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틴문학에서 해답찾기
며칠 전 김영하 작가의 강연을 들었다. '공감, 소통, 그리고 이야기'라는 주제로 이야기가 타인을 이해하고, 그들에게 공감하는 데 어떤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를 설명했다. 작고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물 흐르듯 차근차근 등장하던 와중, 한 문장이 머릿속에 꽂혔다.
"우리는 타인의 의도에 대해 너무 단순한 시나리오를 가지고 있어요"
타인의 의도나 감정을 예측할 때 우리는 지레 짐작하여 하나의 이유로 넘겨 짚곤 하지만, 사실은 그보다 훨씬 다양한 이유가 있을 수 있다. 그리고 그 다양한 의도를 추측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바로 이야기를 통한 추체험이다. 그때 머릿속에 작은 프로젝트에 대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요즘 나는 라틴 문학을 다시 꺼내 읽고 있다. 소설을 쓰면서 내 상상력의 한계를 느끼곤 마음의 고향을 찾듯 라틴 소설이 꽂혀있는 책꽂이에서 서성거렸다. 처음엔 내가 왜 라틴 문학으로 손이 갔는지 알지 못했다. 굳이 이유를 달자면 "끌려서". 아니, 알수 없는 무언가에 "이끌려서" 그랬다.
하지만 이제와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난 고지식한 사람이다. 소설 쓰는 사람 치곤 상상의 나래를 펼칠 줄도 잘 모른다. 내 소설의 가장 큰 약점은 예측 가능하다는 것이다. 캐릭터도 묘하게 평면적이고, 이야기의 전개도 뻔하고, 어찌보면 내가 소설의 세계관은 너무 정돈되어있거나 정제되어 있다. 쓰고보니 속상하다. 픽션을 쓰는 사람에게 상상력이 부족하다는 건 치명적이다. 이런 나에겐 감정의 시나리오가 아니라 인물의 행동과 스토리라인의 풍부화가 중요한 문제이고, 이는 바로 이야기를 통해 이루어진다.
그렇다면 어떤 이야기로부터 도움을 받아야 할 것인가?
나의 무의식이 찾은 정답이 바로 라틴 문학이었다.
라틴 문학의 대표작을 꼽자면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께스의 '백년의 고독(Cien años de soledad)'을 논하지 않을 수 없다. 1960년대 라틴 아메리카 붐 소설 세대의 걸작으로 꼽힌다. 서구를 답습하지 않고 라틴아메리카만의 정체성을 되찾으려는 노력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라틴 아메리카의 좌충우돌 역사를 아주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표현한, 소설적 상상력의 결정체다.
붐 소설이 한 풀 죽고 나선 엘리티시즘, 형식과 상업주의에 대한 집착, 마초이즘을 비판하며 포스트 붐 소설이 등장했는데, 또 이 시기 소설만의 매력이 있다. 포스트 붐 소설에서는 독재와 종교계의 타락, 사회의 부조리를 더 직접적으로 비판하기 시작한다. 그러다보니 사회적 사실주의 문체와 지역주의적 색채가 두드러진다. 대표적인 작가와 작품을 꼽자면 라우라 에스키벨의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Como agua para chocolate)>, 이사벨 아옌데의 <영혼의 집(La casa de los espiritus)> 등 특히 여성 작가의 작품이 많다. 남미 특유의 마초이즘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음은 물론이다.
붐이든, 포스트붐이든 시대별 사조의 특징이 있다고 하더라도 라틴 문학의 정수는 '마술적 사실주의' 기법이다. 라틴 문학에는 허무맹랑할 정도로 말도 안되는 이야기들이 많다. 특히 백년의 고독에는 세계관의 법칙이라는게 없다. 갑자기 몇년 전 창에 목구멍이 뚫려 죽은 사람의 영혼이 나타나고, 느티나무에 사람이 묶인 채로 수십년을 살아가고, 배운적도 없는 라틴어를 중얼거리고, 성모처럼 승천하고, 아이는 돼지꼬리를 달고 태어나며, 40일간 쉬지 않고 비가 내린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이런 서술이 아니라면 어떻게 아메리카 대륙이 겪어온 질곡의 역사를 담아낼 수 있을까? 마술적 사실주의는 '헛소리에 깃든 진리'이다. 나는 헛소리와 허무맹랑한 상상들을 좋아한다. 심지어 그런 헛소리에 역사의 무게와, 희로애락과, 기발한 풍자가 담겨있다면?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다. 그래서 읽는다, 이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허풍같은 이야기를.
또 라틴문학은 자극적이고 솔직하다. 우리나라에서 항상 볼드모트급의 금기어로 여겨지는 '성'을 소설의 이곳 저곳에서 자유롭게 활용하고, 그런 묘사를 통해 캐릭터의 특성을 잘 나타낸다. 예컨대 <영혼의 집>에서, 아주 고약한 성정의 지주 에스테반 트루에바에게 성관계란 본능적인 것인 것이고 결핍되면 화가 나는 것이다. 그래서 어린 여성들에게 강간을 일삼는데, 이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그의 파괴적인 특징을 극적으로 드러낸다. 반대로 진정한 사랑을 하는 블랑카와 페드로 테르세로. 그 두 인물이 함께 밤을 보내는 장면은 훨씬 낭만적이고 서정적이고 조심스럽게 묘사된다. 두 인물이 나눈 애정의 깊이를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나도 한국 사회에 폭삭 물든 사람이다보니 성에 대해 묘사하는게 여간 까다로운 일이 아니다. 성은 인간의 본능적이고 보편적인 욕구이기 때문에 인간을 이해하는 데 근간이 된다고 할 수 있지만, 여전히 나에겐 그것을 논하는게 어렵고, 부끄럽고, 민망하다. 허허. 솔직해져야지, 항상 솔직하고, 진솔하게 써야지. 소설가가 못 쓰는 문장이 어딨어.
그래서 내가 계획한 프로젝트는 바로 '라틴문학에서 해답찾기' 이다. 상상에 경계짓는 이 습관을 타파하고, 괜히 숨기는 것 없이 솔직해지고 싶다.
그래서 몇 가지 작품들을 골라봤다.
<백년의 고독>, <네루다의 우편배달부>,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등 이미 읽었던 작품을 또 다시 읽으면서 영감을 얻어보려고 한다. 또 서문학을 공부하던 학부 때에 오랜 숙제로 남겨둔 이사벨 아옌데의 <영혼의 집>과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픽션들>, 또 최근에 관심을 가지게 된 라틴 아메리카의 시카리오 문제를 통렬히 비판하는 <청부살인자의 성모>도 리스트에 넣어놨다. 이렇게 읽고 정리하고 쓰다보면 내가 그토록 원하던, 시나리오의 풍부화가 이루어지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아무리 지구 반대편 사람들의 이야기라지만, 인류 보편의 문제를 다루는게 소설이라고 믿는다.
그들의 이야기가 나로 인해 또 다른 이야기로 계속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