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제) 브레맨으로 가는길> 창작을 위한 준비글
"다녀왔습니다!"
성원은 하교하자마자 이모와 삼촌에게 크게 인사를 하고 방으로 직행했다. 간식을 찾아 부엌을 서성이던 평소와 달리 바로 책상에 앉아 노트 두 페이지를 쭉 찢었다. 비장한 한숨과 함께 필통을 열었다. 무슨 말부터 시작해야 할까. - 브레맨 사고뭉치에게? 엄마밖에 모르는 바보에게? 가출 청소년에게? - 뭉툭한 연필 끝으로 한참을 끄적이던 성원은 맘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을 짓고선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 준석에게 - 뒤에서 언제 왔는지 모를 서준이 온몸에 이불을 두른 채 성원을 쿡쿡 찔렀다. "형아, 이거 봐라. 뜨시다." 성원은 귀엽다는 듯 웃으며 서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서준은 베시시 기분 좋은 웃음을 짓다가 신난다는 듯 방문 밖으로 우다다 달려나갔다.
성원은 마음을 가다듬고 디스 배틀을 하기 전의 랩퍼가 마이크를 들듯 연필을 들었다.
준석에게.
형이다.
네가 사라진 지 벌써 일주일이 되었다. 나는 그간 우리 그룹홈 동생들로부터, 그리고 이모와 삼촌들로부터 수많은 질문을 받아야 했어. - 정말 그애의 행방이 궁금하니? 그애를 찾아야 한다는 게 진심이야? - 특히 서준이는 네가 영영 다시 오지 않았으면 좋겠대. 혼자 그 넓은 이불 하나를 독차지하게 되어서 그런건지 아주 의기양양해졌어. 네가 다시 오면 문 앞에서 엉덩이를 걷어차 줄거래. 그런 나쁜 말은 또 어디서 배웠냐고 하니까 정윤이한테서 배웠대. 그럴 줄 알았지. 아무튼 내가 걔를 보게 되면 혼쭐을 내줄거야.
사람들은 계속 말해. 그때 너희 엄마가 널 데리고 연기처럼 사라졌던 것처럼, 이번에도 엄마가 자식을 데려간 것뿐이라고. 하지만 난 그게 아니라고 확신해. 사람들은 기체가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어떤 기체는 흔적을 남기기도 해. 너희 엄마가 남긴 흔적이 있어. 그날, 너희 엄마가 술냄새 풀풀 풍기면서 브레멘에 찾아온 날, 넌 너희 엄마가 건넨 콜라를 마셔서 잠이 들었어. 수면제든 뭐든 집어 넣었겠지. 그 사람은 네가 잠든걸 확인하고 미친듯이 너의 가방을 뒤지더라. 그 사람이 찾던게 뭔 줄 알아? 이년 동안 이모가 모아준 돈. 그 적금 통장. 그룹홈에서 나온 다음에 밑천으로 쓰라고 모아준 그 적금 통장이었다고. 근데 그 중요한걸 네가 가지고 있을리가 없잖아. 그걸 학교 책가방에 달랑달랑 들고다닐 리가. 그날 너희 엄마가 남긴 흔적은, 너희 엄마가 무척이나 허술한 바보라는 사실이야. 너희 엄마는 그런 일을 꾸밀 정도의 능력이 없어. 정신없이 가방을 뒤지느라 내가 뒤에서 다 지켜보고 있었다는 사실도 몰랐거든.
너희 엄마를 이렇게 욕한다고 해서 우리 엄마가 싫은건 아니야. 그냥 빈자리가 너무 당연해져서 오히려 엄마가 있는게 어색할 것 같아. 그래서 난 나중에 엄마로부터 연락이 와도 받지 않을 생각이야. 난 내 살길 하나 찾는 것도 고생스럽다. 부러진 의자 다리를 휘두르는게 삶의 낙이었던 아빠한테 나를 맡겨놓고 떠난 사람까지 왜 내가 책임져야 하는건지 이해가 안가. 맘 같아선 그룹홈 이모가 사실은 그냥 엄마를 해줬으면 좋겠거든. 물론 내 욕심이란걸 알아. 그리고 욕심을 부리면 이모가 싫어할 것이니 난 침묵하고 있을 것이라는 것도 넌 알고 있겠지.
아무튼, 그래서 매일 엄마를 찾는 네게만 못되게 굴었던거 인정하고 그건 미안하게 생각한다. 서준이랑 하랑이. 그 애들은 아직 어려서 걔들이 아무리 엄마 얘기를 해도 그저 아직 본능적으로 엄마를 찾는 것 뿐일거라 치부해 버렸거든. 근데 넌 나랑 한살 차이밖에 나지 않는데도 그렇게 바보같이 엄마를 찾더라. 넌 진짜로 철썩같이 믿고 있었어. 엄마가 데리러 올거라고. 그래서 나는 말했지, "여기가 어딘줄 알고? 술 취해서 헤롱거리느라 찾지도 못해" 그러니까 넌 나한테 "좆까세요"라고 했어. 그게 무슨 말인지 몰라서 괜히 친구들한테 물어봤다가 웃음거리가 되었던 그날만 생각하면 아직도 얼굴이 화끈거린다. 넌 열일곱이 될 때까지 배운게 없는 거야? 너희 엄마가 대체 널 몇 번을 속였는데. 그 믿음은 대체 어디서 나오는거야? 방앗간 교회 목사님도 그 정돈 아닐걸.
벌써 몇달 째 준비한 연극은 이제 다다음주면 연습이 끝나. 네가 없으니 브레맨 음악대의 고양이 역할을 할 사람이 없어. 내가 이렇게 말하면, 넌 또 그렇게 말하겠지. 날 찾았던게 아니라 연극을 완성시킬 누군가가 필요했던 것이라고. 둘 다라고 이해해주면 안 되겠어? 넌 왜 둘 중에 꼭 나쁜 쪽으로만, 그것도 네가 상처받을 방향으로만 생각하는건지 모르겠어. 그러면 너한테만 상처라고 쌤들도 그랬잖아. 스스로한테 좋은 쪽으로 생각을 고쳐먹을 노력을 왜 안하는 거야?
우리가 진짜 가족도 아니고, 이렇게까지 너의 행방을 찾으려고 하는 내가 주제넘는 행동을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딱히 네가 보고싶은 것도 아니긴 해. 근데 분명한 건 지금 넌 너희 엄마와 함께 있는게 아니란 거야. 그렇다면 경우의 수는 두 개야. 혼자서 길가를 떠돌고 있거나, 위험한 사람들한테 잡혀 있거나. 위험한 사람들에게 잡혀있다면 내가 걱정 정도는 할 수 있는 거잖아. 그래서 지금 나는 너를 찾을 생각이다. 쌤들과 동생들을 설득해서 너를 찾을 생각이야.
그래서, 지금 넌 어디 있는걸까. 대체 어디서부터 너를 찾아야 하는 걸까.
네가 이모 몰래 피던 담배 내가 가지고 있어.
들키고 싶지 않으면 나한테 카톡 하나라도 남겨라.
성원 형이.
성원은 속 시원하다는 미소를 지으며 부지런히 움직이던 펜 대를 내려놓았다. 며칠 째 얹혀 있던 체증이 싹 가시는 것 같았다. 성원은 반듯한 성정에 맞게 각을 맞추어 노트 종이를 접고 몰래 이모 방에서 빼온 흰 봉투에 집어 넣었다. - 아, 맞다 - 성원은 다시 연필을 들었다.
손은 허공에서 한참을 멈춰 있었다. 성원은 머리를 긁적였다.
"이 편지는 어디로 부쳐야 하는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