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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인철 Jan 17. 2021

똥덩어리의 연대기

Nos actes nous suivent -Paul Bourget-


옥상에서 바라본 고등학교 운동장에 얼마 전 내린 눈이 그대로다. 

학교 옥상에 나란히 설치된 에어컨 실외기가 눈에 들어온다. 이상하다. 고등학교에 왜 에어컨 실외기가 있을까? 

떠난 지 20년이 된 저 세계는 많이 변해있을 터이다. 


우리 교실에도 에어컨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중고등학생이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서는 우선 하나의 능력과 하나의 덕목을 갖추면 된다. 

암기력과 꾸준함. 

암기력이 부족한 나는 꾸준함이란 덕목을 갖춘 학생이었다.

인생을 좌우한다고들 하는 고교 시절. 나는 꾸준히 잤다. 

1, 2학년 때는 체육시간을 제외한 대부분을 책상 앞에 앉아 꾸벅꾸벅 졸았고 3학년이 돼서는 그냥 엎드려 잤다. 뒤쳐진 학생들은 알겠지만 초반에는 선생님들도 때리고 어르고 달래고 때리지만  3학년이 되면 그냥 자게 내버려 둔다. 

꾸준함은 모든 것을 이겨낸다.


성장기 청소년은 일반 성인보다 배고픔을 일찍 느끼며 허기의 강도 역시 다르다. 오전 시간에 이미 도시락통은 비어있다. 생산성이라고는 1도 없는 공놀이에 목숨을 거는 점심시간의 운동장은 흙먼지와 공 몇 개와 비조직적이며 광기 섞인 움직임으로 가득하다.

비 내리는 날만 제외하면 내 안쪽 어딘가에서 끓어오르던 무한한 힘은 운동장 흙먼지에 섞이고 뒤엉켜 나뒹굴었다. 여전히 나는 우천 취소를 증오한다. 우천 취소만큼 허무하고 허탈한 게 어디 있을까. 그 상실감을 보상받을 수 없다는 사실은 우울함으로 이어졌고 우울한 자는 이내 잠들기 마련이다.

흘러나간 힘은 보충돼야 하기에 오후 수업시간이 되면 다시 졸기 시작했고 꿈을 꾸었고 잠꼬대를 하다가 걸려 뺨을 맞고 엉덩이를 맞고 교실 밖으로 쫓겨나 프랭크 자세를 취했다. 

꿈으로 가득한 고교 3년은 꿈같이 흘러갔다. -도중에 외국 유학을 도모했지만 갑작스러운 IMF사태로 나의 덕목을 세계적으로 떨칠 기회는 갖지 못했다.-


수능을 100일 앞두고 점심시간의 운동장은 이미 건방진 2학년들이 장악했고 같이 졸던 친구들도 눈에 쌍심지를 켜고 학업에 열중하였다. 너무 늦게 일어난 나는 홀로 외로웠다. 

수능 400점 만점 시대에 아들의 100점대 모의고사 성적표를 받아야 했던 우리 부모의 심정은 어땠을까.


수학능력 평가를 치르러 가는 아침, 아버지는 차에서 내리는 나를 보며 말씀하셨다.

“인철아, 오늘은 졸면 안 된다.” 

그 날. 나는 한 번도 졸지 않고 끝까지 문제를 풀었다. 풀었다고 해야 할까. 지문을 읽고 정답의 기운이 느껴지는 번호를 골라냈다.

시험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어둡고 추운 길에서 나는 졸지 않고 끝까지 문제를 풀었다는 극도의 성취감에 들떠 있었다.

다음 날, 가채점 결과로 부산한 교실에 담임선생님이 들어왔다.

“전교 1등! 너 몇 점 나왔어?”

“390점 나온 거 같은데요..” 교실 전체가 술렁거렸지만 전교 1등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만점을 기대했던 모양이다.

“너는?”

“전 340점이요.”

“너는?”

“저는 몇 점이요..”

그리고 내 차례가 돌아왔다.

“강인철이.. 너는?”

“310점 정도 되는 거 같은데요?”

“으하하하” 담임선생님이 웃고 반 전체가 따라 웃었다.

“그 정도 나오던데… 체크한 거 점수 매겨보니까.”

“으하하하” 또 한바탕 웃음

같이 웃던 친구 중 어떤 놈은 지금 미국에서 목회 활동을 하고, 어떤 놈은 불법 도박을 하고 어떤 놈은 그 학교 선생이 되었고 어떤 놈은 영화를 찍는다. 그리고 390점 맞은 전교 1등은 몇 년 전 과로사로 죽었고 전교 2등은 러닝머신을 뛰다 심장마비로 죽었다.  


한 달 후, 정말로 나는 300점대의 점수가 찍힌 성적표를 받았다. 게다가 외국어 영역은 만점이었다. 그리고 어찌어찌 4년제 대학에 합격하였다.


나의 문제는 그때 시작된 거 같다.

나는 그때 300점이 넘는 점수를 받아서는 안됐다.

그 날의 요행수가 나의 실력이라고 굳게 믿어 버렸고 삶은 그렇게 언제나 내 편을 들어줄 거라 착각하였다. 


똥을 뿌린 곳에서 금을 거둘 수도 있지만 그건 만에 한 번 있는 일이다. 나머지 9999는 거의 똥을 거둔다.

근데 나는 똥을 뿌리면 똥을 거둔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계속해서 똥만 뿌려댔다. 


그때 그냥 100점대의 점수를 받았다면 내 삶은 바뀌었을까? 아파트 옥상에 서서 담배를 피우며 고등학교 옥상에 설치된 에어컨 실외기를 보며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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