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길을 걷는 마음(1)

- <그린에세이> 2026 1,2월호 게재

by 한혜경


벌써 3년이 지났다.

눈 내리는 풍경이 성스러우면서도 슬펐던 날. 엄마가 떠나신 날이다.


위중하시다는 병원 연락을 받고 큰 동생과 함께 급히 엄마를 찾아뵈었다.

간성혼수가 와서 이미 의식이 없고 얼굴이 노리끼리해진 데다가 많이 부어 있었다.

“엄마, 엄마, 내 말 들려요? 눈 좀 떠봐요.”

엄마 손을 붙잡고 말해봤지만, 엄마는 눈을 뜨지 않았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엄마 손을 쓰다듬으며 간절하게 기도하는 것 외엔 없었다.

하지만 우리의 애타는 마음과는 달리 얼마 지나지 않아 엄마는 결국 떠나셨다.


울음이 복받쳤지만, 이런저런 절차와 장례 준비가 맘껏 울게 내버려 두지 않았다.

동생이 남은 절차를 마무리하기로 하고 나는 집으로 가서 필요한 것들을 챙겨 장례식장에서 만나기로 했다.


병원을 출발하고 한 10여 분 지났을까, 조금씩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차창에 하나둘씩 눈송이가 닿더니 곧 꽤 많은 눈으로 변해갔다.

운전은 조심스러웠지만, 사방을 하얗게 뒤덮기 시작한 눈을 보니 하늘나라로 올라가는 엄마를 순백의 눈이 에워싸고 축복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참았던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정말 엄마가 떠난 건가, 믿어지지 않으면서, 아흔은 훌쩍 넘겨 사실 줄 알았는데 이리 빨리 떠나셨나 안타까우면서, 못마땅한 일이 있으면 다다다다 엄마한테 할 말 못 할 말 다 했던 일을 뉘우치면서,

그렇게 울면서 집으로 돌아가던 눈길.





어머니가 걸어가는 눈길은 어떠할까.

세상엔 비정한 엄마도 있지만, 대체로 엄마들은 자식이 우선이다.

자식의 안위를 위해서라면 자신의 안락은 포기한다.

아직 어두운 새벽 눈 쌓인 길을 걸어갈 때도 자식의 안전을 먼저 걱정한다.

반면에 대부분의 자식은 젊은 시절 나처럼 엄마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다. 자신을 걱정해서 하는 말임을 알면서도 잔소리로 듣는다.


김형진의 수필 <새벽길>은 이런 어머니와 아들을 정겨운 전라도 사투리로 그려낸다.


학창 시절, 타지에서 하숙을 하고 있던 작가는 한 달에 한 번 집에 와서 하숙 쌀을 가져간다.

하루 네 차례밖에 운행하지 않는 버스에 짐을 실으려면 첫 차가 아니면 안 된다.


그래서 아직도 “오밤중”처럼 캄캄할 때 눈을 떠서 대충 “고양이 세수”를 하고 “고구마 반섞이” 밥을 먹은 후 길을 떠난다.

어머니는 쌀자루를 이고 소년은 메고, 발등까지 찬 눈을 헤치며 걸어간다.

이들이 가는 길은 동네 안 길로부터 텃논 둑길, 이어서 방죽 둑길, 산길, 면 소재지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토끼재’, 그리곤 내리막길, 논을 지나쳐 좁은 들을 건너 자동찻길, 또 한참 걸어서 버스 정류장에 이르기까지의 여정인데, 생생한 장면 묘사로 이루어져 한 편의 아름다운 로드무비를 보는 듯하다.


동시에 겨울 새벽에 무거운 짐까지 지고 눈길을 걷는 것이므로, 추위와 바람, 멜빵이 어깨에 박히는 아픔을 견뎌야 하는 고된 인생길을 암시한다.

하지만 “무슨 일이든 고비가 있은게, 그 고비만 잘 참고 전디먼 되아야.” 아버지 말대로 고비를 넘기면 된다. 그리고 어머니가 앞서 가면서 찍어 놓은 발자국을 따라가면 되므로 든든하다.


어머니는 아들이 넘어지지 않도록 “괴아짐으서 손 빼라, 잉. 자빠지먼 일난게.” “어믄 생각 말고 조심히야 혀. 눈길인게.” 수시로 주의를 주고, 정류장에 도착해서는 잘 먹고 지내기를 당부한다.

“... 뭣보다도 밥이여야. 밥 잘 먹어야 건강헌게. 공부는 그 담이어. 공부헌다고 곯으먼 볼 장 다 본 게 뭣보다도 밥이여야. 너는 세 집 아울러 하나뿐인 오대 종손인 게...”


아들은 이어지는 “잔소리에 신물이 나려” 하지만, 어머니 심정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마지막 문장은 절절한 모정과 더불어 어머니를 향한 아들의 마음이 애틋하게 전달되며 깊은 여운을 남긴다.


“차가 출발한 뒤에도 버스 꽁무니에 눈을 준 채 넋 없이 서 있는 어머니의 모습이 새벽빛에 멀어진다.”



매거진의 이전글'특별'한 생을 기억하는 방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