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승윤의 <시베리안 허스키>
2024년 3월부터 1년 반 동안 데일리한국에 연재한 수필 평과 선정된 수필 55편을 묶어
2025년 11월 20일 출간기념회를 열고 수필의 현주소를 짚어보고 앞으로 나가야 할 방향에 대한 심포지엄을 개최하였다. 수필계를 대표하는 작가들과 수필전문지 발행인, 선정된 작가들이 한데 어울려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축제의 장이었다.
2025년 11월부터 <평론가가 뽑은 좋은 수필> 두 번째 시즌을 시작했다.
6명의 평론가가 차례로 좋은 수필을 선정하여 원고지 7매 이내의 평설을 쓰고 있다.
이 역시 오래 하반기에 두 번째 단행본으로 묶어 발간할 예정이다.
2025. 11. 24에 발표한 글을 소개한다.
짖지 않고 우는 개가 있다.
작가의 옆집 개 시베리안 허스키다.
항상 야외 주차 공간에 묶여 있다. “바람이 부나 눈비가 오나 주야장천 묶여” 있다. 무심한 주인이 개집이라고 만들어 줬으나, “철근을 용접한 네모난 감옥”과 다름없다.
또 다른 개가 있다.
작가가 인적 뜸한 오름에서 마주친 개다.
식용 개를 집단 사육하는 무허가 개 농장에서부터 따라온 듯했다. 무언가를 물고 있는데 “부러진 나뭇가지처럼 흔들거리고 있”다. “아직 털이 벗겨지지 않은 다른 개의 앞다리처럼 보였”는데, 개의 표정이 “어처구니없이 순진해 보였다.”
정승윤은 첫 번째 개에 자신의 모습을 투사시키며, 두 번째 개에서는 “종말의 증후”를 본다.
새벽에 눈을 뜨거나 잠에서 깨어나면 들리는 옆집 개의 울음소리는 “고통에 찬 신음”이고 “인간에게 직접 호소하는 소리”로 다가온다.
“나⦁를⦁제⦁발⦁풀⦁어⦁주⦁세⦁요.”
개의 울음소리는 곧 정승윤의 신음소리다.
본성을 억누르는 부자유로 인한 개의 괴로움은 “폭염”과 “이상 기후”, “벽 너머 벌어지고 있는 종말의 증후들을 못 견뎌” 하는 작가의 절망과 동궤에 놓인다.
이 “종말의 증후”는 두 번째 개를 통해 섬뜩하게 가시화된다.
개 농장에서 들려오는 “좁은 쇠 우리 안에 갇혀서 미쳐가는 개들이 내지르는 소리”, “순진”한 표정으로 다른 개의 다리를 물고 있는 개는 지옥도를 방불케 한다.
상식과 윤리와 질서가 훼손된 아포칼립스를 상징한다.
이 끔찍한 재앙 앞에서 정승윤은 “무력”하다.
그래서 꿈을 꾼다.
꿈속에서 그는 옆집 개와 함께 “눈 부신 빛 속에 있었다.” 둘은 한 몸이다. 옆집 개가 썰매를 쫓아 내달리며 힘차게 짖기 시작한다.(울지 않고)
“설원의 눈보라에 어울리는 우렁차면서도 허스키한 목소리”다.
그도 함께 내달으며 소리친다.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내 안 짐승의 목소리”로.
다른 동물들도 화답하듯 다 같이 울부짖는 장면은 인간과 동물이 함께 어우러져 갇혔던 본성을 복원하려는, 자유를 향한 호쾌한 합창이다.
이로써 이 글은 종말의 징후와 그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몸부림을 선명하게 장면화하여 전달하고 있는데, 좀 더 나아가, 작가란 어떤 존재인가를 숙고하게 한다.
곧 다른 존재의 이상 징후를 예민하게 감지하여 “짖다”와 “울다”를 구별하며, 그 울음에 귀를 기울이고, 그 처지에 공감하는 자. 하지만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이 지점에서, 문학이란 “배고픈 사람 하나 구하지도 못하”지만, “유용하지 않기 때문에 인간을 억압하지 않는다.”라고 했던 김현 선생의 말을 떠올려 본다.
비록 타인의 고통을 해결하지 못하는 무용한 존재일지 모르나, 그 아픔에 귀 기울이며 슬픔을 함께 나누고 상상 속에서 해방감을 얻게 하는 존재가 작가 아니겠는가.
그것은 눈부시고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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