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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oronto Jay Dec 14. 2022

순대국밥 로망스

feat. 캐나다

"순대국밥 한 그릇, 소주하나, 맥주 둘 진짜 눈물 난다."

나 왜 이렇게 됐냐 친구야!


25년간 대기업 총무팀 인사담당팀장으로 일하다 지난달 명예퇴직서를 내고 회사를 떠난 고향 불알친구의 카톡이다.

세상 시원하다고 껄껄 웃던 그가. 갑자기 한 달 만에 카톡을 보내왔다.


퇴사 후 다른 회사로의 이직이 뜻하지 않은 문제로 무산된 뒤

이 주간 하릴없이 산으로 들로 떠돌아다니던 그였다.


"아이고 팀장님. 왜 그러시나요"

애써 모른 척 달래 보았지만 "아" 하면 "어"하는 사이로 40년 지기 친구이니 그 속을 모를 리 없었다.

수많은 중소기업체와 회사 조직원들의 갑 중의 갑이었던 그였다.

회장님의 직계라인으로 평가받았기에 전화 한 통이면 세상 안 되는 일이 없을 것 같던 "팀장님"이었다.


그러던 그가

초라한 시장 한켠 순대국밥집에 소주 한 병 맥주 두병 올려놓고 만나주는 사람 하나없이

그동안 마주할일 없다 생각했던 소위 "서민"들과 한 공간에 앉아 있으려니

눈물이라도 날듯 한 것 같았다.

마치 인생 나락으로 떨어져 더 이상 헤어 나올 수 없게 되었다는 푸념과 함께

"무섭다 친구야" 이 말을 되뇌고 있는 듯했다.


나한테 이놈이 이런 솔직한 카톡을 "팀장님"의 때가 아직 벗겨지지 않은 상태에서

스스로의 창피함을 무릅쓰고 보낼 수 있던 이유는

내가 이런 상황을 먼저 겪었던. 이 눈물 나는 상황의 10년 선배이기 때문 이었을 거다.


너도 겪어봤지? 그러니 너한테는 덜 창피하다.

머. 일종의 이런 심리상태였을 거라 생각한다.


이곳 캐나다와는 14시간 차이가 나다 보니.

이놈이 술 취해 괴로워하던 시간은 토론토의 햇살이 나의 눈을 간지럽히며 일어나라며 괴롭히던

지난 토요일 이른 아침이었다.


이 가슴아픈 카톡을 억지로 실눈으로 읽어내던 그 순간.

미안하게도 제일 먼저 떠오른 단어는.


순대국밥. 맛있겠다. 딱 이 생각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 든 생각은 어느 순대국밥집에 갔을까?

물어보고 싶다 였다.

집이 대전이니

대전 어느 허름한 순대국밥집일 텐데.

어디일까?


순대국밥은 오정동 "오** 순대국밥, 유천동 **순대, 판암동 부*순대, 인동 세*순대, 효동 천*집

월드컵경기장 사거리 **본가, 부사동 농*순대"등등등... 주마등처럼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 허름한 국밥집 문을 열고 들어가면 "훅~"하고 풍겨 나오는 쿰쿰한 돼지 내장 삶는 내음이 태평양과 캐나다 대륙을 건너 이곳 토론토 한복판 다운스파크까지 마법처럼 전해왔다.


잠이 다 깨지 못한 상태에서 카톡을 잘못 보낼뻔했다.

"오소리감투도 시켰냐?"


그랬다.

순대국밥을 향한 나의 본능은 실직과 함께 인생의 쓴맛을 처음으로 느끼는 고향 친구의 마음을 다독거려야 한다는 것을 넘어서고 있었다. 그리고 번개처럼 나도 한번 오늘 "먹어봐야겠다"라는 욕망을 불태우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현실로 돌아오는 데 걸린 시간은 단 5분이 되지 않았다.


집사람이 아이들 주말 스케줄로 차를 써야 했기에 우버를 타야 했다.

제일 가까운 한인식당이 있는 "핀치"역까지의 우버비를 보니 25불. 왕복 50불.

13%의 텍스, 10%의 팁을 포함한 순대국밥 25불. 참이슬 소주 한 병 23불

병맥주 두병 12불 그리고 알딸딸한 아침 취기를 달래줄 벨몬트 담배 하나 19불.


대충만 따져도 순대국밥 한 그릇, 소주 한 병, 맥주 두병, 담배 하나의 가격이 13만 원을 넘어서고 있었다.


이 단순 계산이 머릿속에서 진행되는 동안 이 부러운 친구는 법인카드로 서울 한복판 유명 셰프의 맛집만을 찾아다니던 지난 시절 이야기를 하며 순대국밥 한 그릇 앞에 둔 처지를 비관하는 카톡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미사일 퍼붓듯 쏟아내고 있었다.


"공감"이 되지 않았다.

아니 이해할 수 없었다.

부사동 농* 순대의 경우 끝내주는 돼지 냄새의 국밥이 아직도 5000원에 소주 맥주가  3000원인데...

담배까지 해도 2만 원이면 되는데...

왜 이놈은 힘들고 화가 나고 창피한 걸까.


네가 부럽다. 그게 행복이다.라고 쓰고 싶었지만. 하지 못했다.


"아! 참 많이 힘들겠구나. 힘내라"  멀리서 너의 오래된 벗이 보낸다.


고민 고민하다 형식적인 답장을 쓴 후 하루 종일 일이 손에 잡히질 않았다.

그것은 친구에 대한 걱정보다는 이거였다.


어디였을까 이놈이 간 순대국밥집은.


오정동 농수산시장 근처의 오**순대국밥이라면 만 원짜리 돼지곱창전골도 맛있는데 그거 꼭 시켜야 하는데. **본가는 돼지머리 수육이 맛있고, 천*집은 파다대기 엄청 넣어야 진정한 국물 맛을 낼 수 있고, 판암동 부*순대는 세천 막걸리를 쓰니 꼭 막걸리와 함께 먹어야 한다고 말해줘야 하는데...

 

진정한 친구라면 이 정도는 알려줘야 할 것만 같았다.


13만 원짜리 순대국밥을 먹을 수 없었던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우정을 보여주고 싶었다.

하지만 순대국밥과 소주에 취했는지 이 친구는 그날 이후 아직까지 답장을 보내지 않고 있다.


갑자기 궁금해지는 한 가지.

그날 이놈이 나에게 "힘들다"라고 한 것이 혹시 순. 대. 국. 밥. 이. 맛. 없. 어. 서 가 아닐까?

"눈물 난다"는 국밥 속 돼지 막창에서 냄. 새. 가. 나. 서

"나 왜 이렇게 됐냐"는 파다대기를 너무너무 많이 넣어서 맵. 다.라는 호소가 아니었을까?

그래서 다른 순. 대. 국. 밥. 집. 을 추천해 달라던 것이 아니었을까?

 

물어보고 싶은데. 진짜 물어보고 싶은데.

그리고 알려주고 싶은데.


이 친구는 오늘도 답장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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