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생을 기억하는 방식

가민경 <멋지다>를 읽고

by 한혜경


많은 것을 잃고도 “끝끝내 살아갈 의미를 찾아보려” 한 자의 이야기는 깊은 울림을 준다.

현실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용기에 마음이 흔들리며, 그렇지 못한 자신을 성찰하면서 비정한 현실과 삶의 의미를 응시하게 만든다.


가민경의 <멋지다>는 이러한 생을 들려주면서, 이에 대한 작가의 생각을 나직하지만 분명하게 밝힌 글이다.


주인공은 작가의 외할아버지로, 유복한 집안의 장남이었고 “절대음감과 묵직한 저음”, “오뚝한 콧대”, 성악가가 되기 위한 일본 유학 등 “모든 것을 가진 듯”한 인물이다.

그러나 일본인 아내를 맞으라는 집안의 뜻을 따르지 않아 그동안 누려온 모든 것을 박탈당한다.

이후 가난을 벗어나기 힘든 가운데 어린 딸을 남긴 채 아내가 암으로 세상을 뜨고 본인도 대장암 선고를 받는다. 말년에는 피부암으로 코 전체를 들어내기까지 한다.


이처럼 혹독한 상황 속에서도 할아버지가 자주 한 말은 “멋지다”였다.


이 말은 보통 ‘성공’이나 ‘승리’란 단어에 어울리는 말이지만, 그는 자신만의 언어 세계를 구축한다.

패배한 선수도 멋지며, “옹이가 크게 난 가로수”나 계피 사탕의 달큼함도 멋지다.

심지어 코가 없어 “살아있는 해골” 같기도 한 얼굴도 “멋지지?”하고 말한다.


곧 결과와 상관없이 최선을 다하는 과정을 값지게 여기며, 각 존재의 고유함에 경의를 표하는 것이며, 외형과 무관하게 내면의 아름다움을 중시하는 마음이다.


코가 사라진 얼굴이라 해도 신념을 지키며 올곧게 살아온 삶이므로 멋지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측면에서 “멋지다”란 말은 정보 전달의 언어를 넘어서, 삶을 바라보는 시선의 표상이며 모든 존재의 본질을 투시하는 말이 된다.

‘흉’이 ‘멋’으로 승화하는 새로운 시계(視界)의 언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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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할아버지와 함께한 기억의 조각을 이어 붙여 할아버지의 삶을 재구성한 끝에 자신의 인식 변화를 보여준다.


“이기고 지는 건 한순간일 뿐이야. 저 땀을 좀 봐라. 얼마나 멋지냐.”


할아버지의 말에 “멋에 대한 정의를 다시 내리기로” 한 초등학생은 어른이 되어 그 말을 좀 더 깊이 들여다본다.

그리하여 이 말이 단순한 감탄사가 아니라 “거친 인생 가운데 자신을 다독이는 마법의 언어이자, 제멋대로 흘러가는 삶을 품어 안으려는 처절한 다짐”이었음을 깨닫는다.


이는 할아버지의 삶을 온전히 이해하고 그 철학에 공감하므로 도달할 수 있는 결론이다.

작가는 이에서 더 나아가 통념과 결별하면서 할아버지의 세계에 한 걸음 들어선다.

많은 것을 얻을수록 삶을 제대로 소유한다고 믿는 통념과 “다른 생각”, 곧 “몹쓸 운명이 할퀸 흉조차 끌어안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삶은 온전히 내 것이 되는 거”라는 생각에 이르는 것이다.


이처럼 이 글은 많은 것을 잃었을지 모르나 가장 중요한 것을 소유하고 있었던 할아버지의 삶을 “특별”한 것으로 재현함으로써, 재현의 윤리를 따뜻하게 완성하고 있다.


*** <데일리한국> 2026. 1. 5. 게재

(해당 수필 원문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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