐고, 낯설지만 맛난 음식들을 먹으면서 진심으로 행복했다. 아직 몇달 지나지 않았음에도 그때를 떠올리면 참 눈물 나도록 그립다. 거기 마치 나의 일부를 두고 온 것만 같다. 다시 그곳에 가면, 다시 온전해질 것만 같다. 내가 그곳을 어떻게 떠나왔을까. 그 사실조차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모든 순간들이 소중했다.
이쯤되면 사람들은 남편이 돈을 벌어오니 너는 편히 대학원을 다닐 수 있는 것 아니겠냐고, 배부른 소리를 한다고 느낄 수도 있다. 그래, 일부는 맞는 얘기다. 누군가에겐 지금 내가 늘어놓은 푸념이 엄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것이다. 그래서 경제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극한 상황을 견디면서 학문에 정진하는 대학원생들에게 괜히 미안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미안한 마음과 정신적 불안은 별개의 것이더라. 그러고 보면 나는 참 성숙하지 못한 사람이다. 이런 시간이 계속 될수록 남편에 대한 부채의식만 쌓여가고, 빨리 졸업을 해야겠다는 생각만 가득찰 뿐이다. 졸업, 졸업, 졸업, 졸업, 졸업, 머릿 속에는 빨리 논문 끝내고 졸업해서 취준에 올인할 생각밖에 없다. 졸업에 이토록 절실한 서른이 될 줄이야.
이렇게 털어놓으니 또 속이 시원해지는 것으로 보아 역시 글쓰기에는 치유의 능력이 있나보다.
세상엔 중요한게 참 많다. 그 중 무엇을 더 소중히 여길 것인지에 대한 선택이 바로 나를 결정한다. 그치만 때로는 나를 결정하는 무언가가 너무 피상적이고 세속적인 것으로 변해버릴까봐 무섭다. 본질적으로 서른이란 이런 공포를 가지게 되는 나이인 걸까. 분명히 나는 고집도 세고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에 대한 집착도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근데 이런 저런 일을 겪어보니 굳은 심지는 언제든 말랑말랑해질 수 있고, 한순간에 녹아버릴 수도 있는 것이었다. 항상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아야지. 내가 지향하는 삶은 원하는 가치를 추구하고 지키기 위해 고집불통이 될 줄 아는 삶이다. 앞으로도 그렇게 살고 싶은데. 힘들어서 어떻게 사냐 정말.
그래서 세줄 요약:
- 내 선택이 예상 외로 큰 불안을 가져 올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 재앙은 스스로가 불러오는 것임
-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지향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꼭 해야하는 선택이 존재한다.
- 그래서 결국 선택과 불안의 순환고리에서 벗어날 수 없는 건가? 하... 애증의 내 인생!^^
제발, 내년에는 덜 불안한 사람이 되고 싶다,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