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스타터의 매서운 우선순위
새로운 삶을 살겠다고 다짐한 후 세 번의 계절이 지났다. 그동안,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나는 10가지의 조각들을 얻었다. 그 과정에서 왜곡된 자아상을 직면했고, '좋은' 사람이 되고자 스스로에게 강요받던 이타심을 조금씩 뿌리칠 수 있었다. 불안과 강박으로 점철되었던 삶의 많은 시간을 좀 더 편안하게 살 수 있도록 노력하게 되었고, 거기서 나아가 내가 원하는 것과 잘하는 것들을 알아갈 수 있었다.
나는 지난 시간을 통해서 미래를 볼 수 있다고 믿는다. 과거를 돌아보지 않으면, 오답은 계속 반복된다. 하지만 바쁜 삶에 치이고, 남들 하는 것만큼 하려고 노력하다 보니 어느덧 내 삶에서 나는 흐릿해져 가는 기분을 느꼈던 것 같다.
그래서일까. 30년 묵은 흐릿함이, 이 책을 쓰는 동안 아주 조금씩 선명해지는 것을 느꼈다. 어쩌면 '나를 알아간다'는 핑계로 시간을 허비하는 것은 아닐까, 답답한 순간도 많았지만 남은 삶을 전부 포기하느니 1년 정도의 인생을 포기하는 것이 더 나았다.
다시 얻은 서른을, 내 삶을 두 번이나 포기할 수는 없었기에.
호기롭게 시작했지만, 지나온 삶을 직면하는 일은 아주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하나같이 오답이었던 나의 선택들을 되돌아보면서, 깊은 자괴감을 느꼈다. 어른들이 왜 '살던 대로 살라'고 하는지 이해가 되었다. 나는 그럴 때마다 딱 한 가지를 떠올렸다.
지금처럼 살고 싶지는 않다.
이 한 문장이 나를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았다. 그래. 지금부터라도 다시 시작하려면 버텨야 한다. 짙은 어둠이 터널을 감싸야 비로소 빛이 보이는 것처럼. 견뎌내야 한다.
어쩌면 지금도 완벽한 방향을 찾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분명 이전보다 훨씬 편안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부족하더라도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하면서 점차 오답률을 줄여가려고 노력하고 있다.
죽어서 편안해진다? 나는 이 말이 묘하게 억울했다. 그래서 죽기 전에 편안하게 살아보고 싶었다.
그래서 이 글을 읽는 누군가가,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면 나는 용기를 전하고 싶다. 비록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하루에 딱 한 걸음씩만 걸으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포기하고 싶다면, 삶을 송두리째 포기하기 전에 그중 일부의 시간만이라도 자기 자신을 위해 살아볼 수는 없을까 하고..
어쩌면 누군지도 모를 당신에게, 하등 쓸모없는 말일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전해보고 싶었다. 혹시 모를 단 한 사람을 위해서라도.
법이 바뀌었고, 우린 모두 두 살이나 어려졌고, 그래서 새로운 시간이 생겼고, 새로운 도전을 해볼 수 있는 핑계가 생겼으니까
같이 걷자고.
혼자 걸으면서 너무 힘들어하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누군가는 당신의 삶을 응원하고 있다고. 그렇게 말하고 싶다.
누구도 완벽하지 않은 삶이라는 게임에서, 그래도 한 번쯤은 피어날 수 있기를 바라며
『다시, 서른』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