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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minority)로 산다는 것

8월 17일, AJ 미디어 루키즈 전이준의 기록

오후 두 시: Marci Kwon 교수님의 미디어 아트 강연

일정표에 나와있는 닷샛날 오후 스케줄을 보고, 처음엔 제주의 아르떼뮤지엄처럼 우리가 국내 전시회 같은 곳에서 종종 볼 수 있는 미디어 아트에 대한 내용인가, 이렇게 단순하게만 생각했다. 그러나 그 한 시간 반은, 뜻밖에도 ‘소수로 산다는 것’에 대해 고민해보게 만든 시간이었다. 소수를 뜻하는 minority 라는 단어의 철자 한 글자씩 따서 키워드 삼아 이야기를 진행해보려 한다.

M arci Kwon

Marci Kwon 교수님께서는 스탠포드에서 예술사를 다루는 미술학자이시며 한국계 미국인이시다. 교수님께선 강연 내내 자신의 경험도 일부 녹여내어 한국계 미국인, 그리고 더 큰 범주로는 아시아계 미국인에 대한 이야기를 ‘미디어’와 ‘예술’이란 매체를 통해 들려주셨다. 나긋나긋한 톤으로 진행된 그녀의 말 속엔 수많은 뼈가 들어있었고, 배움이 녹아있었다.


I mmigration

아시아계 미국인들의 역사는 이주로부터 시작되었는데, 특히 1850년대부터 북 캘리포니아에 거주하는 중국인 이민자들의 수가 급격히 상승하기 시작했다. 이 당시의 이주민들에 대한 차별과 공격은 지속적으로 일어나고 있었는데, 1871년엔 LA를 비롯한 캘리포니아 주 각지에서 중국인 대학살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후 미국 정부는 아시아인들의 이민을 제한하기도 하였는데, 1965년 Immigration and Nationality Act를 발표하며 1960년대 시민운동의 흐름에 발맞춰 인종과 민족에 상관없이 이민 비자를 부여하는 법을 내게 되었다. 이로 인해 아시아에서 이민자들이 폭발적으로 넘어왔고, 현재의 Asian American 사회를 이루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N ow

그렇다면 그들의 현 상황은 어떠한가? 대한민국의 경우, 놀라운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K-culture 덕분에 이전에 비해 많이 바이럴해진 것은 분명하다. 강연 중 K-culture 주제가 나오자, 아침에 들은 강연이 문득 떠오르기도 했다. 당일 아침엔 한국을 수십 년 연구해오신 Dafna Zur 교수님과 한류 콘텐츠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 받았었는데, 그때 새삼스레 케이팝의 힘을 많이 느꼈었다. 그러나 K-콘텐츠들의 힘과 잠재력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언급되는 한류의 성과에 비해 막상 미국에선 그것들이 주류문화에 속하기 어렵고, 암묵적 낙인이 존재하기도 한다는 Marci 교수님의 말씀에 한국의 위치에 대한 현실이 와닿았다. 여전히 나아가야 할 공간은 많구나.


O riental

아시아라고 해서 모두가 동일한 건 아니다. 국적이 아시아에 속하는 나라라고 해서 구분할 필요가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미국 사회는 아시아계 미국인들을 한국계, 중국계, 일본계, 베트남계 등과 같이 세부적으로 구분하기보단 ‘oriental’로서 크게 한 묶음으로 보는 시선이 보편적이라고 한다.


R acism

https://www.youtube.com/watch?v=LBoQUQjYBiM

나는 이 영상을 최근에서야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팬데믹의 지속으로 인해 아시아인들에 대한 혐오 감정이 커지던 무렵 올라온 영상인 것 같다. 보던 중 아시아인들을 일반화한 model minority(모범적인 소수자)란 용어를 처음 접하게 되며 또 한 번 Marci 교수님의 강연과의 접점을 찾았다. 교수님께선 ‘Black Lives Matter’, 즉 흑인들의 인권 주장과 ‘Stop Asian Hate’, 즉 아시아계 사람들이 받는 비난을 비교하여 말씀해주셨는데, 흑인들의 경우 아시아인들에 비해 미국에서 핍박받았다는 역사가 워낙 유구하고 널리 알려져 있어 그들의 목소리가 비교적 세계의 관심을 받기 수월하다고 하셨다. 그러나 아시아인들은 model minority란 단어가 탄생하게 된 것처럼 ‘너희들은 똑똑하잖아’, ‘너희들은 그냥 돈 벌려고 미국 온 거잖아’와 같은 인식이 많아 차별이 흑인들처럼 보편적으로 인식되기 어렵다고. 이러한 고정관념이 아시아계 미국인들이 권리를 주장하기 어려운 환경을 만들고,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힘든 다른 아시아계 계층들의 고충을 무시하는 부작용을 낳기도 한다고 생각한다.


문득 며칠 전 샌프란시스코에 착륙해 입국심사 줄을 기다리며 친구들과 나누었던 대화가 생각났다.

“난 2주 뒤에 어머니께서 미국으로 오셔서 프로그램 끝나면 같이 여행하려고. 근데 혼자 들어오시는 거라 입국심사가 걱정돼. 세컨더리 갈까 봐.”
“안 그래도 특히 동양인 여성들이 세컨더리로 가는 일이 잦다고 하더라고.”
“왜?”
“매춘부의 가능성 때문에.”


1875년 미국의 The Page Law라는 이민법은 부적절한 목적을 가졌다고 판단되는 이민자들은 미국 입국을 금지한다는 법이었는데, 특히 아시아 여성이 미국으로 들어올 때 매춘부가 아님을 증명해야 했다고 한다. 이러한 아시아 여성에 대한 편견은 예전에 비해 조금은 덜 직접적이고 덜 직관적일지라도 21세기에서도 분명히 이어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인종에 대한 차별을 성별에 대한 차별과 독립적으로 봐서도 안 된다.


I dentity

“미국에서 사는 것도, 한국에서 사는 것도 전부 이방인처럼 느껴집니다.”

이 문장을 듣자, 여태까지 배운 아시안 아메리칸들의 입장이 가슴 뜨거워지도록 공감되고, 그들의 삶이 실감 났다. Marci 교수님께선 한국말도 유창하게 하시지 못하고, 한국을 자주 찾아가는 것도 아니며, 미국 문화에 더 익숙한데도, 본인을 한국인으로 봐야 할지 그 정체성에 혼란스러웠다고 말씀하셨다. 어디에도 완벽히 속하지 못한 아시안 아메리칸들의 이방인과 같은 삶이 그간 얼마나 외로웠을까, 자신을 정의하는 게 얼마나 복잡했을까? 누군가 그들에게 고향이 어디냐 물으면 그들은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T ogether

앞서 Oriental 부분에서 언급했듯, 아시안 아메리칸들도 다 나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지역에 따라 계층에 따라 우월의식에 따라 내부에서도 분열이 종종 있었는데, 한국계 미국인, 일본계 미국인, 중국계 미국인…… 모두 다른 존재들이지만 아시아계 미국인들은 사회에서 실질적으로 목소리를 내기 힘들기 때문에 소수집단 간의 연합은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다. Marci 교수님께선 그러한 아시안 아메리칸들의 생각과 주장을 담은 그들의 예술작품을 위한 공간을 내는 것이 얼마나 의미 있는 일인지 강조하시며 강연은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공간을 통해 표현한다는 것 자체가 그들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이니까.

재일교포 가정의 4대에 걸친 이야기를 담은 장편소설 <파친코>의 작가 이민진이 올해 3월, 미국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글을 읽었다. Marci 교수님과 같은 맥락에서 그녀는 ‘아시아계 미국인은 항상 두려움에 떨었다’며 한국계 미국인을 향한 조롱과 공격을 견뎌오며 세상의 부조리에 맞서기 위해 연대해야 함을 깨달았다고 한다.

내 눈은 여느 아시아인처럼 작지만,
그 눈 너머에는 세상이 변하길 바라는 빛이 반짝인다.
안전하다는 느낌을 받고 싶다. 모두를 위해 안전을 원한다.
– 이민진, 2022.03.20.

Y ou

이 강연을 듣기 전까지 솔직히 나는 아시안 아메리칸에 대해 관심을 기울인 적이 드물었던 것 같다. 그래서 강연을 듣는 내내 나의 일이 아니라고 그들에게 진지하게 공감해본 적이 없었던 내 자신이 부끄럽기도 했다. 이번 기회에 교수님의 강연을 통해 각종 혐오들에 대해 더 귀 기울이고 세밀한 관심을 기울일 줄 아는 섬세함을 기르게 되어 소중하고 감사했다.


너, 나, 우리.


해결을 약자에게만 떠넘겨서는 안 되며, 모두가 유대감을 갖고 손잡아야 한다. 인종은 단지 신체적 차이일 뿐, 사람을 판단하는 척도가 될 순 없다는 인식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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