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칠고 나쁜 엄마의 매력

라틴문학에서 해답찾기-<달콤쌉싸름한 초콜릿>편

by 끄루쓰

라틴 아메리카 후기 붐 소설 마술적 사실주의의 정수.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에선 낭만과 사랑이 가득하다 못해 흘러 넘친다.

삶에 동화가 필요한 어른이라면 당장 이 책을 펼치시길



델 라 가르사 가문의 큰어른인 마마 엘레나에게는 세 딸이 있다. 첫째딸 헤르트루디스, 둘째딸 로사우라, 막내 딸 티타. 티타는 막내딸이라는 이유로 가문의 전통에 따라 평생 마마 엘레나를 돌보아야 한다. 그래서 결혼을 할 수도, 아이를 낳을 수도 없다. 티타는 그런 잔인한 운명을 받아들일 마음이 없다. 다신 없을, 평생의 사랑, 페드로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달콤쌉싸름한 초콜릿>은 티타의 레시피가 담긴 하나의 요리책이다. 1년치 요리를 기준으로 총 12개월, 12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각 장마다 특별한 요리를 만드는 방법과 티타의 이야기가 촘촘히 직조되어 진행된다. "10월의 크림튀김"으로 예를 들어보자면, 맨 처음 크림튀김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재료들이 제시된다. 그리고 "만드는 법"에서 크림 튀김을 만드는 방법과 크림튀김을 좋아했던 티타의 첫째언니 헤르트루디스의 이야기가 크림 튀김을 만드는 과정과 함께 진행된다. 매우 흥미로운 구성. 티타의 일상, 눈물, 고통, 슬픔, 기쁨과 사랑은 이렇게 일년치 요리책 하나에 그대로 녹아 들어간다.


<달콤쌉싸름한 초콜릿>은 참 동화같다. 라우라 에스키벨이 동화 창작으로 작가 커리어를 시작했기 때문일까. 티타가 눈물을 머금은 채 만든 페드로와 로사우라의 웨딩 케이크를 먹고 하객들이 슬픔에 휩싸이게 되었다거나, 엄마보다 더 가깝게 지냈던 나차를 떠올리며 흘린 눈물이 너무 많아 계단 아래로 넘쳐 흘렀다거나, 임신하지도 않은 티타에게서 젖이 나와 페드로와 로사우라의 아들인 로베르토에게 젖을 먹였다든가. 동화적 상상이 예고없이 툭툭 튀어나온다. 전래 동화의 모티프도 심심찮게 보인다. '좋은 남자'의 전형인 존 브라운 박사와 약혼 후, 마마 엘레나가 강도의 습격을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걱정해서 달려온 티타는 마치 효녀 심청같다.


이처럼 낭만 가득한 동화를 연상시키는 독보적인 분위기엔 분명 감탄할만 하지만...

반면 티타와 페드로의 러브라인은 사실 좀 실망스럽다. 둘의 사랑에 대한 스토리라인에는 흔한 클리셰들이 많다. 신데렐라 포지션의 여주인공이라든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라든가, 연적(존 브라운 박사)의 등장이라든가. 특히, 페드로와 존 브라운 박사를 놓고 고민하는 티타의 모습은 열정적이나 불안정한 베르테르와 운명의 상대는 아니지만 성숙한 알베르트 사이에서 고민하는 로테를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둘의 사랑에는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들도 꽤 많다. 티타를 계속 보고 싶어서 페드로가 그녀의 언니인 로사우라와 결혼했다는 설정, 존 브라운 박사와 약혼했다는 사실에 분노한 페드로가 티타를 강간하는 장면은 오히려 눈쌀을 찌푸리게 했다. 디테일 부족인걸까 문화의 차이인걸까. 분명 쉽게 이해하기 곤란한 내용들이다.




그럼에도 내가 관심을 둔 캐릭터는 마마 엘레나. 마마 엘레나는 티타의 친엄마(심지어 계모도 아님)이지만, 아주 지독한 빌런이다. 지루해지려치면 갈등을 발생시켜 이야기의 감초 역할을 톡톡히한다. 그러면서도 아픈 과거를 지니고 있어 마냥 미워할 수만은 없는 캐릭터다.


비이성적이고, 잔인하고, 끈질긴 '악습'의 표상

엄마는 처음엔 나쁜 사람 같다가도 나중엔 좋은 역할로 끝이 나지 않나. 하지만 마마 엘레나는 얄짤 없다.

티타에게 죽을 때까지 자신을 보살필 것을 강요한다. 왜 막내딸만이 그 의무를 져야 하는지, 결혼을 하고 어머니를 모시면 안 되는건지, 논리도 없고 이유도 없다. 그냥 따라야 한다. 그래서 티타가 페드로와도 결혼할 수 없게 로사우라와 결혼하게 만든다. 심지어 그 결혼식에서 직접 음식을 준비하라고 시킨다.


"네가 마치 무슨 희생이라도 당한 것처럼 굴어서 언니의 결혼식을 망치는 걸 그대로 두고 볼 수는 없어. 지금부터 연회 준비는 네가 전적으로 맡아서 해라. 하지만 절대 눈물을 짜거나 얼굴을 찡그리지 않도록 주의해라. 알겠니?"(p.33)


이렇게 티타에게 잔인하게 구는 것도 모자라 티타가 매일 밤 직접 자신을 목욕시키게 한다. 그리고 심지어 마마 엘레나는 죽어서까지도 혼령이 되어 나타나 티타를 괴롭힌다. 이토록 티타에게 모질게 굴고, 상처를 주고, 심지어 말을 듣지 않는다고 뺨을 후려 갈기는 이유는(한 두번도 아님, 꽤 여러번임) 티타가 '전통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말이 전통이지 죽을 때까지 엄마를 돌봐야 하고, 연애 한번 못하게 하는게 말이 되는 전통인가? 그저 악습일 뿐이다. 즉, 마마 엘레나는 '전통'으로 포장되곤 하는 악습의 표상이다. 악습은 본질적으로 비이성적이고 잔인하고 끈질기다. 그래서 마마 엘레나는 희대의 악역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달콤쌉싸름한 초콜릿>(라우라 에스키벨)의 원 제목은 <Como agua para chocolate>이다. 번역해보면 "초콜릿 끓이는 물과 같이" 정도가 되겠다. 라틴 아메리카에서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심리 상태나 상황을 초콜릿이 끓어오르는 상태에 빗대어 말하곤 하는데, 실제로 원문에서 이 어구가 등장한다. 로사우라가 자기 딸 에스페란사에게 마마 엘레나가 그랬던 것처럼 "막내딸의 엄마 모시기"를 강요하자 그것에 화가난 티타의 마음을 빗대는 데 쓰였다.


마마 엘레나를 바라보는 내 마음이 내내 그랬다.

더 이상 참기 힘들었다. 초콜릿 물이 끓어오르는 것처럼.


총 잘 쓰는 알파 피메일, 어떤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 포지션을 맡은 마마 엘레나에게 라우라 에스키벨은 나름 매력적인 설정이나 배경을 부여한다. 첫째로, 강인하고 용기있는 여성으로서의 면모이다. 혁명군이 마마 엘레나의 집에 쳐들어왔을 때, 마마 엘레나는 직접 엽총을 집어 들고 무서운 군인들을 카리스마로 제압한다. 총 잘쏘는 간 큰 엄마의 모습이란 뭇 독자들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나는 명사수인데다가 성질이 고약하오. 대장, 다음은 당신 차례요. 당신 부하들이 나를 죽이기 전에 내가 먼저 당신을 죽일 수 있다고 자신하오. 그러니 서로 조금씩 존중합시다. 우리 둘 다 죽으면 나야 아쉬워하는 사람 없겠지만, 당신은 틀림없이 국가적인 손일일 거요. 안 그렇소?"(p.98)


마마 엘레나의 시선을 받은 군인들은 말할 수 없는 두려움과 자신이 저지른 잘못에 대한 죄책감과 무서움을 느낀다. 그 모습을 두고 에스키벨은 군인들이 "엄마의 권위 앞에서 마냥 겁내는 어린아이와 같은 기분이 들었다. (p.99)"고 서술하는데, 참 맛깔나는 표현이 아닐 수 없다ㅋㅋ


정작 사랑에는 용기 없던 그녀

또 하나의 매력은, 그렇게 강철 같은 마마 엘레나도 사랑에 상처입은 과거가 있는 여자라는 것이다.

마마 엘레나에게도 '호세 트레비뇨'라는 운명의 남자가 있었다. 하지만 그는 흑인의 피가 흘러 마마 엘레나와 결혼할 수 없었다. 마마 엘레나의 부모는 둘의 관계를 알자마자 후안 델 라 가르사와 마마 엘레나를 강제로 결혼시켰다.


하지만 이미 마마 엘레나는 호세 트레비뇨의 딸인 헤르트루디스를 임신한 상태였다. 마마 엘레나는 호세 트레비뇨와 함께 도망치려 했다. 그렇게 발코니에 숨어서 호세를 기다리고 있던 그날 밤, 낯선 남자가 아무 이유도 없이 호세를 죽여버렸다. 그리고 그것에 충격을 받은 후안 델 라 가르사도 심장마비로 죽어버렸다. 마마 엘레나를 사랑해 줄 모든 남자가 하루 아침에 세상을 하직한 것이다.


그녀의 과거 덕에 우린 마마 엘레나가 왜 사랑 없는 고독한 사람이 되어 버렸는지, 왜 악습을 전통으로 믿고 따르게 되었는지를 깨닫게 된다. 전통을 거슬러 호세와 도망치려 했지만 그를 잃었다. 마마 엘레나의 과거는 그녀 또한 그 지독하고 끈질긴 악습의 피해자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마마 엘레나는 티타가 브라운 박사와 결혼 하기 위해 자신에게 독을 먹인다고 착각하고서는 해독 작용이 있다고 믿었던 토근 시럽을 잘못 마셔 죽는다. 그 누구도, 심지어 자기 자식 마저 믿지 못했던 마마 엘레나.

사랑 없는 사람의 처량한 마지막이다.



그렇다면 사랑 가득한 페드로와 티타는 어떻게 되었냐고?

둘은 이십년만에 마침내 로라우라, 마마 엘레나의 감시에서 해방되어 드디어 사랑을 이루게 된다. 그렇게 설레는 마음으로 그 동안 쌓인 애정과 절실함과 소유욕을 원없이 풀어내는 하룻밤을 보내는데 페드로가 너무 흥분했던 나머지 복상사를(!) 당한다...!

그의 죽음에 슬퍼진 티타는 성냥을 마구 씹어 삼키며 페드로와의 기억들을 떠올린다. 그때 티타의 몸에 불이 붙고 둘은 곧 불길에 휩싸인다.

그렇게 함께 에덴으로 떠나 영원한 사랑을 누리게 되었다는 결말.

치사량을 초과한 낭만을 가득 부운 결말로 끝이 난다ㅋㅋ


티타의 딸과 다름없던 조카 에스페란사의 딸이 먼 훗날 티타를 회상하던 장면으로 글을 마친다.


"엄마가 돌아가시면서 내가 물려받은 이 요리책의 요리법 하나하나에는 사랑이 깃들어 있다. 사람들 얘기로는 그 잿더미 아래에서 갖가지 인생이 꽃을 피웠기 때문에 그 토양이 일대에서 가장 비옥해진 거라고 했다. ... 티타 이모할머니는 누군가 그녀의 요리법으로 요리를 하는 동안은 영원히 살아있을 것이다.(p.259)


자, 다음엔


뭘 읽어볼까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콜레라 시대의 사랑>과 <뺴드로 빠라모> 아마 둘 중 하나일 듯.

고민좀 해보고 다시 돌아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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