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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 이게 꿈이야.
아니 이건 현실이야.
그런데 꿈 같아.
지하철이 지하에서 지상으로 올라오자 맞은 편에 앉은 꼬맹이 둘이 차창에 코를 박는다.
아, 요즘 아이들은 저런 말도 하는구나.
내가 바라보는 방향에서 왼편엔 아이들의 엄마로 보이는 작은 여자가 또 오른쪽에는 아빠구나 싶은 어린 남자가 있다. 그러니까 작은 여자와 어린 남자 사이에 아이들이 있다.
슬쩍 보아도 저건 가족들이 앉는 방식이어서 어린 남자의 무심함으로 그들의 관계를 의심하지 않는다.
창밖을 바라보며 연신 재잘거리는 아이들에게 작은 여자가 계속 주의를 주지만 어두웠다 밝아지는 것들이 대개 그렇듯,
아이들은 설레는 것이다.
곧 이 지루한 여정이 끝날지도 모른다는 희망. 기대.
지난 밤, 늦은 저녁이 체했는지
아침에 일어나 어지러운 기운에 조금 앉아있다가 다시 누웠다. 여간해서 출근을 놓치는 법이 없는데 오늘은 출근 아니라 뭐든 놓쳐야 할 기분이다. 누우면 잠잠해지는 명치가 일어서면 답답해 오는 것이 얹힌 그 무언가가 그 쯤에 있나 보다. 몸 속의 구멍의 크기로 걸러내는 사정이라는 게 꽤 합리적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러니까 늘 들어오던 크기가 아니면 통과시킬 수 없는 것. 그런 사정.
어리고 무심하던 남자는 지치기도 했나 보다. 조금 전까지 열심히 들여다 보던 손에 든 스마트폰이 아슬하다. 몸을 축 늘이고 계속 고개를 떨군다. 고개가 들렸다가 떨어지고 다시 떨어진다. 차창으로 보이던 꿈같은 현실은 이미 지나간지 오래여서 아이들도 떨어지고 떨어지는 박자에 익숙해진다. 동생으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두어 번 자리 투정을 하더니 이내 자기 자리를 떠나 여자의 품에 안긴다. 어떤 역이었나 정차를 알리는 소리와 함께 양쪽으로 몰려드는 사람들로 시야가 가려진다.
대*역 2번 출구에서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까. 그런 것들을 폰으로 한참 가늠하다가 그냥 많은 사람들이 가는 방향으로 따라가 보기로 한다. 가다가 아니면 되돌아 오면된다. 되돌아 오는 길을 잃지 않도록 바닥에 돌멩이를 떨어뜨리듯 시선 속에 간판들을 담는다.
현대아파트, 메밀촌 막국수, 힐 커피, 남서울 정형외과.
꿈인가. 현실인가
아니면 꿈같은 현실일까.
지하철에서 본 어린 남매의 재잘거리던 소리가 아직 귓바퀴를 돌고 있다.
가슴의 체기를 가라앉히는 방법은 그저 걷는 것이라고 무심히 중얼거리며 걷는다.
떨어지고 떨어지는 박자에 익숙해지고, 시야가 가려지는 일들 사이에서
걷다 보면 골목이 있고, 그 골목을 돌아도 내가 바라는 꿈같은 건 없을지 모르지.
하지만 그래도 괜찮지 않을까.
이 여정은 곧 끝날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