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영미 <빈집>을 읽고
우리 삶은 태어남과 죽음, 만남과 이별의 흔적들로 점철된 조각보와도 같다.
한때 빛나는 형체를 가졌던 것도 “사그라지기 마련”이라면, 우리는 그 끝을 어떻게 마주할 것인가, 무(無)로 돌아가는 존재 앞에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김영미의 <빈집>(<<수필세계>> 2024 봄호)은 “이제 허물어지고 쓰러지는 일만 남은” 집과의 작별을 통해, 독자를 이 심오한 질문 앞에 끌어다 놓는다.
적확하면서도 아름다운 문장으로 “집도 기억과 작별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환기하면서, 집을 떠나보내는 의식을 치른다.
이 의식은 집이 간직하고 있는 기억을 소환해 과거의 시간을 재구성함으로써 미련 없이 흔적과 추억을 흘려보내는 것이다.
이 집에 깃들었던 과거는 외지에서 들어와 살던 이들의 “허물 같은” 삶이다.
태풍이 쓸고 간 뒤 산 중턱에 방을 들여 주저앉은 ‘작달막한 키의 남자와 얼굴이 말상인 여자’와 아이들.
당시엔 ‘오다가다 만난 뜨개부부’니 “잔술이나 노름으로 밑천조차 날려 먹기 일쑤”라는 등의 우호적이지 않은 소문이 무성했고 어린 작가의 눈에도 “좋게 보이지 않았”지만, 현재 돌이켜보면 ‘장이 익고 묵나물을 만들던 정경’이 있었고, 웃음도 흘러나오던, “편안해” 보였던 가족이었음을 깨닫는다.
아이들은 일찌감치 대처로 나가고 남자가 죽고 여자도 요양원으로 떠난 뒤, 집의 형상은 ‘잡초가 빼곡이 들어찬 마당’ ‘기와장이 벗겨져 벌건 살이 그대로 드러나도 가릴 엄두조차 못 내는 지붕’에 “담은 아예 바닥에 퍼질러 누웠고” “비스듬하던 기둥이 앓는 소리를 내자 홑치마 같은 벽이 쿨럭 먼지를 뱉는” 지경이 되었지만, 과거의 풍경을 기억하고 이를 기록하는 작가에 의해 무엇이 변하고 사라졌는지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버티는 집을 다정하게 다독인다.
“그만 되었다. 수고했다. 흔적과 추억 모두를 껴묻어 가렴.”
더 추레해지기 전에 이별하고자 하는, 애정 담긴 작별이 아닐 수 없다.
빈집과의 작별을 마친 작가의 눈에 자신의 집이 들어온다.
‘다섯이 살다 둘이 되어 헐렁한 내 집.’
빈집과 같은 운명이 될 미래를 생각하면 울적하지만, 마음을 다잡는다.
한발 물러서 보니, 집과 산이 하나 되는 아름다운 풍경이 보인다.
“바람이 산을 훑는다. 바람 끝에 집 하나가 매달려 간당간당하다.”
서두에 나타났던 위태로운 이미지는
“시나브로 산은 초록 덩어리다. 그 속에 빈집이 묻혀간다...(중략)... 바람이 분다. 집이 산이 되려 한다.”
합일의 감동으로 변화하기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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