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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oronto Jay Nov 11. 2022

10년의 시간 100곳의 답사 - 시작

*읽으시기 전 참고 바랍니다*


글에 소개되는 점집들은 실제 필자가 다녀온 점집들입니다만

점집을 소개 하고자 하는 글은 분명 아닙니다.


100곳의 모든 점집을 이야기 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그곳을 지키고 있고 그곳에 발걸음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같이 나누고자 할 뿐입니다.


결과는 개인적인 체험에서 나온 주관적 판단임을 밝힙니다.

하지만 놀랍도록 정확한 곳은 대충 어디인지 알 수 있도록 표현하겠습니다.

글을 기본으로 인터넷 검색 조금만 하시면 찾으실 수 있을 겁니다.


에세이 형식을 빌어 쓴 자전적 실제 후기임을 밝힙니다.

 




2년 반 정도 대기하셔야 합니다.
중간에 취소가 있어도 빨라야 2년 정도 걸릴 것 같아요.

이 전화였다.  

나의 미래와 길흉화복을 내가 아닌 누군가 정확히 미리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감으로 점집을 찾기 시작한 계기가. "2년 반..."도대체 얼마나 용하길래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미래를 알기 위해 돈을 들고도 2년 반이라는 시간을  한명의 점쟁이를 만나기 위해서 기다린다는 말인가.


어떻게 조금 빨리 안될까요? 비용이 조금 더 들어도 괜찮은데...

아무리 맛집이라도 서너 명 줄 서 있는 것도 못 참아 포기하고 마는, "기다린다"는 것을 참아내 본 적 없는 나로서는 결국 "돈"이라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결코 뿌리칠 수 없는 제안을 했다.


마치 예전 지나가는 택시 보닛을 호기롭게 두드리며 시청 따블!!! 을 외치던 그 시절처럼 말이다.

돌아오는 대답에서 시베리아 북극 찬 공기의 냉랭함이 묻어 나온다.


"싸 짊어지고 오셔도 안됩니다. 장관님, 회장님도 다 기다리세요"


결국 나 같은 삶에 찌들고 단 몇 푼이 아쉽고 자기 인생 하나 건사 못하는 평범한 소위 범인들은 그저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지 볼 수 있음에 감사하라는 일종의 통보였다.


장관님도 안되고, 회장님도 안되면 방. 법. 이. 없. 다.


2년 6개월 기다림의 예약을 한 뒤 창밖을 바라보다 문득 어떤 시절과 똑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랬다. 많이 익숙한 시간 2년 6개월.

사방이 육지로 둘러싸여 바다 구경 한번 제대로 해 본 적 없는 충북 청주 출신인 내가

흰색 정복에 마도로스의 괜한 꿈을 꾸다

해군 자대 배치 이틀 만에 초계함 구석 화장실에서 변기를 붙잡고 위액까지 토해내며

인생의 모든 죄를 빌고 빌었던 그 끔찍했던 초창기를 포함한 해군 생활 2년 6개월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 당시 나는 다니던 회사를 나와 프리랜서 생활을 하다 일이 꼬이고 꼬여

모든 일을 접고 전업주부 역할 및 육아담당으로 하루하루를 때우고 있던 시절이었다.


안 풀려도 이렇게 까지 안 풀릴 수가 없었다.

발 디딛으면 낭떠러지요 손에 잡으면 녹거나 부서졌으며 쳐다보면 사라지고

입에 넣으면 목구멍에 걸리던, 말 그대로 숨 쉬는 것조차 힘에 부치던 그때였다.


  사실 내가 저 이 년 반을 기다리라는 서울 한복판. 강남역 거리에 있는 진짜 용하다는 점집에 전화를 걸기 전

지역의 한 보살에게 찾아갔다가 된통 당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소위 검증된 "용한 점집"을 검색하고 수소문해 이 년 반을 기다리게 된 계기가 됐다.

그리고 그 기간을 참지 못하고 백여 곳의 점집을 순례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다면 된통 당했다는 곳은 어디였을까?


2012년 여름

아는 누님의 말로 진짜 "용하다"라는 곳은 대전 용문동 허름한 주택에 빨간 깃발이 올려진 어느 점집으로

그곳에서  10만 원을 주고 소위 "비방"이라는 것을 해 본 적이 있었다. 평소 입고 있던 속옷을 자신이 써준 부적과 함께 태워서 집 앞 큰 사거리 나무 밑에 묻고 큰절을 올려라.


007 첩보영화나 인디애나 존스와 같은 스릴 넘치는 스토리 아닌가?

그리고 그렇게만 하면 앞길이 집 앞 왕복 10차로 대로처럼 뚫린다니. 한번 해 볼만 했다.

일단 속옷을 벗어 운동복 주머니에 둘둘 감아 나오는데 목욕탕 다녀온다는 내 말에 아내는 목욕가방을 챙겨준다고 현관으로 나오다 불쑥 튀어나온 내 주머니를 바라보며 한마디 한다.


제발 여기에 넣어 다녀! 깨끗한 새거 넣었으니 그거 이리 주고.

안된다. 안되었다. 분명 그 용한 점쟁이 선생님이 말씀하시길 입던 속옷이라 했거늘.

하지만 지금은 그 점쟁이가 모시는 신보다 더 무서운 집사람이 내 앞에 있으니 여기 말을 들어야 한다 라는 명쾌한 답안이 떠올랐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집에서부터 입고 나가면 지금 입은 옷이 입던 옷이 되는 거 아닌가.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아파트 상가 화장실로 바로 직행한 나는 속옷을 갈아입고 입던 속옷을 목욕용 가방에 넣어 동네를 걸으며 속옷을 태울만한 장소를 찾기 시작했다.


대도시 한복판 대단위 아파트 단지.

도저히 옷을 태울만한 장소를 찾을 수 없었다.


아파트 후미진 곳에서 속옷을 태우다 경비원 아저씨에게 들키는 날엔 백주 대낮 방화범으로 몰릴 것이고

지나가던 여학생이나 아주머니가 보게 되면 필시 대낮에 남자 속옷에 불을 지르는 엽기적인 변태가 될 것이 뻔했다.

더욱이 이사간지 며칠 되지도 않아 전세계약도 많이 남아있어 소문이라도 나면 도저히 그 아파트 단지서 살아남을 자신이 없었다.


그래 외지로 가자~!

택시를 탔다. 타기는 탔는데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 머뭇거리는 나에게 70은 되어 보이는 인자해 보이는  할아버지 개인택시 기사님이 어디로 모실까요? 라며 백미러로 나와 눈을 마주한 그 순간.

나는 머뭇거리며 옷가지 몇 개를 태우려 하는데 어디로 가면 좋을까요?라고 물었고.


갑자기 그 기사님은 이상하게도 알겠다는 안쓰러운 눈빛과 몸짓으로 어디론가 출발했다.


그리고는 얼마나 갔을까.

 택시가 신호에 걸려 엔진 소리가 잦아지고 잠시 그 혼돈의 시간을 정리하고 있던 그때.


"다 잊고 보낼 사람은 보내고 산사람은 살아야죠" 아직 젊은데...


아 뿔 사


그렇게 보인 거다. 누군가 떠나보내고 그 사람을 못 잊어서 가지고 있던 마지막 옷가지를 정리하러 가는

40대 남자로.

  네... 슬프게 대답했다. 그리고 대전 고속버스터미널 건너편 가양동 등산로 입구에 내려 주셨다.

힘내라는 말과 함께.


조용했다 아무도 없었다 딱 이었다. 기사님은 마지막 보내는 그분의 옷을 남몰래 태워 혼자 추억을 회상하기에 대전에서 가장 적합한 장소를 떠올렸던 것이다. 아무튼 감사한 일이었다.


등산로 바위 뒤 움푹 파인 바위 밑동 아래 덤블을 헤치고 속옷 한 장을 태우기 시작했다.

대낮에 팬티를 태워본 적이 있는가?

나일론이라 후루룩 타오를 것 같았지만 사랑하는 남편 생각해서 아내가 분명 싸구려가 아닌 면이라도 혼합된 고급 팬티로 산 것이 분명했다


태우고 또 태워야 했다. 십여분 씨름 한끝에 내 속옷은 한 줌의 재가 됐고 이제 연기가 가라앉기만을 기다리면 되는데. 저 아래서 한 무리의 중년 남녀가 발목 하나씩을 걷어올린 채 얼큰히 취한 목소리로 고래고래 왕년의 이야기를 무용담처럼 들어 보라는 듯 소리치며 올라오고 있었다.


마음이 급해졌다.

 얼른 발로 밟고 흙으로 덮어 연기를 없애야 했다. 이번엔 잘못하며 산불 방화범으로 몰리기 십상이었다.

다행히 연기는 잦아들었고 가져간 비닐봉지에 흙과 나뭇가지가 뒤엉킨 재가 되어 버린 그 잔해를 비닐봉지에 넣어 나왔다. 그리고 나는 마치 급한 소변 해결하고 나오는 남자처럼 애써 눈을 피해 등산로를 내려왔다.


한참을 걸어 대로변까지 나온 나는 지나가는 택시를 잡아타고는 다시 집 앞으로 출발했다.


그리고 무언가 잘못되고 있다는 걸 알아채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어디선가 냄. 새. 가. 난. 다. 무. 언. 가. 타. 고. 있. 다.


처음에는 택시 타이어에서 나는 냄새라 생각하고

차 관리를 왜 이렇게 하고 손님을 태우나 하며 기사님을 탓할 뻔했다.


아니었다. 내가 문제였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들고 있던 그 무엇인가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목욕가방 속  둘둘 말아 비닐에 넣었던 속옷과 나뭇잎 재에서 연기가 나오기 시작한다. 다 꺼지지 않았던 재에서 죽지 않은 불씨가 끈질기게 살아남아 나뭇가지와 다 타지 않았던 속옷 잔재에 불이 옮겨 붙었던 거다. 달리는 택시 뒷자리 목욕가방 안에서 그 흰 연기가 새어 나오면서 택시 안은 연기로 차기 시작했고 기어이 기사님은 "뭐야 뭐야"를 외치며 그 길로 차를 길옆에 웠으며 나에게 나오라 소리치기 시작했다.  


"빨리 나오라고!" "당신 뭐하는 사람이야?"


자세히 설명하려 했으나 설명을 자세히 했다가는 경찰서나 정신병원으로 끌려 갈게 뻔했다.


아침방송 뉴스거리로 딱 좋았다.

"무속행위 위해 불붙은 팬티 가지고 택시 탄 40대 구속"

기가 막히지 않은가?


결국 아무 말도 못 한 채 나는 주머니에 있던 만 원짜리 세장과 천 원짜리 다섯 장을 기사님에게 쥐어준 채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도망치듯 달아났다.


내리막 길이여서 생각보다 내 뜀박질은 빨랐으며 내 손에 꼭 쥔 목욕가방 안에든 비닐에서는

여전히 팬티가 타면서 연막 소독차처럼 흰 연기를 내뿜고 있었다.



몰랐었다 대전 갑천 하상도로 옆 조깅코스가 그리 잘 되어 있었는지. 주머니에 든 돈을 다 쥐어준 탓에 나는 집 앞 큰 대로까지 걸어갈 수 밖에는 없었다.

다행히 갑천 천변 조깅코스에 유성구청 근방까지 이어지는 트랙이 있었는데 친절하게도 바닥에 남은 거리가 쓰여있어 마치 팬티 조심히 들고 잘오라는 듯 안내하고 있었다.


가끔씩 목욕가방을 열어 불씨를 털어 내고 연기를 걷어 내며를 계속하면서 걷기를 한 시간.

 온몸은 땀과 연기로 범벅이 되었으나 난 포기할 수 없었다.

분명 점쟁이 선생님이 활짝 열릴 앞날을 예지 하셨으므로...


큰길 소나무 아래 도착해서는 이제 사람들이 보든 말든 자포자기 상태였다. 그냥 힘들기만 했다.

땅을 손으로 파고 이제는 잦아든 속옷 재를 파묻고 넙죽 절까지 한 다음 행여나 누가 파갈까 나뭇가지로 가지런히 덮어 정리한 다음 경건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역시 귀신보다 무서운 건 집사람이었다.


단 한 마디에 나는 벙어리가 되어버렸다.

목욕탕 다녀왔다며?


힐끗 바라본 현관 신발장 옆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산불 진화하고 소방본부로 돌아온 자랑스럽고 용감한 소방관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이후 어떻게 됐냐고?


대로는 좁아졌고, 일은 계속 꼬였으며, 살림살이는 더 힘들어졌고, 자존감은 낮아졌으며

택시를 탈 때마다 그때 그 기사님을 만나지는 않을까 두려움에 떨어야만 했다.


그 기억이 나에게 트라우마로 남아 더 이상은 점집 근처에도 가지 않겠노라 다짐을 했건만 하는 일들이 힘들어질수록  이 시간이 언제까지 이어지는지 더 힘들어지지는 않을지 아니면 내가 몰라서 그렇지 혹시나 엄청난 대박이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닌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찾아보자. 있을지도 모른다.


근 한 달간 검색하고 수소문한 결과 서울 강남역 교보빌딩 근처 오피스텔에 대한민국 최고의 용한 점집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대기기간이 엄청나며 상담테이블 위에는 화장지가 쌓여 있다는 얘기가 내 호기심을 끌어당겼다. 그 화장지는 점쟁이가 너무나 용해서 지난 힘든 시절을 족집게처럼 이야기해주는 바람에 상담자들이 하염없는 눈물을 흘리며 들어서 하루에도 몇 통씩 사라진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였다.


그래. 여기다.


딱 한 번만 가보자.


그렇게 상담 전화를 걸게 되었고. 이 년 반의 대기 시간을 통보받았다.


나도 눈물을 흘릴 준비를 해야 했다. 나의 살아온 인생을 샅샅이 훑어 내고 정해진 미래를 정확히 예측하는 그분을 만날 날을 하루하루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시간은 가지 않고 내 인생은 그대로였으며 무기력함이 밀려들던 그 시간.


나는 "그분"을 만나기까지의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기로 했다.

그분만은 못하겠지만 그분의 아류들을 만나며 나의 인생을 대략 예측해 보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나의 "용한 점집"답사가 시작되었다.








1편에서는 일단 제가 직장 생활을 하며 20년 생활했던 대전지역 점집 탐방 기록만을 말씀드립니다.



# 대전지역의 유명 점집.


대략 보문산 옛 케이블카 근처와 용문동 롯데 백화점 뒤편, 유천동을  중심으로

많은 점집이 오래전부터 성업 중.

경제력이 약한 서민들을 상대로 영업 중이다 보니

점사 비 3만 원~5만 원

굿에 300~500만 원 부적에 10~30만 원선을 제시함.


계룡산과 굿당들이 비교적 시내에서 가까워서인지 굿의 규모도 작은 것이 특징


*주의할 점*


막상 굿을 하게 되면 내 점을 봐준 그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이 굿당에 등장하는 곳이 많음.

결국 굿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안 되는 사람이 굿 영업을 하고

 신엄마나 신아빠에게 일을 주고 자기들끼리 나눠 먹는 경우가 많음.

특히

의뢰자를 위한 굿판이라기보다 그 돈으로 판을 벌여 자신들의 신명을 푸는 경우가 허다함.



1. 보문산 ****

사주 공부 약하고 신을 내 세우기는 하지만

유튜브나 인터넷 활용을 통해서 나름 이름을 얻은 경우.

부적을 매우 강력히 권한다.

결단코 필자의 경험상 부적이나 비방으로 결과가 바뀌는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음. 차라리 아침마다 조용히 맑은 물 한 사발 떠놓고 하늘에 경건한 마음으로 비는 것이 더 좋음.

젊은 여성층을 상대로 부적 장사에 특화된 곳이니 주의.


2. 판암동 **아파트 부부 점집.

신내림 받은 부부. 사람들은 참 좋음. 조용하고 침착하고. 한두 개의 과거 문제점은 읽을 수 있을는지는 모르나 미래예측이나 다른 이의 해결 능력은 없는 듯. 하지만 진심이고 착하심.

마음의 평화를 얻기엔 좋은 곳.


3. 용문동****

깃발 때문에 꽤나 입에 오르내렸던 곳. 지금은 어디론가 이사 가셨다는 얘기가 많음.

먼가 영적 능력의 한방은 있으나 미래예측의 정확성과 해결 능력은 미지수.


4. 부사동 ****

간판도 없고 그저 알음알음 가는 곳인데 쌀을 집어서 던지며 풀이해 주심.

그냥 친한 친척 할머니 같음. 미래 예측이라기보다는 인생조언 같은 느낌

연세가 꽤 되셔서 아직도 잘 계시는지 궁금함.


5. 용문동  **

할머니는 줄담배를 피우시며 공수를 내리고 아들이 그걸 알아듣고 해석해주심.

욕심 없는 분들임. 솔직하고 자세히 설명해주심. 워낙 모자가 일하는 모습이 보기 좋아서

맞든 안 맞든 화가 안남. 좋은 일 한동안 없을 거라는 그 말 기가 막히게 맞음.


6. 대흥동 대전 한방병원 뒤 ****

공부를 많이 하심. 분명 먼가 능력이 있기는 한데 약간은 부족한 느낌.

사주에 따른 과거 현재 현상과 상황 풀이는 정확하나 미래 예측은 부족함.


7. 가양동 *****

부사동 야구장 근처서 가양동으로 이사 가심. 공부 많이 하신 사람 좋은 선생님.

작고 사소한 문제보다는 인생을 7년 10년 단위로 크게 크게 봐주심.

큰 그림은 잘 맞음. 하지만 자세한 사건 사례에 대한 정확도는 떨어지심.

학생이나 자녀운 보기에는 큰 그림에서 이해하기 좋은 듯.


8. 가양동 ****

많은 방송 출연에 넘어가기 좋은 곳. 홍보에는 성공했을는지 모르나 사주도 공수도 약하신 편.

일반주택에 점집 인테리어는 멋지나, 실제 예측 능력은 죄송하지만 거의 없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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